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여행을 끝내는 방법
팔괴 2리 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오지 않았고, 마을 사람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외씨버선길을 걷는 2 주 내내 사람이 그리웠다. 여행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자연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냥 발로만 걸은 것이다.
무서웠다.
영월읍 숙소에서 게으름을 피운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상당한 데도 이불속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것은, 어제 김삿갓면사무소에서 각동교 인근까지 대략 8km 정도를 걸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남은 거리가 16km 정도나 되고 태화산 중턱을 가로질러가야 하는 길이 만만하지 않아서 최상의 난도를 보이고 있는 힘든 길이다. 그런데도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가 아내의 지청구를 듣고서야 길을 나섰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각동교에서 내렸다.
이른 아침 남한강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제 막 마대산을 넘어선 햇살은 강물 위에 걸터앉아 토닥거리며 잠을 깨우고 있었으나 각동교 아래 남한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ㅡ물결이 이렇게 잔잔할 수도 있는 거야?
ㅡ동면冬眠에 들어가는 거겠지.
ㅡ겨울잠?
ㅡ그래, 겨울잠.
ㅡ우리들도 겨울잠을 잘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ㅡ세상이 달라질 건데.
숲으로 들어선 길은 말없이 달아난다. 서리까지는 아니어도 밤이슬이 내렸는지 신발에 묻어나는 느낌이 축축하다. 이따금씩 만나는 외씨버선길 이정표와 느닷없이 나타는 운탄고도 1330 이정표가 길을 이끈다.
운탄고도 1330~
영월에서 태백까지 이어지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길이다. 겨우내 힘을 모으고 있던 나뭇잎이 얼굴을 내밀고 겨울 동안 가다듬었던 이야기를 쏟아낼 즈음에 또 며칠 걸어 보아야겠다. 즐거운 걸음으로.
생각이 자꾸 흩어진다. 관풍헌으로 가는 마음만으로 걸어야 하는데, 백두대간을 넘어 태백으로 가는 운탄고도가 끼어들어 머릿속을 헤집는다. 그 사이 숲을 빠져나온 길은 갈론마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산비탈에 몇 가구가 어깨를 겯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갈론 마을. 낯선 걸음에 부딪힌 개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짖어댄다. 좁은 골짜기가 무너질 듯 컹컹 짖어대는 소란에도 누구 하나 내다보는 사람이 없다. 외씨버선길 어디에도 산골마을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 사는 마을에 사람이 없다. 텅 비어 있는 느낌은 마을이 아니라 내 마음이다.
마지막 농가를 지나자 입이 벌어질 만큼 넓은 밭이 펼쳐졌다. 그래봤자 축구장 반절 정도되는 넓이. 그래도 마음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밭두렁에 있는 나무에 기대어 지나온 길을 내려다본다. 청송 주왕산 주왕골에서 시작한 걸음이 멈춘 듯 이어온 길. 내가 걸었던 걸음 속에 어떤 형태로든 담겨 있는 세상, 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엮어내는 이야기. 나와는 결이 다른 듯하게 보였던 그것들이 결국은 나의 세상이었고, 나의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며 하늘을 본다. 국문학자 이희승 님이 쓴 시조 '벽공碧空'이 바로 저 하늘일 것이다.
손톱으로 툭 튀기면
쨍하고 금이 갈 듯,
새파랗게 고인 물이
만지면 출렁일 듯,
저렇게 청정무구(淸淨無垢)를
드리우고 있건만.
하늘은 청정무구한데 인간은 왜 이 모양이냐고 꾸짖는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나,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나 인간이 가진 탐욕 때문이다. 40일 동안 비를 내려 인간을 물로 심판하면서 방주에 태웠던 의인 노아의 후손인 오늘날의 인간들은 어떤가. 부끄러울 뿐이다.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어떻게 살든지 그들도 하나의 인간임에 틀림없다. 성경에는 불의 심판을 말하고 있다.
심판審判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의 죄를 제재함. 또는 그런 일.
동물처럼 인간이 겨울잠을 잔다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떤 마음을 보일까.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먹을 테지만, 배가 부르고 나면 박두진 시인이 말한 것처럼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리며 살아갈까.
태화산 자락을 넘어 '동지모둑'에 내려섰다. 화전민들의 살았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놓은 곳인데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았다는 것에 짠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험상궂은 곳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 그들이 움켜쥐고 있었을 삶의 모양은 어땠을까. 아픈 다리도 잊고 한참을 서성댔다. 사람들의 삶이란 그래서 이야깃거리가 많은 모양이다.
산을 내려온 외씨버선길은 남한강을 따라 이어졌다. 이제는 제법 강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좁은 골짜기를 빠져나올 때의 천방지축 한 자세는 품위 있고 의젓해졌다. 바다를 향한 꿈을 품고 흐르는 강물. 영락없는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남한강. 40대의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치열했고, 가슴앓이를 많이 했고, 굴절도 많았던 시절.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어느 순간 거친 물결을 일으키기도 하는 강물처럼 결기를 이기지 못한 적도 있었고, 커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때 나를 지탱하게 해 준 것은 어이없게도 마라톤이었다.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며 눈물을 흘렸고, 참고 견디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통증으로 물든 몸뚱이와 터져버릴 듯한 거친 호흡은 내가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고,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맞설 수 있다는 은근한 자신감을 주었다. 내 몸을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외씨버선길 마지막 구간인 15길 '관풍헌으로 가는 길'은 거리도 길었지만,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된 탓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고통이었고, 눈물겨운 시간이었다. 산에 오르든, 마라톤의 주로에서든 힘이 들 때마다 산을 내려가는 걸, 피니쉬 라인을 밟고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을 그리며 견뎌냈었다. 오늘 15길 관풍헌 가는 길에서 힘든 걸음을 걸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유치환 시인의 '아라비아 사막'을 생각했다. '원시의 본연 한 자태'를 찾는 시간이라고 나를 두드렸다. 요란스럽게 골짜기를 부딪치던 험상궂은 모습을 벗어버리고, 도도한 모습으로 바다를 향하는 제대로 된 강물이 되어가는 시간이라고 속으로 외쳤다.
관풍헌으로 향하는 영월 시가지는 어느 정도는 화려했고, 그래도 활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 꼭 도회지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산골짜기에 홀로 내팽개쳐진 듯한 시간을 걸어온 탓에 시끌벅적한 세상이 반가웠다. 이율배반적인 것이 삶인가 보다.
높은 산으로만 돌아다녔었다. 산꼭대기에서 세상을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그때는 감히 '정복'이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세상을 거머쥐었다는 같잖은 우월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게 올랐다니는 산봉우리는 펑퍼짐해졌고, 산 아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발소리가 들릴 듯했고, 사람들의 이야깃소리가 나직하게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꼭대기가 좋아졌다. 세상을 벗어나 산으로 들어왔지만, 어딘가 그 세상에 이어져 있는 듯한, 그런 산이 좋아졌다.
관풍헌 동헌 마루에 앉아 조금 남은 햇볕을 즐긴다. 치세治世의 현장이었고, 단종이 왕방연이 가져온 사약을 받았던 곳이라고 하지만, 세월이 쌓인 관풍헌은 지친 걸음으로 찾아는 나그네가 한숨 돌리며 걸어온 걸음을 되돌아보기에는 사치스러울 만큼 고요하고 개운했다. 넓은 마당에 그대로 쌓여 있을 삶의 시간들을 들춰보며 한동안 동헌 마루에 앉아 있었다. 편안한 마음을 가득 채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