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소한 것들
뒤쪽 창을 열었다. 세상이 변해 있다. 폭설의 세상이었다.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눈도 무서웠지만, 갑자기 포악해져 버린 날씨 앞에 한껏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최승호는 대설주의보라는 시를 썼다. 시인도 그랬을까. 세상을 덮어버린 폭설과 느닷없이 변해버린 세상이 무서웠던 걸까. 오죽하면 백색의 계엄령이라 했을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꿇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ㅡ 최승호, '대설주의보'에서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 포악한 군사정권의 군홧발에 짓밟히던 그때처럼 세상은 문을 닫았다. 무릎까지 덮는 눈에 속절이 없다. 영동 고속도로 만종 분기점에서 50중 추돌사고가 일어났고, 눈의 무게를 못 이기고 쓰러진 나무에 60대 노인이 숨을 거두는 등 온 세상이 무서움에 떨고 있다. 도시는 제 기능을 못했고,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나라 곳곳에서 치를 떨만큼 무서워하고 있을 것이다.
계엄령이 아니고 무엇이랴. 총칼을 들이대고 위협을 하는 것만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세상을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마음이 계엄령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짓이 계엄령이다. 오늘 폭설은 그런 의미에서 '백색의 계엄령'이다.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한다. 신발을 살짝 넘을까 말까 하게 내려걸으면 보드득 보드득 소리를 일으켜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의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 찰 만큼만, 숲길을 걸어 온 세상이 눈부신 흰빛을 쏟아내 마음속 깊이 쌓였던 그 무거운 세파를 다 털어낼 만큼만, 감고 있던 목줄을 풀어 준 강아지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들판을 뛰어다닐 만큼만, 오직 자신의 영화와 부귀공명만을 생각하는 잘못된 세상의 추한 모습을 지울 만큼만 내리는. 서설瑞雪이라고 하던가. 우리는 눈이 그렇게 내리기를 기다린다. 눈을 밟으며 사랑을 느끼고, 따스한 인간의 정을 이어가고 싶은 것이다.
"눈길을 혼자 돌아가다 보니 그 길엔 아직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겄냐. 눈발이 그친 신작로 눈 위에 저하고 나하고 둘이 걸어온 발자국만 나란히 이어져 있구나."
"그래서 어머님은 그 발자국 때문에 아들 생각이 더 간절하셨겠네요."
"간절하다뿐이었겄냐.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의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 산비둘기만 푸르륵 날아올라도 저 아그 넋이 새가 되어 다시 되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이 눈을 쓰고 서 있는 것만 보아도 뒤에서 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싶었지야. 하다 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ㅡ 이청준, '눈길'에서
새벽부터 아들 손을 잡고 눈길을 밟아가는 어머니의 걸음이 어떠했을까. 자신의 발이 얼어붙어도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걷는 눈길은 사랑이다. 아무리 심한 폭설이라고 해도 그런 마음으로 걷는 사람들은 다 이겨낼 수 있다. 그 걸음에 사랑이 담겨 있으므로. 그렇게 내린 눈은 사랑의 눈이다.
폭설이 왔으니 폭설을 맞서야 한다. 백색의 계엄령이 아닌, 잘못된 위정자들 마음이 아닌, 아들의 손을 잡고 새벽길을 걸어가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눈을 맞으러 간다. 폭설이 내려 세상을 계엄령처럼 뒤덮고 있어도, 폭군처럼 무지막지한 횡포와 포악함으로 세상을 덮으려 해도, 권력에 빌붙어 아첨하며 썩은 내를 풍겨내는 세력들처럼 폭설이 느닷없이 세상을 바꾸어 버린 듯해도 폭설의 속살을 들여다 보러 간다. 가야 한다.
예상했듯 눈의 세상이고, 눈의 시간이다. 잠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뒤를 따라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두려움이 무엇인지 눈에 묻힌 세상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자최눈 따위라고 눈길도 주지 않았을 때, 이 무서운 폭설은 그 뒤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자최눈 타령하다가 만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세상에 빠져버린 오늘, 땅을 치고 후회해도 50중 추돌 사고는 일어났고, 60대 노인은 눈에 희생되었다. 이제 길이 막히고, 도로가 얼어붙어 사람들이 살아갈 수가 없는 지경이다. 어디에서는 눈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그래도 좋다고 개들은 팔짝팔짝 뛰어다닌다. 개들의 세상이다.
산길을 걸었다. 눈을 맞아 눈에 덮인 눈사람이 되면서도 걸었다.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덮어오는 눈길.
아직 단풍을 떨구지 못하고 급작스레 눈을 맞은 나무들은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잔뜩 웅크리고 있다. 저를 누르고 있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까닭이다. 낙엽을 다 떨구어 겨울을 맞을 채비도 다 하기 전에 눈폭탄을 맞은 나무들은 흉측하게 가지가 찢겨 버렸다. 히리부터 부러진 나무들. 찢겨 볼썽사나운 나뭇가지마다 올라타 짓누르면서 40cm, 50cm로 쌓인 눈은 아름답지 않냐며 빈정거리고 있다. 세상을 바꾸어 놓은 설경을 좀 들여다보고 찬사를 보내라고 한다. 이 세상이 어찌 아름답지 않냐고, 이게 서설瑞雪이 아니냐고.
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
ㅡ 유종원, 강설江雪
아무리 세상을 덮어버린 폭설이라도 영원히 사람들을 억압하지는 못한다. 이제 해가 돋아 나는 날, 세상이 자기 거라고 의기양양 활개 치던 눈은 참 추악하게 녹아내리게 된다. 버티고 큰소리쳐도 꼴사납게 길바닥을 흐르는 더러운 물이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사람들은 눈이 스스로 녹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모두들 달려 나와 도로를 덮고 있는, 우리의 걸음을 가로막는 눈을 치우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 따위 눈에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 한순간 어리둥절했을지라도 사람들을 덮어버렸던, 잠시 우리들을 놀라게 했던 그 눈을 밟고 다니며 여기저기서 너 나 할 것 없이 삽이며, 넉가래며 있는 대로 다 가지고 나와서, 그것도 없으면 굴러다니는 종이상자 조각이라도 들고 나와서 내 집 앞에 진 치고 있는, 내 앞길을 가로막고 버티고 있는 저 몹쓸 눈을 다 쓸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백색의 계엄령이라고 불리는 폭설은 한순간의 횡포일 뿐이다. 우리들이 반드시 없애버리는 허울 좋은 허세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