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길 약수탕길

13 자꾸만 산으로 숨어드는 걸음

by 힘날세상


밤새 쌓인 어둠이 그대로 남아 있는 봉화터미널에서 서벽3리로 가는 첫 차를 탔다. 어둠을 걷어가며 시가지를 빠져나가는 버스의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근한 한기가 창을 타고 넘어왔다. 새벽이니까, 첫차이니까 그럴 거라고 받아들였다. 우리 말고는 승객이 아무도 없는 버스에서 차창을 덮고 있는 성에를 보다가 갑자기 서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최두석 시인의 시 <성에꽃>을 생각한다.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최두석, <성에꽃> 전문


어디인지도 모를 시골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었고, 어둠을 털어내며 올라탄 아주머니는 딱 봐도 일하러 가는 모습이다. 기사에게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으로 보아 늘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차창에 달라붙은 성에는 어젯밤 막차를 타고 왔을 것 같은 저분의 '막막한 한숨'일까. '정열의 숨결'일까. 외씨버선길을 걸으며 첫 차를 여러 번 탔다. 어디에서나 첫 차에는 삶의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다. 차가운 의자에는 어젯밤 피곤에 절은 몸을 실었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삶의 애환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더라도 이 차가운 의자에 앉는 사람들은 하루의 희망을 더불고 있다. 내가 오늘 걸어야 할 걸음을 하나씩 하나씩 세고 있는 것처럼, 첫 차를 타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더 간절하지만, 소박한 기대감을 지니고 있다.


등에 "신호수"라고 적혀 있는 주황색 조끼를 입고 있는 중년의 사내, 서벽리 수목원 앞에서 내리는 두 분의 아주머니들, 두꺼운 패딩에 모자를 쓰고 있는 내 또래의 남자. 모두 어제도 첫 차를 탔던 사람들이다.


ㅡ저분들은 새벽부터 일하러 가는데 우리는 놀러 가는 것 같아 좀 무겁네.

ㅡ우리도 저 나이 때는 마음 좀 상하면서 열심히 살았었잖아. 다 내려놓고 소풍의 끄트머리를 즐기고 있는 마당이니 편하게 생각하자고.


버스는 어제 우리가 내렸던 서벽3리 종점에 이르러 우리를 내려놓자마자 휙 등을 돌려 달아난다.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갑자기 쓸쓸함에 빠진다. 어제도 왔었는데 어디서 나타난 쓸쓸함일까. 손바닥만 한 정류장에서 신발끈을 묶으며 마음을 달랜다.


ㅡ오늘도 오셨네요.

주실령으로 올라가는데 차량을 통행을 도와주고 있는 초소 근무자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ㅡ밤에 춥지 않으셨나요?

ㅡ늘 하는 일이라서 괜찮은데 이 산골에 혼자 있다는 것이 더 힘들죠. 외로움은 아닌데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것.

2차선 도로의 한 개 차선을 막아 놓고 가스관을 묻는 공사를 하고 있어서 밤에도 오가는 차량을 안내해야 하는데, 이분도 혼자 있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혼자라서 외로운 것은 아닐 텐데 어쩌면 마음속에 담겨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조금 전에 갑자기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나, 이 분이 비닐 천막 안에서 밤새 느꼈을 감정이나 근원은 같지 않았을까. 그것은 꼭 혼자라서 느끼는 것은 분명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주실령을 넘는다.


11월 중순이지만 새벽은, 바람이 몰아치는 고갯마루의 새벽은 추웠다. 앞에 서 걷고 있는 아내를 따라가면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살아왔던 삶도 훈훈한 봄바람만 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굴절된 삶의 굽이에서 애타게 마음을 졸인 적도 많았다.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로 인해 육체와 정신을 키워줬던 고향을 빈 손으로 떠나야 했을 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강박에 눈물을 흘리며 뒤처리를 하고 다녔다. 그 와중에 수술대에 누웠고, 나 또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때 곁을 지켜 준 건 아내였다. 언제 생각해도 감사하다. 없는 살림에 가정을 잘 지켜 준 아내.


주실령에서 외씨버선길은 백두대간 박달령으로 임도를 따라 오른다. 3.4km. 지루하다기보다는 걸음마다 차오르는 허전함.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만도 하건만 그게 쉽지 않다. 산길을 걸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걷기의 달인'이라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임도를 느긋하면서 알쭌하게 걸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빽빽하게 울타리가 되어 주는 나무들 사이로 비좁게 이어지는 산길과 달리. 임도는 산자락을 돌아가기에 유난히 굽이가 많다. 거기에 더해 자동차가 지나갈 정도의 넓이를 가진 탓에 나 혼자라는 느낌을 몇 배로 더한다. 하늘이 발목까지 내려오기도 하고, 산자락을 거슬러 올라오는 바람이 더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하늘과 바람이 허전함을 더하고, 떠돌고 있는 외톨박이가 아니냐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박달령으로 오르는 임도는 은근히 가파르기까지 해서 약간씩 숨이 끓어올랐다. 이른 아침, 나무들 마저 잎을 다 떨궈버리고 이른바 '겨울나무'가 되어 버린 이른 아침에 임도를 걷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임도는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많은 곳의 임도를 걸었다. 금구 명품길, 완주 고종시길, 고창 방장산을 돌아가는 길, 계족산 황톳길, 남파랑길 삼봉산 자락길, 아산 아미산 자락길, 삼척 이끼폭포로 들어가는 길, 오대산 자락길, 지리산 벽소령길, 가리왕산의 끝없는 길, 죽음의 길이라고 불리는 인제 방태산의 임도, 장성 축령산의 치유의 길.


임도를 걷는 걸음은 무엇보다 나의 걸음이어야 하고, 나를 위한 걸음이어야 하며, 나만의 걸음이어야 한다. 순전히 이기적으로 걸어야 한다. 임도는 관습적으로 앞으로만 나아간다. 뒤로 꽁무니를 빼는 임도는 없다. 그렇기에 자꾸만 앞서 가려는 길을 내 곁에 묶어 둘 수 있어야 한다.


삼척 무건리 이끼폭포는 깊이도 숨어 있다. 폭포 자신도 아름답지만, 폭포까지 이르는 길이 으뜸이다. 임도이지만 임도가 아닌 길. 절대 앞으로만 달려 나가지 않는 길. 어쩌다가 뒤꽁무니를 빼는 길. 나무 터널이 두꺼워 하늘이 내려오지 못한 길. 허전하지 않고, 걷고 있는 내가 외톨박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옆구리까지 무더기로 내려온 나무들이 어깨를 겯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바람이 나란히 걷는다. 자연스럽게 임도는 나와 더불어 걷는다.


2015년 이후 이끼폭포로 이어지는 길을 잊고 살았다. 많은 임도를 걸으면서도, 그 길 위에서 허전함에 빠져들면서도 나와 더불어 걸어주었던 무건리 이끼폭포 가는 길은 무의식의 어디 깊은 곳에 갈무리해두고 싶었던 것일까. 확 트인 것도 아니고, 나를 감싸안는 것도 아닌 임도를 걸으면서 허전해했고, 외톨박이라는 느낌에 허우적거리면서도 끝내 눈을 감고 마음을 닫았었다.


박달령으로 오르는 길은 외씨버선길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두고 앞으로만 달려 나가던 많은 임도의 모습은 아니었다. 특성상 거의 모든 임도는 한쪽은 산자락으로 막혀 있고, 한쪽은 세상으로 향하여 확 트여 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이 길은 높이 솟아오른 나무들이 세상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울타리를 높게 두르고 있어 은근한 아늑함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ㅡ아늑하지?

ㅡ이끼폭포 가는 길이 생각날 정도로.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나를 뿌리치고 달아나지 않는다는 것은 걸음에 힘을 싣는다. 어디까지나 내가 스스로 느껴야 하는 것이지만. 무엇인가 손에 쥐고 걸어야 한다. 산길이든, 임도이든 품고 있는 화두가 있어야 한다. 하찮을지라도 산을 벗어나는 그때까지 궁굴릴 수 있는.



프로스트의 시구詩句를 들고 걸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 박달령으로 오르는 길은 내가 걸었던 그 어떤 길만큼 아름다운 길이라고.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의 발길이 적어서 내가 더 걸어야 할 길이라고. 이 길도 어느 순간 내가 걸어온 많은 길 중의 하나의 길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참 많은 길을 걷는다. 또한 다양한 모습의 길을 걷는다. 우리는 힘들어하고, 우리는 눈물을 짓는다. 우리는 웃기도 하고, 행복하다고 소리 지른다. 길은, 어떤 길이든 정해진 디폴트값은 없다. 내가 걸어서 윤이 나기도 하고, 아늑하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험상궂은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 새벽 첫 차를 타는 사람들의 하루도, 한 달도, 삶의 전구간도 그럴 것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걷는 걸음이나 새벽마다 첫 차를 타는 사람들의 걸음이나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임의의 값을 입력할 수 있는 공란이다.


박달령까지 올라온 약수탕길은 고개를 숙이고 오전약수로 급하게 내려간다. 한가하고 느긋한 걸음이 아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모든 것을 기울여야 하는 탓에 디폴트 값이고 임의의 값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리가 걷는 걸음은 언제나 잔잔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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