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점심 약속이 있다고 해서 혼자서 밥을 먹게 되었다. 아내는 시원한 국물에 고명을 얹은 국수를 끓여 묵은 김치를 정갈하게 담아놓고 미안하다며 나갔다. 즐겁고 편안하게 밥을 먹으려고 기도를 드렸다. 식사 기도는 길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일용할 양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아 마음을 모으고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
내가 좋아하는 국수를 맛나게 먹으며 오후에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조금 후에 택배로 받을 식탁 등을 교체하고, 유튜브 강의안을 작성하고 남는 시간은 우리말 분류사전을 보면서 낱말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의 로망이 아내가 친정에 가고 혼자서 지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혼자 있으면 무조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혼자서 밥을 먹다 보니 모든 상념이 내게로만 몰려온다. 둘이서 먹으면 대화를 하게 되므로 나를 놓아버릴 수가 있는데, 밥을 먹는 것보다 밀려드는 생각들을 떨쳐내기에 바쁘다.
어린 시절에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혼자서 밥을 먹었던 생각이 났다. 부엌 찬장 옆 대바구니에 담아놓은 보리밥을 한 그릇 담아 찬물에 말아놓고, 찬장에 있는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는 게 전부였지만 참 맛있는 식사였다.
그때처럼 혼자서 밥을 먹고 있고, 따뜻한 국물이 가득한 국수를 앞에 놓고 있지만 먹는 즐거움은 그때만 못하다. 늙어서일까. 자꾸만 걱정거리가 늘어나는 까닭이고 외롭다는 느낌을 감당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도 걱정이 앞서고 하찮은 일에도 서운함에 사로잡힌다.
37년을 바쳤던 교단에서 내려온 지 3년이 되는데 아직도 마음은 교단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고3이 치르는 학력평가 문제를 분석해 보고 혼자서 가르쳐본다. 그리고 보는 사람이 있든 말든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참 재미가 있다.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문제를 분석하여 더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남은 삶을 이렇게만 살아도 힘이 날 것 같다.
퇴직하고 나니 밖에 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 일을 놓기 전에는 휴일만 되면 전국으로 돌아다니며 산에 올랐고, 우리의 산하山河를 걸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서 보내는 하루가 더 좋은 때가 있다. 건강을 생각해서 산에 가는 것이지, 예전처럼 산이 좋아서만 가는 것은 아니다. 퇴직하면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에 전념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고 나니 집에 있고 싶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출근하는 복장으로 책상에 앉는다. 아내가 복지관으로 운동하러 가면 오롯이 오전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행복하다. 아내와 같이 점심을 먹는다. 퇴직하면 최대한 아내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데, 그래야 구박을 받지 않는다는데 아내는 집에서 뒹굴고 있어도 군소리 없이 밥을 차려준다. 먼저 퇴직한 선배가 6개월까지는 괜찮은데 그 이후부터가 문제라고 말했다. 갈 데가 없고, 할 일이 없는 것을 이겨내기가 정말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아내 눈치가 보인다고 선배는 목소리를 높였다.
갈 데가 없어도 할 일이 없어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소파에 누워 TV나 보지 않고도, 선생처럼 가르치고, 책을 읽으면서 잘 지내고 있다. 요즈음은 오후에 손주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하는데 그것도 재미가 난다. 손주들이 학원에서 놀고 있는 동안 뒤에 있는 공원을 거닐며 생각을 다듬는다. 매일 스스로 몰려 있는 글빚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날그날의 글쓰기를 구상해 보는 일도 나름 맛이 있다.
나는 나 스스로 나의 문을 닫았다. 며칠이고 밖에 나가지 않아도 답답하거나, 외롭지 않다. 무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다. 내가 스스로 닫은 문은 열리지 않아도 괜찮은데, 남이 닫아버리는 문은 이겨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혼자서 먹는 밥은 나를 키운다. 정신을 북돋우고 머릿속을 헤쳐놓기도 한다. 혼밥은 먹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