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오늘 참 쓸쓸해 보입니다. 폭설에 짓눌려 무너지고 쓰러졌던 숲은 깊이 파인 생채기가 여기저기 남아 있습니다. 허리토막이 뚝 부러진 소나무는 찬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습니다. 안쓰럽습니다. 이따금씩 숲 속으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며들었습니다. 나무들은, 폭설에 짓눌렸던 나무들은 뿌리를 더 단단하게 내리고 제 키를 높이 세워 꼿꼿이 서 있습니다. 겨울바람에 맞서고 있습니다.
그날, 폭설이 세상을 덮어버렸던 그날, 세상이 황량하여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다고 으스대며 뽐내고 있던 그날, 숲을 이루고 있던 나무들은 폭설의 무지함을 보았습니다. 한 집의 대들보가 되기에 충분한 크기로 곧게 자라던 소나무 허리를 뚝뚝 분질러 놓던 폭설을 바라보며, 세상을 아름답게 치장한 게 아니라, 모든 것들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색깔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흰색으로만 만들어버리려고 하는 그 황당한 폭설을 보았습니다. 무섭기보다는 애처로웠습니다.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어느 곳에선가 햇볕은 세상을 덮은 눈을 녹여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 무거운 눈에 짓눌려 허리를 굽히고 있을 지라도, 아직 채 붉게 물들지도 못한 나뭇잎은 아직은 만산홍엽으로 물들어갈 가을이라고 항변하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아니고 지금은 가을이라고 말입니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눈만 털어내고 나면 적赤, 황黃, 등橙, 녹綠의 향연이 펼쳐질 가을이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들어선 숲은 겨울입니다. 겨울이라면 달고 있던 나뭇잎 죄다 떨구고 맨몸으로 겨울을 맞아 새봄의 잔치를 열기 위해 끝없이 내면을 다독여야 할 나무들은 말라비틀어져버린 나뭇잎을 그대로 달고 겨울 속에서 늘어서 있습니다.
불쌍했습니다. 처량했습니다. 저들은 비탈이거나, 바위 틈새이거나, 심지어는 벼랑 위에 선 채로 물을 빨아올려 잎을 피우고, 그 잎으로 햇볕을 받아 몸을 키웠습니다. 그렇게 숲을 이루었습니다. 숲은 많은 생명을 기르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의 공간이었습니다. 더 먼 곳까지 이름을 알렸고,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숲은 아름다웠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한 나무를 안아보았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전해옵니다. 아, 죽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겨울 동안 찬바람 온몸으로 받아내며 안으로 안으로 힘을 끌어 모아 더 많은 생명을 키워낼 것 같습니다. 쓸쓸하게 보여도 외롭지 않고, 앙상하게 보여도 내적으로 충실하게 살아 있습니다. 당당하게 숲을 지키고 살아있습니다.
나무들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서 있는 자리가 옹색하다거나, 햇볕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혼자 있어 외롭다거나, 높은 나무에 가려서 숨쉬기가 답답하다거나, 더 나은 곳으로 옮겨갈 수 없는 것을 한탄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서 있는 그곳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기 위해 힘을 씁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면서도 제 몸을 흔들며 고통을 다 참아냅니다. 햇볕이 뜨거우면 이파리를 더 무성하게 돋아내어 그늘을 만들고 온갖 짐승들에게 쉼터를 내놓습니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지니고 있던 이파리 모두 떨구어 두꺼운 보호막을 펼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숲 속의 생명들을 위한 피난처를 만들어 둡니다.
김하인의 소설 왕목王木을 생각했습니다. 대원군이 심어 놓았다는 금강송을 보호하려는 식물학자와 조선의 소나무를 말살하려는 일본 첩자의 암투 속에서 소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변색시켜 금강송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식물학자와 소나무가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나무는 말하여 소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으로 우리에게 다가섭니다. 일제히 일어서고 동시다발적으로 제 몸을 드러냅니다. 금강송이 자라고 있는 방향을 향해 몸을 곧게 세우고, 눈을 부릅뜹니다. 그게 나무가 말하는 방식입니다. 나무를 바라보면 식물학자가 아니어도 나무가 하고 있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나무는 우리의 삶의 방정식을 능히 풀어낼 만큼 늘 우리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린芽鱗을 생각했습니다. 나뭇잎을 다 떨궈내고 마른 줄기로 서서 파고드는 겨울의 냉기를 온몸으로 받아내어 꽃을 피우고 잎을 돋워 줄 단단한 비늘 조각 아린을 그려봤습니다. 새롭게 돋아날 휴면아를 꼭꼭 감싸고 있는 아린은 겨울에 존재가치가 돋보입니다. 즉,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 때라야 아린은 그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들마다 휴면아를 감싸고 있는 아린을 지니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숲길을 걷습니다. 아린은, 그리고 그 아린이 지켜낸 휴면아는 나무들의 내일입니다. 저 앙상한 겨울 숲을 다시 풍성하고 두꺼운 생명의 숲으로 만들어 낼 희망입니다. 나무들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커다란 숲을 만들고 살아갑니다. 그 숲에서 더 많은 생명체가 각자의 세상을 이어갑니다. 그러고 보면 숲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하나하나의 나무들이 이루어 낸 숲 말입니다.
아무 때나 숲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숲이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나무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숲을 만들기를 사람들은 저마다 기대합니다. 폭설이 내려도, 겨울에 싸여 일시적으로 휑하게 되어도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숲으로 들어섭니다. 겨울 숲은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가라앉아 버렸고, 모든 생명체가 얼굴을 묻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겨울 숲을 걷는 것은 나무들마다 아린이 휴면아를 보듬고 겨울과 맞서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도 나무와 같이 희망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숲의 가운데쯤에서 나무들의 환호성을 듣습니다. 저들이 이루어 낼 더 무성한 숲을 기다리며 부러진 나무 앞에 섰습니다. 부러진 나무 옆에 또 다른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우리 국민들도 폭설을 이겨낸 숲과 나무들입니다. 겨울을 견뎌내고 다시 잎과 꽃을 피워낼.
2024.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