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꺼내는 일
재료가 작품을 결정한다. 돌 속에는 이미 형상이 있다. 조각가의 임무는 그것을 들어내는 일이다.
— 미켈란젤로 -
환자가 치유를 결정한다. 환자 속에는 이미 치유가 있다. 전문가의 임무는 그것을 꺼내주는 일이다.
— 최장금 -
최근 학부모 문해력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금주 계획 알림”이라는 가정통신문에 “초등학생이 술을 마시냐, 왜 금주 계획을 세우느냐”는 항의가 들어오고, “우천 시 장소 변경”이라는 안내에는 “우천시가 어디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금주는 이번 주를, 우천시는 비가 올 경우를 뜻한다고 설명하면 이번에는 "쓸데없이 왜 어려운 말을 쓰느냐"며 화를 낸다고 한다.
이는 어휘가 부족한 탓이 아닌 태도의 문제다. 상대는 무조건 틀렸고, 나는 무조건 옳다는 태도. 이 태도 앞에서는 무엇을 설명하든 어떻게 설명하든 그 의미는 전달되지 않는다. 들으려는 의도가 애초부터 없기 때문이다.
식이를 실천하는 환자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리 자세한 방법을 알려줘도 임의로 바꿔버린다. 식이법에 제시된 음식만 먹으라고 해도 본인이 알고 있는 당뇨에 좋은 음식을 임의로 혼합해 버린다. 믿는 척은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보다 본인의 선택과 판단이 더 현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최장금 식이 상담을 원한다고 해서 곧바로 상담할 수 없다. 상담의 출발점은 식이를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과 끝내 실천하지 않을 사람을 구분하는 데 있다. 최장금 브런치에서 혈당이 빠르게 떨어진 사례 몇 개만 읽고, 같은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을 때 실망이나 의구심이 먼저 앞설 수 있다면, 처음부터 상담을 시작하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낫다. 그런 만남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로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비용을 낭비하며, 시간만 흘려보낼 뿐이다.
진짜 명의는 나을 수 있는 환자와 나을 수 없는 환자를 구분한다. 환자가 명의보다 더 똑똑하거나 환자가 스스로 “나는 나을 수 없다”고 믿는 순간, 그 어떤 명의가 와도 치유는 일어나지 않는다. 치유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꺼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 안에 치유가 있어야, 전문가는 그것을 꺼내줄 수 있다.
돌 속에 형상이 없으면 조각은 시작되지 않듯이.
1. 결과를 먼저 요구한다. 과정은 건너뛰고, “그래서 언제 좋아지나요?”부터 묻는다.
2. 완치 사례는 열심히 읽지만 그 조건과 맥락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3. 전문가의 처방을 참고자료로만 쓴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최종 판단은 늘 자기 기준이다.
4. 조금의 불편도 견디지 못한다. 조금만 흔들리면 의심하며 이내 다른 방법을 찾는다.
5.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변명으로 들린다.
6. 몸의 반응을 관찰하지 않는다. 몸을 함께 보지 않고 오직 숫자만 본다.
7. 자신은 너무나 특이한 케이스라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8. 이미 마음속 결론이 나 있다.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을 끝내 내려놓지 않는다.
낫지 않는 사람은 치료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확인만 하려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