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너머로 도시는 분주히 아침을 펼치고 있다. 줄을 이어 도로를 타고 앉은 자동차들 사이로 햇볕이 내려앉았다. 햇볕은 잔잔했으나 사람들의 발걸음은 총총 이어졌다. 바쁜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사람들. 나도 한때는 저렇게 아침을 맞았었다. 종종거리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녔다. 밤이 지나면 해가 돋아나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눈을 떴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눈을 감고서도 살아갈 만큼 길들여진 삶이었다. 긴장감이 없었고, 그만큼 무료했다.
과일 한 조각과 삶은 계란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길거리로 나갔다. 짧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었다. 퇴직 전에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는 아무렇지 않다.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이 낯선 도시에 이사 온 이유도 그것이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남의 눈치를 보고 살지는 않기로 했다. 몸의 자유를 누려보자는 것이다. 몸이 자유로우면 정신도 자유로울 거라고 믿었다. 편했다. 몸도 마음도 자유로웠다.
길을 따라 걷는데 빌딩 사이로 해가 돋았다. 늘 바라보던 해는 어디로 가고, 낯선 해가 빛을 뿌리고 있다. 길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기도 하고, 사방으로 제 몸을 나눠 갈라지기도 했다. Y자형 삼거리에서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생각했다. 시인은 두 갈래 길에서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을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노래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는 시구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란의 가운데에 서 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나는 그 논란 앞에 서고 싶지 않다. 그냥 두 길 중 하나의 길을 따라 걸으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갈림길 앞에서 나는 하나의 길을 택해서 걸어야 한다. 시인은 두 길은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어느 길을 걸어도 하나의 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선택 앞에 서 있을 때,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기에다 이 이유가 남들이 엄지 척을 해 줄 만큼 좀 아름답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그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걸음을 내디뎠었다. 최선을 다하려고 했었고, 내가 걸어가는 그 길이 반들반들 윤이 나고, 탄탄대로가 되어 저 높은 곳으로 이어지기를 바랐었다. 응당 그래야 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이 낯선 도시에서라면,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희끗희끗해지고 있는 노년의 걸음이라면 그냥 순간적으로 끌리는 방향으로 디뎌도 좋으리라. 억지로 깎아낸 듯한 언덕을 따라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울타리 안쪽으로 커다란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을 따라 걷는다. 그러고 보니 내가 걷고 있는 길은 프로스트가 말한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이었다. 보도블록의 틈으로 작은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길을 걸으면서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또한 커다란 나무가 서 있는 언덕 너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와 같은 생각을 하며 걸었다. 나는 어떤 의미를 두고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생각을 즐기는 것이다.
이사를 하면서 마음에 둔 것은 깊이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교단에 서있을 때는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기에 이리저리 따져보고, 결과를 나름 예측해 보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 사고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 것이기에 순간적으로 끌리는 느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가 생겨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게 좋았다. 사람들과의 거리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는 그보다 곱절로 줄어들었다. 사실 은퇴 후 낯선 곳으로 옮겨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내 마음대로 살자는.
에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어느 쪽으로 걸어도 낯선 곳이었고, 오가는 사람들도 낯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대학교 앞 좁은 골목으로 돌아들었을 때 허름한 콩나물국밥집이 있었다. 창문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에도 콩나물집이 있었구나' 나는 어이없는 말을 했다. 우리나라 어딘들 콩나물국밥집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살았던 도시에서는 당연히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 다르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낯설게 하기. 문학작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걷고 있는 도시에서 나는 스스로 낯선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독일의 아주 작은 도시 라이프치히 외곽의 호텔에서 맞은 아침의 느낌과 어느 정도 이어지는 것 같았다. 이국땅에서 느끼는 긴장감이 버무려진 신선함이 조금은 느껴졌다.
물에 물탄 듯 밋밋할 뻔했던 노년의 시간에 약간의 파동이 일 것 같아서 좋았다. 새로운 세상을 사는 느낌이라고 할까. 새 학년에 진급했을 때 새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만났을 때 느끼는 바로 그 기분이었다. 지금까지와 다른 무엇인가 기대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자유롭고 느긋하며, 누구에게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삶. 이것이 내가 누려가고 싶은 노년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