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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Aug 29. 2024

아들, 네 걸음을 걸어라

너의 방향으로

뜨거운 여름날 담장에서 기다리는 능소화처럼



ㅡ토요일 아침에 갈게요.

목요일 밤늦은 시각, 아들이  전화했다.

ㅡ응, 그래.

자려다가 받은 거라 시큰둥한 대답.


대학생이 되면서 둥지를 떨치고 나갔기에 지금은 있는 듯 없는 듯하니 살고 있다. 그래도 자식이니 늘 걱정이다. 빈둥지증후군도 벌써 삭아 없어진 지 오래다. 그냥 저는 저대로, 나는 내대로 사는 거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고, 그래서 큰 물에서 놀게 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해왔다. 우리도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없는 살림 헐어가며 서울로 서울로 아이들 둘 다 올려 보냈다. 그리고 한 해가 가기 전에 가슴을 쳤다. 아이들은 땅을 치며 좋아했고, 나는 온 산을 올라다니며 허전해했다.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자식을 너무 일찍 내놓고 보니 내 자식이 아니었다. 스무 살부터는 이 아이가 어떻게 숨 쉬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커가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볼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늦게까지 자다가 허겁지겁 등교하는 것도, 술에 취해 비틀걸음으로 문지방을 넘어서는 것도, 어떤 친구들과 돌아다니는지도, 어떤 여자와 연분을 일으키는 도 절대로 볼 수 없었다.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그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라고 하던데 말이다. 그냥 어쩌다 한 번 전화선을 타고 흘러드는 목소리나 듣고 살았으니 자식 키우는 재미는 몽땅 날아가 버렸다.


아들보다 한 해 먼저 서울로 올라간 딸도 똑같았다. 아니 딸은 막연한 걱정이 하나 더 얹어졌다. 딸 가진 부모가 다 그렇듯이. 그래도 딸은 얼른 시집을 가서 한시름 덜었기는 하다. 아들은 아직까지 혼밥을 먹고 있다.


스물다섯에 잠실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13년째 교단에 서고 있다. 학교에서는 인정받고, 학생들도 최고 선생님이라고 잘 따른다는데. 그것 다 필요 없는 것이더라.

졸업하기 전에 만나서 뭔가 영글어갈 듯한 연애에 빠지는 듯하다가  쪼개진 뒤로는 세상에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방학만 하면 해외로 날아가 버렸고, SUV 가득 채워 캠핑장으로, 서해인지 동해인지 어느 섬이든  해변이든 백패킹이라는 이름으로 내달았다.

ㅡ좋아. 다 좋은데 돌아다니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좋은 처자가 있는지 좀 살펴봐 이 녀석아.

ㅡ자연을 즐기는 것이 캠핑의 처음과 끝인데 그런데 눈돌릴 수 있겠어요.

불효가 뭐 별거냐. 이놈아 네가 하는 짓이 불효다. 불효.


어느 날부터는 마라톤의 세계로 넘어갔다. 잘하는 일이라고 추켜주었다. 내가 이 녀석 고3 때 수능 고득점을 기원하며 중앙마라톤(현 JTBC 마라톤) 풀코스를 달렸던 게 있어서. 아들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된 것은 다 내 덕이다. 내가 아픈 발목 부여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풀코스를 달리며 고득점을 기원했기 때문이다.


ㅡ아들아, 아버지 친구들과 만나 나누는 이야기가 뭔 줄 알아?

조금은 식어버린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아들이 눈을 들어 바라본다. 이놈아 네가 그런 눈으로 봐도 할 말은 해야겠다.

ㅡ자식들 흉보는 거 아닐까요?

ㅡ얘 좀봐. 흉이라니. 늘 자식들 걱정뿐이지.


늙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만나면   하는 얘기는 이렇다.

ㅡ우리가 자식들 인생을 사는 게 아니잖아.

ㅡ그러니 자식들 인생에 끼어들면 안 되지.

ㅡ지금은 혼자가 좋겠지만 늙으면 배우자가 최고지.

ㅡ결혼이 둘이 하나 되어 사는 건데 어디 딱 들어맞는 사람이 있겠어. 조금씩 물러나며 맞춰서 사는 거지.

ㅡ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모들은 한숨만 쌓아간다. 미혼 자녀가 있는 부모들은 참 세상사는 맛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이 재미가 없고, 거기에다 밥맛도 없는데 자식들만 보면 속이 뒤집힌다. 세상은 자꾸 기름을 부어 넣는다. 이혼이 요즘 세상에 무슨 흉이냐며  돌싱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내세워 TV에 내놓고, 혼자 사는 것이 뭐 자랑이라고 보란 듯이 떠들게 한다. 돌싱이나 비혼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런 분위기를 일상화하는 방송을 탓하는 거다. 물론 내 생각이다.


ㅡ아들아, 노오오오력을 하자.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ㅡ난 시월드라는 말 자체도 나오지 않게 할 거야.

기어이 아내도 끼어든다.

ㅡ자식 결혼을 가로막는 게 시어머니 자리라고 하지? 결혼식장에서 촛불을 켜고 나면 나는 네 인생에서 쏙 빠질 거야. 니들이 아침에 고기를 구워 먹든, 사흘에 한 번 밥을 먹어도 니들이 좋다면 다 수용할 거야. 우리는 우리 연금으로 살 거니까 너희나 잘 살아.

틈날 때마다 우리끼리 주고받는 말을 아내가 늘어놓기 시작한다.

ㅡ엄마는 무슨 그런 말을 해. 서로 어우러져 잘 살아야지.

ㅡ아들아, 행여라도 여친 생기면 그런 말 꺼내지도 말아. 그냥 너희대로 살아.


아들의 결혼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건 우리의 진심이다.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대학생 때부터 우리는 따로 살았고, 수지에 거처를 마련하고 나서도 3년이 되었는데 이사할 때를 포함해서 다섯 번 가봤다. 현관 중문 설치하는데 문 열어 주려고, 한 달 여행 갔을 때 자동차 시동 걸어 주려고.


즐겁게 먹어야 할 밥상이 무거워져 버렸다. 그래도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결혼에 관심을 보여서 다행이다. 환영할 일이다. 소개팅을 하면 서로 눈이 맞아야 하는데, 그게 자꾸 어긋난다고 한다. 한쪽이 좋으면 한쪽이 싫은.


ㅡ아들아, 모처럼 왔는데 또 이런 얘기를 하고 말았구나. 말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더 할게. 우리는 네가 좋다고 하는 사람이면 우리는 다 받을 거고, 딩크족으로 살아도 좋아. 외손주들  재롱을 잘 보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비혼만은 안된다. 딱 여기까지. 우리 그날을 기다리며 한 잔 마시자.


아들은 비혼은 절대 아니며,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우리는 다시 허전했다. 이 시대에 미혼 자녀로 사는 것도, 그 부모로 사는 것도 너무 힘들다. 여려가지  여건으로 결혼하지 못하는 젊은이들,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부모들.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아들이 지금까지와 같이 성실하고, 자기가 할 일을 열정적으로 수행하면서 재밌고 즐겁게 살았으면 한다. 자기의 계획대로, 자기의 의지대로, 자기의 발걸음으로.

그리고 어느 날 좋은 사람을 만나 평안하고 행복한 가족일기를 써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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