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가 약한 사람은 좋은사람을 닮아가는 게 아니라 나쁜사람에게 길들여진다
오랜 부부들을 관찰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많은 시간을 함께했기에 서로를 닮아 가는 게 아니라, 대게는 더 거칠고 더 강한 쪽에 길들여진다.
한 명이 공격적인 성향이면 다른 한 명은 처음엔 방어를 택한다. 평화를 지키려 맞춰주고 눈치를 보고 말을 고르고 감정의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자아가 약하면 결국 상대의 공격성을 닮아간다. 정작 배우자에겐 여전히 못 이기면서 밖에 나가 더 약한 사람을 공격한다. 상처받은 사람이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이혼 위기의 부부를 많이 상담했다. 언제나 공격자가 먼저 찾아온다. 친구를 가장 괴롭히는 아이들이 선생님께 제일 먼저 억울하다고 이르는 것과 같다. 그들은 분노가 빠르고 말이 많고 억울함이 넘친다. 진실이 그대로 드러나면 불리하니 주변을 빠르게 포섭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포장하기 바쁘다.
반대로 진짜 피해자는 말이 없다. 고발보다 자기반성이 먼저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전에 항상 “내가 더 참았어야 했나”를 생각한다. 그래서 늘 늦는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후 나는 공격적인 상담자에게 한결같이 말한다. “그렇게 힘들면 이혼하세요. 나라면 이혼하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삽니까?” 하지만 그들은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들이 원하는 건 이혼이 아니라 자기감정을 쏟아낼 나 같은 안전한 쓰레기통일 뿐이다. 그들은 공격적인 동시에 매우 계산적이다. 지금처럼 자신을 견뎌주는 배우자가 인생에 다시없을 행운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다. 헤어지면 다시는 그런 사람을 못 만난다는 것도. 그래서 진짜 이혼 위기에 이르면 아이 핑계, 도덕 핑계, 온갖 책임 핑계를 대며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배우자는 사랑이 아니라 소유인 것이다.
보통 오랜 부부들은 젊은 부부들처럼 격하게 싸우지 않는다. 이미 종속인지 독립인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자아가 약한 이들은 종속적이 된다. 그리고 나쁜 배우자의 검은 자아를 자기도 모른 채 서서히 닮아간다. 양심을 어겨도 별일 없다는 걸 배우고, 노력 없이 욕망만 앞세워 무언가를 차지하는 기술을 간접으로 익힌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상대의 본성을 알아보고 일찌감치 거리를 두는 사람들. 부부로 엮여 있어도 너는 너, 나는 나. 그 선을 지키지 않으면 내 자아가 망가진다는 걸 알기에 물리적으로 함께 있어도 정서적 독립을 택한다.
이는 부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갈등이 없는 관계는 늘 둘 중 하나다. 종속 또는 독립. 잉꼬부부도 대게는 사랑이 아닌 종속의 결과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주치의는 당신을 종속적으로 만드는가?
아니면 당신의 독립을 지원하는가?
낫지는 않으니 평생 약을 먹으라며 종속을 강요하는가?
수치는 잠시 나빠질 수 있으니 최소한의 약물과 식습관 개선으로 다시 회복하는 독립을 지원하는가?
약이 없어도 나만의 건강한 컨디션과 리듬을 지켜갈 능력이 있다면 의사에게 종속될 이유가 없다.
좋은 관계란 전문가가 없으면 불안해서 살지 못하는 관계가 아니라, 당신이 홀로 설 수 있게 해주는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