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힘보다 중요한 건, 흐릿함을 견디는 힘이다
얼마 전 안경을 맞추러 갔다.
하필 렌즈를 끼고 갔고, 렌즈를 뺀 지 10분 만에 시력 검사가 시작됐다.
“도수를 두 단계 더 높여야 해요.”
순간 의문이 들었다. 렌즈를 빼고 10분 만에 하는 시력 검사가 정말 정확할까?
렌즈 빼고 시력검사 얼마 후에 해야 하나? 검색하니
소프트렌즈는 최소 2시간,
하드렌즈는 최소 1주일.
정도는 지나야 정확한 시력 검사가 가능하다.
그런 상세한 설명도 없이 10분 만에 검사해 나온 수치를 두고
“눈이 더 나빠졌다”라고 말하는 순간, 안경점에 대한 신뢰가 흐릿해졌다.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비슷한 이야기는 넘친다.
“안경원에 갈 때마다 도수가 높아져요.”
“잘 보이긴 한데, 어지러워요.”
우리 시력은 정말 선명해지는 것만이 답일까?
안경은 의료기구다. 목발로 걸을 수 있는데 편하다는 이유로 휠체어를 타면 결국 목발로 일어서는 힘을 잃는다. 신체가 회복할 수 있는데도 약에 의지하면, 몸은 회복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안경의 도수도 그렇다. 쓰고 있을 땐 또렷해지지만 안경을 벗은 나는 점점 더 희미해진다. 조금 더 선명한 세상을 얻는 대신, 내 눈의 조절력과 회복 가능성을 하나씩 외주 맡긴다.
사실 내 눈은 고장이 난 게 아니다. 밤늦은 화면, 작은 글자, 한 번도 쉬지 못한 시간이 쌓였을 뿐이다. 이건 시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만 불편해도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고, 조금만 흐려져도 더 강한 처방을 요구하는 삶. 그 사이 견디는 힘과 회복하는 능력은 사라진다.
시력도, 삶도 마찬가지다. 잠시 흐릿한 시간을 통과해야 다시 살아나는 감각이 있다. 오늘은 잠시 안경을 벗어본다.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위해. 보이는 힘보다 중요한 건, 흐릿함을 견디는 힘이다.
약이 강할수록 신체의 회복력은 약해진다.
안경 도수가 높아질수록 시력은 스스로 일어서는 힘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