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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Jun 14. 2024

28화 자식은 아버지가 기른다.

안성 죽주산성에 나란히 서 있는 소나무




제자 K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었다. K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을 했었는데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달받은 부고를 보니 돌아가신 분 사진이 있다. 사진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다.


K는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3학년 때 복학을 하여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가 한 살 많았다. 그래서 학생들은 형이라고 불렀다. K는 공부보다는 다른 데 관심이 많았고, 흡연도 해서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지도했다.


아침에 출근하여 교무회의를 하기 전에 교실에 들어가 반 아이들의 기분을 먼저 살펴본다. 이것은 아이들의 현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볼 수는 없다. 평소에 성실한 아이들은 바로 표가 나기 때문에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관심을 가져야 하는 학생들은 직접 확인을 해봐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슬쩍슬쩍 건드리며 장난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와 같은 반응을 보이면 별일이 없는 것으로 안심해도 된다. 그러나 어딘가 반응이 다르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이~ 멋쟁이 K. 아침에 오는데 이쁜 여학생이 눈짓하지 않더냐?"

하면서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런데 이 친구가 영 떨떠름한 얼굴이다.

'어? 등굣길에 뭔가 문제가 있었는데?'

여기서가 중요하다. 이때 바로 티를 내고 물어보거나 다가서면 학생은 바로 웅크리기 때문에 지도가 어려워지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른 학생들과 장난을 치며 확인 작업을 한다. 다른 아이들은 용수철처럼 통통 튀는 반응이다. 모두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조용히 반장을 불렀다.

"오늘 K가 뭔가 있는데 슬쩍 알아봐라."

"아, 네, 걱정 마십시오."

반장은 37년 동안 교단에 서 있으면서 만났던 학생 중에 정말 최고였다. 이 친구는 어느 상황에서든지 담임교사 입장에서 학급 친구들을 파악하고 대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변호사이다.


"선생님, 저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결석합니다. 이유는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K가 1교시 후에 교무실로 와서 말했다.

"그렇구나. 네가 학교를 못 나올 정도라고 판단했으면 그렇게 해야지. 알았는데 일주일 다 쓰지 말고 빨리 처리하고 왔으면 좋겠다. 기다리고 있을게."

붙잡고 막아야 하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학생 입장에 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이게 가출하겠다는 학생과 그를 지도하는 선생이 나눌만한 대화인가.


K는 아주 넉살이 좋은 친구이다. 나도 없는 우리 집에 와서 아내한테 밥을 얻어먹고 간 친구이다. 그것도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도망가면서. 아내가 밥을 차려주면서 슬쩍슬쩍 물어봤는데 특별히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고 한다. 학교 규정은 잘 지켰지만, 학급규칙은 적당히 어겨가며, 급우들과도  문제가 없이 지냈다. 한 가지 흡연하는 것만 빼면 말이다.


"선생님 K 말이에요. 이번에는 모르는 척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버지에게 대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마음이 혼란한가 봐요. 아버지가 심하게 혼내셨거든요."

점심시간에 반장이 와서 말했다.

"오케이, 알았다. 그런 것은 내가 잘 처리할 거니까 걱정 마. 이제부터는  K와 선생님의 일이다. 학급에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샘, 그런데 이미 다 알고 있어요. K가 다 떠들어버렸어요."


아주 안심이 되었다. 이것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니다. 제 입으로 떠들어버리고 다녔다니 말이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K는 점심을 먹고 무단 조퇴를 했다. 급우들에게 손까지 흔들면서.

"얘들아. 내가 서울에 가서 대학교 입학 정보를 수집해 올 거니까, 너희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알았지. 반장 말 잘 듣고."


다음날 직원회의를 마치고 3학년 교무실로 왔는데 K 아버님이 찾아오셨다. 딸기를 한 상자 들고 오셨는데 얼마나 많은지  작은 교무실에 딸기향이 물씬물씬 풍겨난다.

"K 아버님, 바쁘신데 어쩐 일이세요?"

얼른 커피를 한 잔 타서 드리면서 모르는 척 여쭤봤다.

"선생님, 제가 아들 녀석을 잘못 가르쳐서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아침에 좀 혼냈더니 저렇게 나가버렸네요. 서울 지 형집으로 갔는데 제가 얼른 데리고 오겠습니다. 죄송해서 어째요."

"K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저와 K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버님도 K를 잘 아시잖아요. K는 막아서면 안 된다는 거요."

"선생님도 잘 아시네요. 그래도 선생님이 이해를 해주시니 더 죄송하네요."

"걱정하시지 말고 기다려 보시게요. K형에게도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시고요."

"네, 제가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다 알고 말씀하시니 고맙네요."


K는 5일 만에 돌아왔다. 웃기는 것은 이 녀석이 진짜로 서울의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해 온 것이다. 소위 SKY와 혜화동에 있는 SKK 대학의 입시 자료를 몇 장을 들고 교실에서 무용담을 자랑하고 다녔다. K는 그런 학생이었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고, 생각의 폭도 넓었다. 그 와중에도 대학로에서 연극도 한 편 보고 왔다고 한다.


K는 급우들에게 왜 서울로 대학을 가야 하는지 열변을 토했다.

"얘들아, 서울은 단순히 우리나라의 수도가 아냐. 서울은 여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여학생들은 여기 사는 아이들과는 수준이 다르단다. 우리 어떻게 해서든지 서울로 가서 학교에 다니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갑자기 면학 분위기를 일으켰다. 물론 한 달을 못 가고 말았지만.


당시는 입학원서를 종이에 작성해서 접수창구에 직접 가서 제출해야 했었다. K의 실력으로 볼 때 서울로 진학하는 것은 힘들었다. 물론 아무 곳이나 가겠다면 가겠지만 K가 원하는 법대는 쉽지 않았다. 입시 상담을 하면서 엄청 싸웠다. K는 다시 가출을 하겠다고 나를 협박했지만,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삼장법사였고,  K는 삼장법사의 손바닥에 있는 손오공이었다. 지겨운 밀당(정확하게 말하면 K의 억지였다.) 끝에 J대 법학과 공법전공으로 원서를 작성해 줬다. K는 사법전공을 고집했지만 마지막날 고개를 숙였다. 당시 원서는 지원자의 도장만 있으면 작성 내용을 수정할 수 있었다. K는 그것을 이용하려는 마음으로 나의 지도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사실 K의 실력은 사법전공에 합격할 확률이 70% 정도는 되었으나, K의 아버님이 안전하게 합격할 수 있는 곳을 원했고, 어떻게 든 법대에 들어가면 사법고시를 합격하도록 최선을 다하시겠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셨었다. 그래서 그동안 일반적으로 커트라인이 낮았던 공법전공으로 밀었던 것이다.


K는 원서를 받아 들고 교무실을 나가는 즉시 '공법전공'에 두줄을 긋고 '사법전공'으로 바꾸어 원서를 넣었고, 합격하였다. 어찌 된 일인지 그해에는 공법전공이 사법전공보다 커트라인이 더 높았다.


그는 대학생이 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온몸을 던져 고시공부를 했고, 어느 날 합격증을 들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사모님, 그때 밥 잘 먹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찾아올 거니까 밥 주셔야 해요."



요즘 사람들은 법 따위는 전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경찰관을 폭행하고, 지구대에 가서 기물을 파괴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도 똑같다. 수업 중인 교실에 들어와서 교사를 폭행하고 극언을 퍼붓는다. 물론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 국한된 일이긴 하지만.

옛말에 "문제 학생 뒤에는 문제의 부모가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이런 말조차 꺼내서는 안 되는 분위기이다. 물론 교사가 학생을 무시하고 인권을 훼손하는 일도 문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말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면 어떻게 될까.


내일은 K 아버님 빈소를 찾아 분향을 해야겠다. 90이 넘으셨다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떠나보내드려야 하는 K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지금 생각하면 K가 고등학교를 잘 마치고,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변호사가 된 것은 다 K 아버님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교무실에서 어쩔 줄 모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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