이혼 후, 마주한 아들의 ADHD 진단
“○○이 어머님, 아무래도 ○○이 상담을 한 번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작년에는 안 그랬는데, 올해 들어 부쩍 산만해졌어요. 행동도 과격해지고요.
수업 시간에도 계속 돌아다니고 친구들을 자꾸 건드리네요.”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남매둥이를 데리러 갔더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병원 상담을 권하셨다.
당시 나는 동종 업계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을 하셨을까 싶어
덜컥 겁이 났고,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아들의 병원 선택을 두고 고심하던 중
어린이집 동료 교사의 도움으로
집에서 멀지 않은 소아청소년 정신과에 예약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초등학생 딸도 ADHD 치료를 받고 있었다.
과격한 행동은 없지만
주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편이었는데,
1년 넘게 약을 복용하며
부작용도 거의 없고 많이 안정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대로 치료만 받으면
우리 아들도 눈에 띄게 나아지리라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아이들이 만 세 살 무렵,
전 남편과의 8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부재로
아이들 역시 큰 혼란과 충격을 겪었을 것이다.
주 양육자인 엄마는
생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변화된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자꾸 쓰였다.
그동안 걱정하던 터라
이번 기회에 아들뿐 아니라 딸도 함께
ADHD 검사와 상담을 받기로 했다.
정신과는 난생처음이었다.
오래된 건물에 병원 내부도 우울하고 칙칙했다.
그런데 잠깐 사이,
방금 전까지 내 옆에 있던 아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아들과 딸이 신발을 신은 채
접수 데스크 위로 올라가
발을 쿵쿵 구르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평소 얌전하기만 했던 딸까지 가세한 모습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진료실 안에서는 더 가관이었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부드럽고 인자할 거라 기대했던 의사 선생님은
차갑고 사무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놀이터에라도 온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소파 아래로 꿈틀거리며 기어들어 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목 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검사 결과,
두 아이 모두 ADHD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이 나왔다.
아들은 이미 가정과 어린이집 생활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반면 딸은
늘 함께 지내온 오빠의 과도한 감정 표현과
부주의한 행동에 영향을 받아
ADHD 성향이 촉발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당분간 지켜보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두 아이를 동시에 치료하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아들의 심리평가 보고서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현재 환아가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인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시사할 만한
뚜렷한 반응은 관찰되지 않음.'
그 문장을 읽으며
잠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어진 문장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특히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는 상황이나
만족을 지연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편한 감정을
다소 극적이고 강렬하게 경험하고
표현할 가능성이 크겠음.’
정자체의 딱딱한 글씨들이
앞으로의 시간을 경고하는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나쁜 일은 정말 한꺼번에 몰려오는 걸까.
졸지에 이혼한 싱글맘이 되었고,
귀하게 얻은 남매둥이 중 아들은
ADHD 진단을 받았다.
보고서를 덮으며
그동안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