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길 보부상길

11 등짐 진 자의 외침으로는

by 힘날세상


간이역 같은 춘양역 텅 빈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비가 올 것처럼 짙은 구름이 발목까지 내려앉았지만 열차는 오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고 우리 말고는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은 없었다.


손바닥만 한 춘양역 앞 공터에 주차하고 역사로 들어서는데 택시 기사가 웃음 섞인 인사를 건넨다.

ㅡ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 아직 열차 시각이 많이 남았거든요.

보스턴 야구모자를 쓰고 손가락에 키를 끼어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기사는 수더분한 느낌이지만 어딘가 편안함을 주는 후덕한 인상의 여성분이었다.

ㅡ8시 38분 차인데 분천, 아니면 승부역인가요? 제시간에 오지 않을 거예요.

ㅡ분천에서 내려서 외씨버선길 10구간을 걸으려고요.

동대구에서 춘양에 사는 친정엄마를 보러 오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택시 기사는 춘양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고 했다.

ㅡ지금은 열차가 서기는 하는데 언제 없어질지 몰라요. 사람 4천 명이 살고 있는데 겨울이면 추워서 밖에 못 나갑니다. 한때는 그래도 잘 나갈 때가 있었는데... 집에 있는 게 심심해서 남편 따라 택시 합니다.

앞뒤로 남편과 아내의 이름과 차 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네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한다. '모두들 열심히 사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플랫폼으로 나가 열차를 기다렸다. 텅 빈 플랫폼이 어딘지 안쓰러웠다.


출발시각을 15분이나 지나서 도착한 무궁화호 열자는 겨우 두 칸을 달고 있다. 그렇지만 조금도 미안한 기색도 없이 춘양역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차창으로 언뜻언뜻 낙동강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은 수직의 절벽 사이로 겨우 몸을 빼어내곤 하며 분천역에서 숨을 헐떡이며 멈추었다.


분천역은 산타의 세상이었다. 예전에 두 번이나 찾아왔던 분천역. 음식점이 들어섰고, 카페가 문을 열고 커피 향을 온새미로 뿜어내고 있다. 내일 다시 올 것이기에 못 본 척 시가지를 빠져나간다. 분천마을 입구 분천교에서 보부상길을 시작한다. 제법 몸집을 불려 기세 좋게 굽이치고 있는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여우천교를 건너자마자 가파른 걸음으로 산을 넘는다. 곧은재이다. 참 볼품없다고 느껴지는 고갯마루에 "봉화 12령/9령 곧은재"라고 작은 팻말이 놓여 있다.


수행 비서 구글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더니 옛날 보부상들이 울진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봉화로 들어오는 대표적인 12개의 고개를 십이령이라 부른다고 한다. 바릿재, 샛재, 너불한재, 저치재, 새재, 고치재 . 지금 넘고 있는 곧은재도 그중 하나이다. 선질꾼'이라 불리는 보부상들은 울진의 소금과 해산물을 지고 가서 봉화의 곡물과 담배 등으로 바꿔 왔는데 그때 그들이 넘나들던 고개가 12령이고, 그래서 외씨버선길 10길은 보부상길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보부상들은 험한 산세와 산짐승, 도적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십 명씩 떼를 지어 이동했으며, 그들만의 엄격한 규율과 조직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걷고 있지만 그들의 조직 문화와 엄격했던 규율을 한 번쯤은 생각하며 걸을 일이다.


곧은재를 넘어 어깨거랑골을 지나는데 한 가족이 둘러서서 김장을 하고 있다. 여자들은 열심히 김장을 하고 있고, 남자들을 큰 솥을 걸어놓고 돼지고기를 삶고 있다. 하하 호호 즐거움이 묻어난다. 가족이라는 것.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줄기세포가 아닌가.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났다. 서울에 살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 곁에서 살겠다고 고향을 떠나온 나. 자주 만나지 못해도 애틋한 정이 흐르고 있다. 가끔 만나서 밥을 먹고, 전화하고. 그러나 늙은 부모의 마음은 늘 같이 살고 싶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는데 커가면서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게 되고. 안타까울 뿐이다.


2차선 도로를 따라 걷다가 배나드리라는 물도리동을 내려다본다. 가을이 깊어가는 풍경 속에 들어앉은 펜션.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삶을 잇고 있다. 휘돌아가는 강물이 남기는 이야기를 얻어다가 버무리고 엮어서 애증 愛憎으로으로 점철된 삶을 내놓는다. 흐느끼기도 하고, 파안대소를 터뜨리기도 하면서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간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들녘에서 살았기에 이렇게 커다란 강물이 산골짜기를 이루며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 이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으로 향하는 것인가. 강물이 흘러가는 곳,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삶의 통로였을 텐데.


현동터널 앞에서 망설인다. 반대편 출구가 빤히 보이는 짧은 터널을 통과하면 지름길이다. 그러나 외씨버선길은 터널 밖으로 빙 돌아가도록 유도한다. 강변을 따라가라고 한다. 아픈 다리는 터널을 잽싸게 통과하라 하고, 강변의 아름다움을 익히 보아왔던 눈과 마음은 무슨 소리냐며 강변을 따라 느릿한 걸음을 걸으라고 한다. 이런 걸 갈등이라고 하는 건지, 고민할 것도 없는 재빠른 선택이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문학적 상상력으로 나날을 잇고 싶고, 논리보다는 감성을 내세우는 대문자 F이고 보면 물어볼 것 것도 없이 돌아가는 강변으로 길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허벅지와 종아리에서 퍼져 나오는 방사통의 끝이 너무 날카로웠다. 이렇게 눈치싸움을 하고 있는 사이 아내는 말할 것도 없이 강변길로 가는 게 아닌가.

ㅡ강변으로 가는 거야?

ㅡ그럼 강변으로 가지. 뭐 그런 당연한 소리를.

외씨버선길이 아니더라도 둘레길 같은 걷기 여행에서는 단거리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생각과 생각을 이어야 하고, 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저 마을 사람들에게 넘겨줘야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느리게 걸어야 하고, 그 느릿함 속에서, 그 이야기를 따라 걷는 사람의 감정이 살찌우게 된다. 또 그 감성을 얻어내기 위해 오늘도 이 깊은 산골짜기를 따라 걷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어설픈 나그네는 팍팍한 허벅다리에 짓눌려 터널을 바라보는 것이다.


상당한 거리를 돌아간다. 그러건 말건 낙동강은 늦가을을 보듬고 세차게 흘러간다. 이제 곧 서리가 내릴 거라고, 눈이 퍼부을 날이 올 거라며 서둘러 등을 보인다. 물도리를 돌아가다가 사과밭을 보았다. 사과를 따고 있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약속이나 한 듯 전봇대 아래에 주저앉아서.

ㅡ혹시 몇 개만 살 수 있을까요?

아내는 견디지 못하고 좀 가녀린 표정을 건넸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 안에 가득 차 올 상큼한 향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아침마다 먹고 있는 사과의 향을 청송에서부터 견뎌내고 있는 터이다.

ㅡ한 번 드셔보세요. 흠이 조금 있긴 하지만 맛은 좋을 거예요.

늦가을에 나무에서 금방 딴 사과의 맛이란 함부로 형용하지 않아야 한다. 입 안으로 차오르는 싱싱한 과즙은 느낌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아내는 배낭을 뒤져 천키 초콜릿 한 봉지와 누룽지 몇 봉을 가지고 선별작업장으로 뛰어간다.

ㅡ주인아주머니가 고맙다고 두 개를 더 주시네. 오늘 우리 수지맞았어.

커다란 사과 두 개를 들고 오며 아내는 연신 웃음을 지었다. 사과 한 개에서도 행복을 볼 줄이야.


소천면에서 짬뽕 한 그릇씩 먹고 춘양면으로 넘어가는 살피재로 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 양 옆으로 저마다의 색으로 단장한 단풍은 산자락까지 끌고 내려왔다.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좁은 도로만 남겨 놓고는 주변은 온통 가을이 짙어가고 있다.


등짐을 지고 무리 지어 이 길을 넘었다는 보부상들. 어깨에 가족들의 삶을 짊어진 그들은 울진에서 봉화로 이어지는 열두 개나 된다는 고갯길을 무엇으로 넘었을까. 고갯길을 따라 떠돌아야 하는, 등짐을 지고 부초浮草 같은 삶을 살아갔을 보부상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움켜쥐고 걷고 또 걸었을 그들은 자신들의 옆구리까지 내려오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는 했을까.


등짐 진 자들의 외침은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비틀거리는 내 걸음으로 그들의 외침을 들어보려고 하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걷는 걸음에서는 조금도 삶이 담겨 있지 않은 까닭이다. 높은터라는 고개. 단풍빛을 가득 머금은 바람이 넘어가는 고개에서 시작하는 자작나무숲길. 발목을 덮어오는 낙엽이 오후의 햇살을 품고 있는 숲길에서 즐기려는 걸음으로는 삶을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는 등짐을 진 저들의 외침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자작나무 숲을 빠져나와 만난 가마골은 그동안 지나온 여느 마을과 다름없이 적막을 내놓고 있었다. 마을마다 적막에 싸여 있는 것을 보고 걸어왔기에 앞서 가는 아내를 따라 터덜터덜 걸었다. 춘양역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건널목을 건널 때까지 그냥 걸었다. 춘양역을 몇 걸음 남겨 놓고 생뚱맞게 "태양 다방"이 있다. 웃음이 나왔다. 쓴웃음. 이런 곳에 다방이라니. 사람의 냄새도 나지 않는데 다방이라니.


보부상들이 줄을 지어 넘었다는 길을 걸어왔는데, 그들의 굴곡진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길을 따라왔는데 나는 무엇으로 내 걸음을 형용할 수 있는가. 아무런 화두話頭 챙기지 못한 내 걸음을 누구와 나눌 수가 있을까. 커다란 자물쇠를 달고 있는 춘양역 '태양다방'의 출입문처럼 내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만큼 걸음 역시 비틀거렸다. 앞서 걷고 있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은 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건가.


내 차만 덩그러니 서 있는 쓸쓸한 춘양역. 어느 날 갑자기 열차가 서지 않고 문을 닫을 것 같은 춘양역에서 대만 자이현의 펀치호역(奮起湖車站)을 생각했다. 아리산에서 벌목한 나무를 나르기 위한 삼림철도의 중간 기착지였던 펀치호역(奮起湖車站). 해발 1,405m에 위치하고 있는데 대만의 산간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는 명소이다. 한 사람이 겨우 걸을만한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오고 갔었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호황을 누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춘양역은 그대로 춘양역이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문이 닫힌 '태양다방'이 '여기는 금연구역'이라는 무색하기 그지없는 안내판도 거두지 못한 채로 후줄그레하게 서 있어도. 외씨버선길을 걸으려는 걸음으로 나 같은 나그네가 혼자, 좀 쓸쓸하다는 생각으로 서있어도, 열차가 조금 늦게 올지라도 춘양역은 그냥 춘양역으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인터라켄의 산악열차처럼 춘양역, 분천역, 양원역, 승부역에서 사람들은 열차를 기다리고, 하나둘씩 시나브로 찾아와 당시 벌목공들이 먹던 도시락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펀치호역(奮起湖車站)처럼 춘양역은 춘양역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10분이나 늦게 와서도 미안한 기색 없이 참 느리게 운행하는 1671호 무궁화호 같은 열차가 더 느리게 다닐지라도, 산타마을로 변장한 분천역, 주민들이 세웠다는 양원역, 세 평 하늘길의 승부역과 함께 춘양역은 백두대간 협곡 열차가 정차하는 춘양역으로 영원히 남아 있어야 한다.


춘양 터미널 옆에 있는 숙소로 가면서도 마음은 자꾸만 춘양역을 기웃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