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 이어지고 있는 길,
동강변에서 새벽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여느 시골이 그렇듯이 한적하다 못해 적막했다. 밤새도록 쌓였던 어둠은 쉽게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침낭 속의 온기를 만지작거리며 차창밖으로 바라본 하늘은 여전히 숯검댕이 그대로였다. 차박의 맛은 사실 바로 이것이다. 날것 그대로 다가오는 자연의 느낌도, 침낭 속의 뽀송뽀송한 따사로움도 오롯이 나의 것이 되는.
외씨버선길을 걸으면서 이어왔던 마음은 세파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산길을 걸으면서 지위를 생각할 수 없고, 강물을 건너면서 어찌 물욕을 품을 수 있을까. 굽이굽이 돌아가는 임도를 걸으면서 세상을 향한 야망을 품을 수 있겠는가. 오직 걸음이 힘들고, 숨이 가빠오는 순간순간에 나 자신을 돌아다보는 것이 전부였었다.
퇴직하면서 가장 먼저 내세웠던 것은 삶의 현장에 얽매이지 말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주종관계에서 벗어나자는 것.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가고 싶은 곳이면 언제든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게 되었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은퇴 후 5년 정도의 세월이 쌓이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삶은 무겁게 어깨를 눌러왔다. 그것은 무기력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핑계였을 수도 있다.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침대에 드러누웠고,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글을 쓰겠다고 노트북을 열어놓았으나 글은 써지지 않았고, 하루 종일 방문을 열어보지도 않는 참 나태한 생활에 짓눌려 있었다. 배낭을 패킹하지도 않았고, 러닝화는 신발장 어느 곳에 팽개쳐져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연속되었다. 어쩌면 우울한 세상의 문턱까지 이르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었다.
천하의 김훈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걸로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자전거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훈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 것이다. 민주지산 자락을 넘어가는 도마령을 한겨울에 자전거로 넘는다는 것은 가혹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곳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빌미로 자신을 깊고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것이었다. 그 구렁텅이에서 그는 세상을 보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간 속에서 김훈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김훈은 삶을 말하고 있었다.
외씨버선길은 고희의 늙은이에게는 제법 힘이 부치는 길이었다. 40년을 산에 다녔지만 매일 20km 정도의 산골짜기를 걷는 일은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다. 이틀을 걷고 난 저녁에 호흡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어깨를 내리누르는 강도는 무거웠다. 종아리를 주무르며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다 보면 마의 구간이 있다. 25km에서 35km 구간. 유체이탈의 고통을 느끼는 구간이다. 죽음이라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다. 정말 몸과 정신이 분리되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달리고, 누군가는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흩어지는 정신이 더 문제다. 어떻게든 주저앉지 않고, 무너지는 정신줄을 거머쥐어야 한다. 무의식의 상태에서도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한다. 어느 순간 의지가 샘솟아 오고 육신의 고통은 사라진다.
외씨버선길로 나선 것은 나를 추스르기 위한 걸음이었다. 무뎌지고, 무너져가는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든 다시 세워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어쩌면 집을 나설 때 나는 이상의 날개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외씨버선길은 생생한 삶의 현장은 아니었다. 길은 마을을 지나고 있었지만, 모기장을 통과한 바람처럼 맥없이 흩어져버렸다. 삶의 이야기만 황량한 밭이랑에 내어 놓은 채 문을 꼭꼭 닫아걸었고, 나는 쓸쓸함만 떠안고 걸어야 했다. 길은 산속으로 깊이 숨어들었고, 그만큼 비틀걸음을 걸었다. 외로웠고, 허전했다. 말하자면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다. 다행인 것은 그때 '은화처럼 맑'은 정신을 보았던 것이다.
1차 7일 동안 청송, 영양 구간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이상의 날개 덕이었다. '은화처럼 맑'았던 정신. 늙고 볼품없을지라도 내가 움켜쥐고 있는 정신. 나의 정신. 일주일 만에 다시 나설 수 있게 해 준 가느다란 나의 정신. 2차 7일 동안 봉화, 영월 구간을 제법 힘차게 이끌었던 나의 정신. 사랑하는 나의 정신. '은화처럼 맑'았던 정신.
외씨버선길을 거의 다 걸을 즈음에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걸어왔던 길, 마을, 강 그리고 산길들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이어졌다. 징검다리 같은 모습으로 내 감정 속으로 이어졌다. 유치환의 말대로 외씨버선길은 '아라비아 사막'이었다. '불사신 같이 작렬하는 백일白日',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외씨버선길을 다 걷고 난 지금, 석 달 열흘이 지난 지금, '원시의 본연한 자태'는 아닐지라도 노년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다. 회초리를 하나 들고 무너지지 않도록, 무뎌지지 않도록 초달楚撻하고 있다. 감사하다. 또 다른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준 외씨버선길에 감사하고, 그 외롭고 허전한 시간을 잘 간직한 나의 비틀걸음에 감사하고, '은화처럼 맑'은 정신을 담고 있었던 늙은 나에게 감사하다. 무엇보다 어려울 때마다 곁을 지켜주고, 군말 없이 하루 세 번 밥상을 차려주는 아내에게 감사하다.
외씨버선길은 내 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외씨버선길, 느낌으로 걷는' 연재를 마칩니다.
부족한 글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