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낯섦과 마주하고 싶었다, 객창감에 젖어.
초록초록한 숲 위에서 하늘은 파랗게 돋아났다. 여느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이삿짐을 내려놓던 날 우리는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도시는 아무 말이 없이 무표정하게 서있었다. 좋았다. 무표정한 도시의 얼굴이 좋았고, 파란 하늘이 좋았다. 그리고 달랑 우리 둘 뿐이라는 현실이 좋았다.
우리가 생의 끄트머리를 그려나갈 곳이 몸에 배어 버린, 그래서 긴장감 하나 남아 있지 않는 무미건조한 곳이 아니라, 들숨날숨조차 까칠하고 생소한 날것 그대로의 낯선 도시인 것이 좋았다.
저 멀리 하늘 끝이라고 느껴지는 곳에 낮고 부드러운 산자락이 엎드려 있었다. 평화로워 보였다.
"비가 내렸으면......"
비를 좋아하는 아내가 해사하게 말했다.
"비 오는 숲이 아름답기는 하지."
우리는 당장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퇴직을 1년 남겨놓았을 가을, 우리는 임도를 걸었다. 임도에 들어서기도 전에 내리던 가을비는 굄성스럽게 숲을 적시며 파고들었다. 비옷을 두드리는 빗줄기에서는 제법 힘이 느껴졌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단풍은 가을비에 젖어 한결 채도가 높았다. 우리는 영화의 화면을 소환했다. 숲을 채우고 있는 빗줄기가 고왔다. 모든 생명의 끝이 이렇게 아름다웠으면.
"우리. 이사 갈까?"
단풍잎에 맺히는 빗방울을 바라보던 아내가 토끼눈으로 바라봤다.
"낯선 곳에서 살아보자고."
우리는 늘 여행을 꿈꾸었다. 발걸음마다 툭툭 부딪는 낯선 여행지에서 서성거리는 덜 익은 시간들이 좋았다. 그 낯섦을 즐기기 위해 퇴직 후 지역을 옮겨 다니며 1년 살이를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비에 젖고 있는 단풍을 보다가 아예 이사해 보자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품어주었던 도시를 떠나왔다.
변화가 필요했다. 전원생활을 그려보았지만, 이내 접었다. 낭만과 여유로울 수는 있을지라도, 시골분들 사이에서 부대낄 수도 있다는 것과 생활의 불편을 감당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도시에서 살되, 최대한 전원에 몸을 두는 생활.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삶의 틀이었다. 일단 도시에 둥지를 틀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든 느슨하거나 틀에 박힌 지루한 나날이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설렘과 긴장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여행객의 느낌으로 살고 싶어서 나서는 걸음이므로 어디로 디뎌도 괜찮지 않을까.
서울! 이구동성이었다. 서울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의 통장은 손사래를 쳤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라고 큰소리쳤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부근을 거푸거푸 살피다가 수도권 남부의 작은 도시에서 날개를 접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들로부터 동떨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버린 것이다. 창문을 넘어오는 바람조차도 갓 담근 김치처럼 익지 않은 도시. 어느 누구 하나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을 도시. 길이 어디로 이어지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낯 모르는 도시. 그 도시에 밤이 내리고 있다.
"어때요?"
창문 너머로 고즈넉이 앉아있는 시가지의 불빛을 바라보며 아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 둘이서 타이베이에 처음 내렸던 그때의 기분 그대로야."
꼭 그랬다. 아무의 도움 없이 배낭 하나 메고 나섰던 대만 자유여행의 첫걸음의 느낌 그대로 우리는 이 낯선 도시의 시작점에 섰다.
"설레지 않아?"
"여행객처럼 살아봐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