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굳이 삿갓을 써야 하리.
김삿갓 면사무소 앞 큰 도로에서 김삿갓 문학관으로 가는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6시 20분이 지나고 있었지만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골은 적막감만 감돌았고, 은근한 추위는 여러 번 옷깃을 여미게 했다. 손을 비비고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데 두 줄기의 불빛으로 어둠을 헤치면서 버스가 다가왔다. 버스를 막아서듯이 도로에 내려서 손을 커다랗게 흔들었다.
ㅡ여기서 타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손을 흔드는 것까지.
어제 김삿갓 문학관에서 상운사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릴 때 마침 도착한 버스 기사에게 들었었다. 첫차는 정류장이 아닌 큰길에서 기다려야 하고, 길을 막고 수신호를 해야 한다고. 만약에 어제 버스 기사에게 묻지 않았더라면, 면사무소 앞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버스를 못 탔을 게다.
ㅡ외씨버선길을 걸으시나요?
ㅡ네,
ㅡ14구간?
ㅡ네 면사무소까지요.
ㅡ차는 면사무소에 두셨지요?
ㅡ네, 거기에 주차했어요.
ㅡ잘하셨어요.
부서질 듯 달린 버스는 텅 빈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ㅡ아침은 드셨나요? 저 앞에 불 켜진 집에 가봐요. 거기가 밥집이니까.
ㅡ감사합니다.
신발을 고쳐 신고 다리를 건너 도로를 따라간다. 14구간은 김삿갓 계곡을 따르다가 와석 1리에서 옥동천을 따라가다가 가랭이봉을 넘으면 된다.
김삿갓 유적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가 오른쪽에 김삿갓 계곡을 끼고 걷는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이른 아침인 까닭도 있겠지만, 고즈넉하면서도 청아한 기운이 가득하다. 중간에 만나는 펜션이나 2차선 도로도 무언가 내가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월군은 관광의 도시답다. 김삿갓면, 한반도면, 무릉도원면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세상을 향해 손짓을 한다. 이름만 들어도 그 지역의 특징이 확 드러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오늘 걷게 되는 김삿갓면만 하더라도 걸음걸음에 김삿갓의 이미지가 얹어질 것은 뻔하다.
김삿갓문학관 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 도로를 따라간다. 김삿갓 유적지라고 안내하는 곳에 이르렀으나 그냥 지나친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기 전 김삿갓로를 버리고 왼쪽 숲으로 들어선다. 이제부터는 옥동천으로 이어지는 계곡, 김삿갓 계곡을 따라 걷는다. 펜션 이름도 김삿갓이고, 김삿갓 휴게소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맞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김삿갓이다. 행정구역이 김삿갓면이니까.
김병연. 조선 후기의 풍류시인. 과거를 위한 향시에서 할아버지를 짓궂게 욕하는 내용의 답안지를 제출하여 장원을 했으나 그 사실을 알고 난 그는 삿갓을 뒤집어쓰고 세상을 떠돌았다. 뛰어난 문장이었던 그는 기행奇行과 풍자로 오늘날까지 그 발자취가 전해오고 있다.
과거 시험에서 할아버지 김익순의 행적을 비난하는 답안을 작성한 것을 알고 나서 4년 동안 폐인처럼 지내다가 방랑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일설에는 사촌이 과거에 합격했으나 김익순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합격이 취소되는 것을 보고 방랑길로 들어섰다고도 하고, 평안도에 살던 노진이라는 선비가 김삿갓과 라이벌 관계에 있었는데 김삿갓을 비방하려는 생각으로 조부의 허물을 끄집어내 시를 썼는데 그것이 와전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고도 말한다.
김삿갓 계곡을 따라 이어지던 길은 김삿갓 계곡이 옥동천과 만나는 지점에서 골짜기를 벗어나 와석 1리로 이어진다. 와석 1리 마을회관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분이 다가왔다.
ㅡ외씨버선길 걷고 있는 거예요?
ㅡ네, 김삿갓면사무소까지 갑니다.
ㅡ우리 동네가 예로부터 물 맑고 인심 좋은 동네입니다. 나도 서울에서 살아가 퇴직하고 돌아왔는데 요즘에는 서울 학생들이 유학 오고 있습니다. 집도 주고, 영어 가르치는 원어민 교사도 있고, 과외 공부다 다 시켜줍니다.
이장직을 맡고 있다며 마을을 위해서 여려가지 일을 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ㅡ외씨버선길을 마을로 들어오지 않고 저 앞 강변을 따라가도록 바꾸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니 반갑기도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어서요.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조용하던 마을에 외지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돌아다니면 좋을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외지 사람들 만나서 세상 소식도 듣는다고 좋아하던 분들도 있었다.
타 지역에 와서 어쩌면 유람차 걷는 모습이 좋게 보일 리도 없겠지만, 적적한 마을에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라도 나누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순전히 이기적인 생각일까. 김삿갓이 썼다는 풍자 시가 생각이 났다.
此坐誰家坐 이 자리는 누구의 집인가?
主人不見客 주인은 나그네를 보지 못하고
我亦不見人 나 또한 사람(인간다운 사람)을 보지 못했네
所以是地獄 그러니 여기가 바로 지옥이로구나.
시골 사람들이 각박해진 이유는 분명 도회지에서 발걸음 한 사람들의 행적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세상은 날카로워지고 험해지고 있는 것이다.
옥동천을 버리고 가랭이봉을 가파르게 오른다. 한여름이라면 땀 좀 흘려야 할 것 같은 산길을 오르면서 내 걸음이 어떤 즐거움을 가져다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웃었다. '얻어지는 것을 바라고 걸었던가.' 걷다 보니 힘들었고, 어느 순간 즐거움으로 변하기도 했었지 않은가. 내가 하는 일에서 꼭 무엇인가 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라던 이상의 심사를 알 것 같았다. 외씨버선길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걷는 걸음이 가져다주는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 듯하였다.
가랭이봉 꼭대기에 앉아 굽이치는 옥동천을 바라본다. 삶이 이렇다. 굴곡이 있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휘어지는 삶의 굽이굽이마다 눈물과 통한이 가득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굳어버린 빵 한 조각을 냉수 한 모금으로 넘기는 것도 사람이 살아가는 일면이 아닐까. 그런데도 발아래에 펼쳐진 풍경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이 아닌가.
김삿갓 문학길의 끄트머리에서 오늘 걸어온 여정을 돌이키다가 세상을 떠돌았던 김삿갓을 다시 생각한다. 세 아들과 부인 장수 황 씨를 떨쳐내고 그렇게 세상을 떠돌아야 했을까. 이 깊고 깊은 산골에 파묻혀 눈물과 회한의 시간을 이어가야 하는 가족들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흘릴 가슴 저림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걸음은 유쾌해야 한다. 삶의 한 방편을 위한 걸음이든, 유람차 나선 걸음이든, 정처 없는 방랑의 걸음이든 말이다. 말은 쉽다만 실제의 걸음은 결코 아니다. 여행을 위한 걸음이면서도 내던져버리고 싶기도 하고, 땀 흘리고 거친 숨을 몰아 쉬는 걸음일지라도 가족을 생각하며 힘을 내기도 한다. 오늘 김삿갓문학길을 걸으면서 몸도 마음도 꽤 무거운 걸음을 걸었다. 훗날 돌이키면서 많은 생각을 할 것 같은 걸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