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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Jun 06. 2024

29화 비워서 채운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신윤복의 춘화, 사시장춘四時長春


브런치 김미선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작가님은 신윤복의 사시장춘四時長春을 직접 그려가며 가는 봄의 끝을 잡고 아쉬워한다.


김미선 작가님이 다시 그려낸 사시장춘. 원작보다 더 많이 비워놓았다.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어설픈 걸 알면서도 노트북을 열어본다.


https://brunch.co.kr/@byulo2/154






어제 6시간 가까이 산길을 걸었다. 홀로 걷는 산길은 언제나 내 발자국 소리를 데려다 놓는다. 같이 걷는 발자국 소리가 좋아 쿵쾅쿵쾅 걷다 보면 담록의 잎으로 곱게곱게 싸놓은 숲 속의 고요를 흐트러뜨리고 만다. 교만이고, 무례이다. 그래서 숲길은 느릿하게 걸어야 한다.


느릿한 걸음을 걸으면 참 많은 것을 만난다. 어제 산등성이에서 아직까지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진달래를 보았다.


개꽃이 피기 전에 참꽃은 꼭 먼저 눈을 감는다. 진달래는 철쭉보다 붉은빛을 내놓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진달래는 수더분하다. 봄을 말하고 있지만 화려하기보다는 어딘지 애처로운 꽃이다. 순전히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다.


다 김소월 시인 때문이다. 떠나는 임 앞에 진달래, 그 여린 꽃을 뿌리게 했던 소월 때문에 비련의 꽃이 되어버렸다고, 그래서 진달래는 '저만치' 홀로 피어 있어야 한다고, 이것이 내가 진달래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봄은 수없는 꽃을 피운다. 산속 바위틈에 복수초, 바람꽃, 노루귀, 괭이눈을 피워 놓고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내려오다가 여기저기 진달래 잔뜩 흩어 놓고, 마을마다 목련, 영춘화, 산수유, 벚꽃을 뿌려 놓는다. 그래서 봄은 일반적으로 아름답다. 꽃구경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봄이 가진 아름다운 힘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은 가는 봄을 아쉬워하고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어 한다.


작가님이 글의 끝자락에 신윤복의 '사시장춘四時長春'을 붙들어 맨 것도 가는 봄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의 표시였으리라. 


동양화는 서양화와 달리 여백의 미를 내세운다. 비워서 채우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일일이 그리지 않아도 그려 놓은 것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을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이라고 한다.

 烘(화롯불 홍)의 의미는 ‘돋보이게 하다’는 것이고, 托(맡길 탁)은 ‘바탕을 배경으로 두드러지게 하다’는 것이다. 즉 '홍운탁월烘雲托月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구름을 돋보이게 하여 달을 두드러지게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홍운탁월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름雲’과 ‘달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렸다. 곧 기본적으로는 구름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달에 있다. 그러므로 구름의 색채가 생동감 있게 묘사될수록 달의 형상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구름의 형상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주객이 전도되어 예술적인 형상화에 실패하게 된다.


5시간을 넘게 걸으면서 허벅지에서, 종아리에서 산을 내려가라고 졸라댈 즈음, 진달래를 보았다. 이미 철쭉이 피어버린 지금까지 피어있는 진달래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진달래는 그대로 동양화이다. 드문드문 흩어져 피어 있는 것이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으로 그린 그림이다. 비워 놓은 곳을 많이 두어서 어딘가 서글픈 자신을 드러내는.


우리의 삶도 그럴까. 채우려는 욕심보다는 비워놓는 마음. 그 마음으로 맑은 정신이 스며들지 않을까. 신발 하나 살짝 흩어놓아 방안의 느낌을 단번에 드러내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보고, 또 그런 방법으로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비워서 채우는 그런 글쓰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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