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길 마루금길

14 그것은 우리 삶의 무늬였다

by 힘날세상





김삿갓 문학관 주차장에서 예약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은 늦가을이지만 서리가 하얗게 내렸고 옷깃을 흘깃거리는 추위는 제법 날카로웠다. 험준하게 솟아오른 산등성이들이 겨우 내어 놓은 비좁은 골짜기를 따라 몇몇 밥집이 옹색하게 들어앉아 있었으나 불을 밝힌 집은 없다. 두르고 싸매서 춥지는 않았으나 마음으로 파고들어 오는 차디찬 기운은 스스로 감내해야 했다.


20여 분을 기다려 택시를 탔다. 내 또래의 기사는 걱정부터 했다. 선달산, 어래산은 1,200 미터가 넘는 산이고 걷는 거리가 멀어서 힘들 거라고. 게다가 낙엽이 뒤덮고 있을 산길은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닐 것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한 번도 걸어보지는 않았으나 택시를 탄 산객들로부터 얻어 들은 거라며 환하게 웃었다.


ㅡ큰 아들이 느닷없이 직장을 버리고 신학대학을 간다는 거예요. 안된다고 했죠. 목회자의 길은 천부적인 사명감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라고요. 도봉구 어디에서 힘들게 목회를 했는데 결국은 못 견디고 내려왔어요. 아들 며느리에 손자까지 이런 골짜기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살았는데 그 와중에 아들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서울에서 근무한 지 두 달이 됐어요. 한 시름 놓았지요. 3년 전에 눈 감은 마누라도 좋아할 건데..... 이제 택시는 그만두고 이리저리 주유周遊하며 늙어서 힘 빠진 걸음일망정 즐겨보려고요.


어쩌면 기사는 속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40 넘은 자식이 부초浮草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쓰렸을까.


상운사 아래에서 늦은목이 방향으로 걷는다.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할 걸음이다. 나흘 동안 연속해서 걸어온 터라 종아리를 휘젓고 다니는 통증이 제법 위세를 보였으나,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적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늦은목이까지 은근한 오르막을 따라 1km 정도 걸었을 때는 걸을만한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늦은목이에서 백두대간 등성이를 밟아 선달산으로 오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1.9km를 올라야 한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걸음은 시나브로 느려지고 있었다. 아직은 산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까닭에 걸을 만했다.


ㅡ걸을 만 하지?

ㅡ이제 시작인데?

ㅡ며칠 연속해서 걷고 있으니까.

ㅡ그래도 우리가 40년을 산에 다녔는데 걱정 마.


선달산(1,236m)은 제법 커다란 정상석 하나 세워 놓고 있었으나 참 볼품이 없다. 그래도 백두대간을 이루는 산봉우리라고 우쭐거리고 있었지만, 특별한 표정을 짓지 못하는 둥그런 육산肉山에다가 촘촘하게 늘어선 나무들에 둘러싸여 잔뜩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산봉우리는 산자락을 타고 올라오는 나무들 다 멈춰 세우고, 울퉁불퉁 바위로만 치장해야 한다. 사방팔방으로 산밖 세상을 내려다보며 호령할 수 있어야 소위 '명산名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산으로 다니다 보면 참 별별스런 산꼭대기를 만나게 된다. 온통 바위로 되어 있으면서도 제법 넓은 자리를 펼쳐 놓는 지리산 천왕봉은 그래서 우리나라 제일의 산이다. 설악의 대청봉, 오대산 비로봉, 치악산 비로봉, 월악산 영봉, 속리산 문장대, 무등산 서석대, 소백산 비로봉, 북한산 백운대, 덕유산 향적봉, 운장산 칠성대, 영남 알프스의 아홉 봉우리들. 올라가 보면 왜 이들이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름도 없이 솟아 있지만 은근한 아름다움을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참 많다. 진안의 내동산, 담양의 병풍산이 그렇다. 낮고 낮은 산이지만 진도의 동석산 같은 봉우리는 올라가 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언급한 봉우리들은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는 산이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꼭 조망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런 봉우리들에게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산은 참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가리왕산 같이 힘들게 올라가야 하지만, 산꼭대기가 펑퍼짐하고 넓은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월악산 영봉 같이 몇 사람 앉지도 못할 만큼 비좁은 꼭대기가 있다. 지리산 천왕봉이나 소백산 비로봉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 봉우리이면서도 제법 넓은 공간을 내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영월의 태화산은 겨우 정상석 하나 세울 만큼 비좁아 참 인색하게 보인다.


산꼭대기에서 늘 사람을 본다. 마음이 참 넓고 후덕한 사람, 아주 인색하고 속이 비좁은 사람, 속 시원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 행여 누가 볼세라 꽁꽁 둘러싸고 있는 사람, 깎아지른 절벽같이 다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막아버리는 사람, 마음을 활짝 열어 내 것 네 것 없이 사는 사람.


산봉우리에 설 때마다 깨닫는 것은 참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모두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서로 얽히고설키며 살아야 하지 않은가. 내 것을 내어주고, 남에게서 받기도 하는, 어쩌다 보면 남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고, 남을 생각해서 나를 내놓기도 하면서 어울렁더울렁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간다. 깊게 파인 골짜기 같이 서로 맞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것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 닭 보듯이 멀뚱멀뚱하게 서 있어야 한다. 어쩌다 벽에 못 하나 박을라 치면 소음공해를 일으킨 무뢰한이 되어야 하는 세상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선달산은 박달령으로 마구령으로 마음을 이어가고, 슬쩍 백두대간에서 벗어나 어래산을 향해 손을 뻗어 어깨를 겯고, 어래산은 몸을 내밀어 곰봉에게 다가간다. 어우러져 하나가 된 산길을 밟아 가는 걸음에서 삶의 방식을 배운다. 어어지는 능선은 몸을 잔뜩 낮춰 회암령을 이루고, 영주와 영월 사람들이 넘나들며 마음을 나누고 삶을 맞대게 한다. 산은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이어 간다.


어래산을 넘으며 허기가 들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이때쯤에는 바람도 제법 불어와 바라클라바를 뒤집어써야 했고, 아내와 간간히 이어가던 대화도 어지러워졌다. 사람은 힘이 들면 움츠리게 되는가.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어떻게 바람을 피해 배낭을 풀어 허기진 배를 속이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걷는다.


산에 들어서면 언제나 아내는 앞서 걷는다. 처음에는 산길이 무섭다며 뒤에 바싹 붙어서 걸었는데, 어느 순간 앞에서 걷기 시작했고, 이제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휘적휘적 자기 걸음으로 걷는다. 독도법을 가르쳐 주고, 지도와 지형을 일치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가다가 만나는 특정한 지형지물이나 이정표, 국가지점번호 등을 만나면 기억하고 사진으로 찍어두라고 당부한다. 산길을 걸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경치나 조망이 아니라, 현재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걷는 아내는 나만 믿고 자기 생각만으로 걷는다. 산행을 나서기 전에 오늘 걸어야 할 산길과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 중요한 지점과 갈림길에 대해 설명해 주면 혼자서도 벗어나지 않고 잘 걷는다.


늘 아내가 이끄는 대로 산다. 밥을 주면 밥을 먹고, 빵을 주면 빵을 먹는다. 세상에 편하고 좋다.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을 만나면 앞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기다리는 것처럼, 살림살이의 중요한 지점에 봉착하게 되면 아내는 내게 물어 확인했다. 그렇게 아내는 어려운 살림을 해냈고, 아이들을 키워 서울로 대학을 보냈다. 허리를 졸라맨 아내의 덕이다. 늘 고맙게 생각한다.


낙엽이 두껍게 덮여 있는 산길은 위험천만의 길이다. 넘어지기 일쑤이고, 자칫하면 다치기 십상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걷고 있는 아내 뒤를 따라가다가 아내가 나를, 우리 가족을 이끌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는 않았고,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살 수 있었던 것도 아내의 덕이었다. 가정에 어려운 일도 다 나에게서 일어났다. 교통사고가 있었고, 몇 번이나 수술대에 누웠던 것도 나였다. 혼자 산에 갔다가 넘어져 큰일을 당할 뻔한 것도 나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낙엽에 미끄러져 넘어진 것도 나였다.


외씨버선길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다보면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하였고, 어느 순간 힘들고, 지치고, 주저앉았다. 서로를 보면서 힘을 냈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끝까지 걸었다. 고통 속에서도 우리들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으며 그것은 모두 우리 삶의 무늬였다는 것을 외씨버선길에서 힘들 때마다 깨달았다.


곰봉 삼거리에서 김삿갓문학관까지는 내리 쏟는 듯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고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지쳐 있었다. 덮인 낙엽을 쓸어내고 벤치에 앉아서 소위 운기조식을 했다. 물을 마시고, 초콜릿을 먹고도 사탕을 두 개씩 먹으며 힘을 돋우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ㅡ무사히 잘 내려갈 수 있을 거야.

ㅡ조심조심, 발을 미는 느낌으로 내려가야 해.

ㅡ그래도 2,5km나 되는 거리야.


마지막은 정말 모든 정신을 모아서 한발한발 내려섰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다리보다 허리가 더 아팠고, 가벼운 두통이 느껴졌다.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무사히 내려가는 것이 최선이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양 손에 쥔 스틱에 힘을 실어가며, 때로는 아예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면서 겨우겨우 내려왔다. 무탈하게 내려왔을 때 김삿갓 문학관 주차장에는 땅거리가 내려앉고 있었으며, 새벽에 세워 놓은 우리 차만 덩그렇게 서 있었다.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노래한 천상병 시인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