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산밖 세상이 그리울 때는
춘양 터미널에서 우련전으로 가는 첫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터미널에는 직원이 출근하지 않은 시각. 불은 켜지지 않고 있다. 몇 대 늘어서 있는 버스들은 모두 두 눈을 질끈 감고 문을 굳게 닫은 채로 뾰로통하게 서 있었다. 불이 꺼진 우련전이라는 행선지를 알리는 전광판. 청송, 영양의 버스와 달리 기다란 직사각형의 표지판을 달고 있지 않은 모습이 어딘가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70년대를 소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청송과 영양의 농어촌 버스를 그리며 찬바람만이 휘젓고 있는 터미널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서벽으로 간다는 아주머니 두 분도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너무 일찍 나왔다고 했다.
대합실에 불이 켜질 무렵 51번이라고 불을 밝힌 버스가 들어왔다. 봉화에서 춘양을 거쳐 서벽3리까지 가는 버스이다. 내일 봉화에서 타야 할 버스라서 눈여겨보았다. 기사는 버스를 세우자마자 문을 닫고 옆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기사들이 아침 식사를 하는 곳이다. 터미널 안은 썰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람은 막아 주었기에 바깥보다는 훨씬 나았다. 화장실도 있고, 한쪽에는 커피자판기도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서벽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는 두 분과 우련전으로 가는 우리 둘, 모두 넷이었다. 출발 시각을 10분쯤 넘기고서야 식사를 마치고 나온 기사들이 문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두 방향 버스는 같은 시각에 출발했다. 그때쯤 어둠도 물러가고 있었다.
우련전까지 승객이라고는 우리 둘 뿐이었다. 40여분 이상 쉬지 않고 달린 버스는 아직 잠이 덜 깬 우련전 정류장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2주 만에 다시 온 우련전 마을은 교교하기 그지없었다. 영양과 경계 지역인 이곳까지 버스 편이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것도 무료로 운행하는 버스가 몇 사람이 살지도 않는 이 벽촌僻村까지 선을 잇고 있다니. 하루 세 번 들어오는 버스에 대해 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들의 세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외씨버선길은 대부분 산골짜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 깊은 골짜기에는 자기들만의 이야기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집이 있고, 터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때이기도 했겠지만, 우리에게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 혼자 걷는 사람이나 묻혀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서로의 삶의 결이 다르기 때문일까.
영양터널을 지나는 도로는 31번 국도이다. 그런데도 지나가는 차량은 거의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것처럼. 언젠가 영덕 강구항에서 저녁을 먹고 청량산으로 이동한 적이 있다. 자동차의 불빛에 드러난 것은 좁다랗게 이어지는 2차선 도로와 금방이라도 도로를 삼켜버릴 듯이 내려오는 산자락뿐이었다. 갑자기 흰 옷을 입고 산발한 귀신이 막아설 것 같은 느낌. 내비게이션만 따라가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참 나약하기 그지없는데도 거만하고 야만스럽다.
산타하늘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로를 따라 걷는다. 숲 속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 마을 뒤쪽으로 난 시멘트 도로, 산자락 옆구리를 돌아가는 임도. 24km를 걷는 동안 대부분이 산속으로 이어지는 임도였고, 자동차가 다닐 정도의 마을길을 따라 걸었는데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ㅡ우리가 지금 걷는 길은 사람 사는 세상이 맞는 걸까?
ㅡ리본과 어쩌다가 만나는 이정표가 아니라면 영락없는 조난이지.
길고 긴 임도는 지루함을 지나 무서움으로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고통에 빠뜨렸다. 그 길 위에서 어이없게도 짧은 순간 무아지경無我之境에 젖기도 했다. 굽이굽이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텅 빈 길에서 예전에 마라톤에 심취해 있을 때 자주 느꼈던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를 맛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솟아나는 천연 마약 성분 엔도르핀이 지배하는 순간.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
미국의 심리학자인 A.J. 맨델이 1970년대에 처음 사용한 용어로, 달리기 중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짧은 행복감이나 도취감을 뜻한다. 허벅지가 터져 날 듯한 고통 속에서 어느 순간 몸이 가벼워지고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 팔다리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은 경쾌함, 우울감이나 불안이 사라지는 평온함.
나는 잘 안다. 러너스 하이는 두 얼굴을 가진 아누스라는 것을. 행복하고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 안에서 나의 몸은 무너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허벅지와 무릎에 달라붙은 고통은 떨어지지 않는데 기분은 좋아지고, 마음은 평안해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번에 청송에서 영양까지 외씨버선길 8길을 걷는 동안 다리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던가. 몸이 견뎌내는 아픔을 눈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으로 보상하려는 것이 등산이고 걷기이다. 일주일을 이어서 청송구간 47km, 영양구간 70.8km 도합 117.8km를 걷고 나서 다리에 쌓인 통증이 사라질 즈음에 심폐기능이 얼마나 좋아졌던가. 그랬기에 오늘 다시 이 지루하고 무섭기까지 한 길을 걷는 것일 게다.
산길이든, 들길이든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두고 온 바깥세상이 그립다는 것이다. 복잡하고 수선스런 세상에서 얽히고설킨 심사心思를 떨쳐내겠다고 하지만, 삶의 근원인 내가 발디디고 사는 세상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복잡한 심사心思를 떨쳐낸 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향한 부르짖음이리라. 현실적인 삶에 대한 애착.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70년대의 국문과는 근원이 공부하고는 등을 지고 있었다. '좌우지간 놀자' 대대로 내려오는 구호였다. 강의실보다는 잔디밭이 더 좋았고, 롯데 자이언츠(프로야구 출범 이전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이 이끌었던)의 야구장으로 몰려가던 시절. 국어학 교수님은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는 책을 권했다. 경희대학교 서정범 교수가 쓴 수필집인데 그 책에 대한 감상문을 과제로 제시했다. '놓친 열차'는 우리가 이미 잃어버렸거나, 잡지 못한 기회, 혹은 과거의 인연을 상징하는데 교수님이 우리에게 이 책을 읽도록 한 것은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고 노는 데 빠져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수님우리를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은 노느라고 지나쳐버린 대학 시절이 훗날 돌아보면 가치 있고 지니고 있을 만한 것이었다는 것을.
독후감을 제출하고 나서 교수님에게 불려 갔다. 독후감 내용이 엉터리라는 것이었다. 책에 나오는 수필에서 한 남자를 친구에 빼앗긴 여선생의 이야기에서 놓쳤기 때문에 평생을 아름다운 것으로 간직하는 것이라는 구절을 들이밀며 공부 안 하고 노는 것을 미화美化했기 때문이다. 혼쭐이 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똑같다.
내가 잠시 내려놓고 온 나의 세상. 이 깊은 산골짜기를 걷고 있을 때 그것들이 얼마나 간절하고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여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 이것이 내가 걸어서 얻어내는 것일 테니까.
참 끝없이 이어지는 임도를 걷는다. 사람이 만든 도로인데도 사람의 통행은 거의 없는 길. 혹여라도 지나간 사람들의 발길에 남아 있는 이야기를 스스로 찾아가며 걸어야 하는 길. 지겨울 만큼 구불거리며 돌고 돌아가는 길.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길. 임도에서는 언제나 산밖 세상이 그립다. 꼭 한쪽 발을 내가 두고 온 세상에 딛고 있는 듯한 길.
전주에 살 때 비 오는 날이면 임도를 걸었다. 금구 명품길, 위봉폭포 주변을 감아도는 길, 방장산 아래를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 이럴 때는 우산보다 비옷이 좋다. 값싼 비닐 우의. 어깨를 두드리는 빗방울의 감촉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좋은. 빗방울의 무게에서 삶의 무게까지는 아니지만 삶이 쏟아내는 푸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ㅡ이렇게 살고 있었네.
ㅡ견뎌낼 만한 무게였구나.
오늘 우련전에서 분천역으로 비틀비틀 넘어가는 임도는 '삶의 무게'보다는 그것들에 대한 은근한 그리움이 이어지고 있다. 은퇴하고 5년. 세상이 자꾸만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을 본다. 젊었을 때는 괴로움이었고, 힘든 시간이었던, 그래서 세파世波라고 투덜거렸던 저 산밖의 세상. 무엇이 그것들을 붙들고 싶게 하는 것일까. 어디선가 다가오고 있을 소풍의 끝이 흘려내는 주톳빛의 손짓이 느껴지는 까닭일까. 어쩌면 삶에 대한 미련일까. 남은 날에 대한 두려움일까.
임도를 벗어나고서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마을길 같은 길을 한참을 걸어 내려간다. 행정구역으로는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이고 이름하여 여우천길이라는 시멘트 포장도로.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간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될 때 이렇게 텅 빈 길을 지루할 만큼 걸어간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길의 끝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여러 개의 문 중에서 하나를 열고 들어가게 된다는. 안에서는 열 수 없다는 문.
늦가을 오후의 햇볕은 잰걸음으로 산자락을 따라 내려왔다. 눈으로 보면서도 사람살이의 느낌이 나지 않는 외딴 농가, 휑하니 바람만 지나가는 묵은 밭, 뭔가 서러운 느낌이 돋는 듯한 시멘트 길. 분명히 임도를 걸으면서 그리워했던 산밖의 세상인데 산속을 빠져나오는 걸음은 팍팍하였다.
즐겁게 걸어야 할, 힘차게 걸어야 할 외씨버선길에서 한 번쯤은 잿빛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길을 걷는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분천산타마을 다리를 건넜다.
9길 산타하늘길을 걷기 위한 TIP
* 차량을 춘양터미널 부근에 주차하고 06시 40분에 터미널에서 출발하는(우련전행 버스는 06시 40분, 09시 10분, 18시 30 하루 3회 운행) 버스를 타고 종점인 영양 터널 앞 우련전 마을에서 하차하여 걷는다.
*갈림길(임도에도 표지가 잘 되어 있다)마다 이정표가 있어서 걷는데 어려움은 없다.
* 분천교에서 9길 걷기를 마친 후에는 분천교 보건지소 정류장에서 오후 3시에 출발하는 춘양행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 단, 2시 55분부터는 정신 차리고 분천교 방향을 잘 지켜봐야 한다. 버스가 정류장 옆 분천교에서 돌려 나가므로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