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힘날세상 Jan 20. 2024

22화 아내가 넘어졌다.

뼈가 부러질 정도로

짙은 안개가 숲을 덮고 있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걸었고, 산등성이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안개에 덮인 숲은 몽환적이었지만, 어딘가 괴괴한 느낌이 무덕무덕 달라붙어 있었다. 빽빽하게 우거진 소나무 숲이 길게 이어졌다. 솔향이 짙고 상쾌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앞에서 걷던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빨리했다. 암릉이 이어지고 있는 구간을 지나가는데 아내가 바위 밑에 앉아 있었다. 아니 쓰러져 있었다. 아내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내를 껴안아 일으키려 할 때,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이내 주위가 어두워졌다.  어디선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도망쳐야 했다. 아내는 일어서지 못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체들이 몰려들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떨고 있었다. 달아나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엇인가 우리를 잡아끌었다. 우리는 발버둥 쳤다. 무서웠다.    


꿈이었다. 아내는 곱게 자고 있다. 암막 커튼을 조금 열고 아내를 바라본다.  편안한 얼굴이었지만 그 안에 아픔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을 안다. 자면서까지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측 8,9번 갈비뼈가 골절되었습니다."

x-ray 촬영으로는 부족하다며 CT까지 찍어보자고 하던 의사는 참 밋밋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부터는 의사가 아니라 시간이 치료하는 겁니다. 저는 틍증을 덜어드리기 위해 진통제나 처방할 뿐입니다. 3주 정도면 통증은 가실 것이고, 빠르면 4주, 늦어도 6주 정도면 붙을 거예요."

"그러면 그동안 누워 있어야 하나요?"

바리스타 업무를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아내가 물어본다.

"환자분은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병원에 오는 것도 힘들어요. 심하지 않다면 가볍게 걷는 정도는 괜찮아요."


바리스타 자격증을 받은 아내는 카페에서 근무하고 싶어 했다. 시니어클럽에 신청을 하고 면접을 하더니 원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바리스타 일을 하게 되었다. 둘째 날 퇴근하다가 넘어져 이 아픔을 겪고 있다.    


 잠든 아내 옆에 꿇어앉아 기도를 했다. 이럴 때 나는 참 뻔뻔하다. 평소에 하나님을 향한 열렬한 신앙심을 보였던 것처럼 기도했다.


"하나님, 저희를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뻔뻔한 얼굴을 걷어 차도 좋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통증은 덜어주시고, 빨리 낫게 해 주세요."

초등학생처럼 매달렸다. 참 부끄러웠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가 하는 일을 해본다. 어떻게 할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침마다 아내가 식탁에 올려놓던 것을 생각하며 그대로 차려보려고 했다. 요거트를 만들어야 했다. 냉장고에 아내가 만들어 둔 요거트가 있었다. 컵에 요거트를 적당량 덜었다. 그리고 아내가 하던 것처럼 토핑을 해야 하는데 뭐가 어디에 있는지를 당최 알 수 없다. 냉장실에서 호박씨와 콩미숫가루를 한참 걸려 찾아냈다.  그런데 블루베리와 호두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몇 번씩 찾아봤으나 결국은 못 찾았다. 브로콜리 몇 조각을 접시에 담고, 바나나도 한 개를 잘라 놓았다. 방울토마토를 담고, 사과도 한 개 꺼내서 깎았다.

언제 일어났는지 아내가 식탁으로 다가왔다.

"블루베리와 호두는 못 찾았어."

아내가 웃었다.


이런 거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심코 먹었던 것들이 그저 쉽게 식탁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아내가 부산을 떨어서 식탁을 차린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먹었고.


"괜찮아?"

"며칠 지났다고 좀 나아졌어. 몸을 구부리거나 재채기를 하면 아파."

"조심하자고. 내가 다 할 거니까, 당신은 가만히 있어. 아니 말로만 해."

그동안 나는 조선시대 왕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받아먹기만 했으니까 이제 내가 아내를 위해 아내가 하던 일을 다 해보기로 했다.

설거지, 청소, 세탁기 돌리기, 쓰레기 분리배출, 쌀 씻어 밥 짓기, 국 끓이기(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어서, 아내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안 시킴) 상 차리기, 빨래를 걷어다가 하나씩 개켜서 옷장에 넣는 일 등. 힘든 일은 아닌데 은근히 귀찮은 일이었다. 이런 일을 아내가 매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잠자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 수술 후 깨어났을 때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아내의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회복이 될 때까지 늘 내 옆에서 붙어서 온갖 심부름을 다해가며 돌봐준 것도 자식들이 아니라 아내였다.


조지훈 시인의 시 '병病에게'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질병은 늘 우리 곁에 나란히 존재하는 벗과 같은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같이 어우러져 지내다 보면 슬며시 사라진다는 것이다. 골절도 이제 시간이 지나면 잘 붙을 것이고, 그것을 핑계 삼아 뒹굴뒹굴하면서 몸도 마음도 편히 쉬다 보면 어느 순간 아프기 전보다 몸이 좋아질 것이다. 덕분에 아내는 푹 쉬고, 나 또한 옆에서 아내의 손발이 되어 이것저것 하다 보면 아내의 고마움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저녁에 딸이 전화를 했다.

"엄마 다쳤다며?"

"누가 그래?"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었다. 괜히 걱정만 할 것이 뻔한데 굳이 알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딸네집에 아이들 봐주러 갔다가 친구가 모임 날짜를 알려주려고 전화했는데 통화하는 중에 옆에 있던 손녀가 들었나 보다.

"걱정하지 마. 이제 시간만 가면 낫는다고 했으니까"

아내는 딸을 안심시키려고 하고, 딸은 걱정을 하고 한동안 둘이 전화를 들고 통화하고 있다.

"엄마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 내가 당장에 만들어서 가지고 갈게."

늘 우리가 해다 주는 반찬으로 밥 먹는 딸이 하는 말을 듣고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 곁에 가족이 있다는 것, 곁에 아내가 있다는 것은 그래도 아픈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된다. 그런데 곁에서 간호를 하는 사람도 깨우치는 것이 많고, 그동안 생각하고 있지 못했던 은근한 사랑의 마음도 생겨난 것이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거실 창에 매달리는 빗방울을 보면서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빗방울이 내 마음 같네. 다닥다닥 붙어서 안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내가 누워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저 중에 하나는 나야. 나도 당신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살림하느라 지친 몸을 좀 쉬어."


아내는 유럽에서 걸려온 아들의 전화를 받느라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아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전화위복이고 새옹지마가 아니겠는가. 나 또한 그동안 아내가 해주는 밥 평생 얻어먹고 살았으니까, 이참에 밥이라도 한 끼 해주고 싶은데 도대체 뭘 할 줄 알아야 하지. 마음이라도 그렇게 가져보자는 생각이다.


겨울비는 온갖 걱정을 다 씻어낼 듯이 세차게 내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1화 할아버지, 저도 출간 작가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