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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경련 똑똑한 응급처치법! 따뜻한물? 양배추? 비상약?

몸이 너무 지쳤으니 살려 달라고 알리는 유일한 방법이 통증

by 최장금


무심코 펼친 책에서, 최장금의 시선이 멈추는 페이지가 있다. 작가가 신체적, 정신적 아픔이 놓여 있을 때다. 작가들은 통증을 문장으로 번역한다. 통증의 모양을 기록하고,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서 오래도록 감정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채사장의 저서인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 보면 그가 위경련을 겪었던 순간이 담겨 있다. 현대인에게 흔한 증상이지만 위경련으로 삶이 균열난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유하는지 보여준다. 섬세한 언어로 기록된 작가의 경험과 통찰은 아픔을 겪고 있는 타인의 삶을 겸허하게 안아준다.


위경련이 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데 약이 듣지 않아 고통을 꼬박 감내해야만 한다. 보통 열두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 정도가 이어진다. 그럴 때면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옆으로 웅크리고 누워 그저 아파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그나마 내가 터득한 요령이다. 위경련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는 뭔가 해결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응급실에도 가보고 약도 먹어보고 위에 좋다는 양배추도 먹어보고 구토도 해보았다. 하지만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가장 낫다는 것이다.

아픈 배를 꾹꾹 눌러가며 지루한 통증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다 감내하고 있노라면 시간은 너무나 더디게 흐르고, 고통과 뒤섞인 복잡하고 불연속적인 상념에 빠져든다. 많은 생각이 떠돈다. 무엇이 문제인가, 혹시 큰 병이 있는 건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역시 건강이 중요하다. 응급실에 가볼까. 그래봤자 소용없지 않은가. 배를 따뜻하게 하면 괜찮아질까. 도대체 통증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기진맥진하며 통증과 상념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 속을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통증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의 말이다. 신체가 나에게 건네는 말, 입이 없는 신체가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나에게 알리는 유일한 방법이 통증인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채사장-


위경련은 제발 쉬게 해 달라는 위의 신호다. 약은 통증 신호를 잠시 끊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과로, 스트레스, 과식, 불규칙한 식습관처럼 위를 지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약은 응급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을, 시끄럽다고 꺼버리는 것과 같다. 양배추나 따뜻한 음식도, 이미 위가 수축하고 경련 중일 때는 음식 자체가 자극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위 입장에서는 또 다른 노동일뿐이다. 위경련이 올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다(따뜻한 물정도만 가능). 약이나 음식을 먹지 않고 가만히 진정되게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방치가 아니라, 몸의 신호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며 가장 빨리 낫는 방법이다.




위경련이 왔을 때 도움 되는 자세





위경련뿐만 아니다. 몸은 가만히 쉼을 주면 저절로 회복된다



어느 날, 키보드를 치던 손가락이 멈췄다.


유명 작가들이 종종 “펜이 쥐어지지 않는 당황스럽고 힘들었던 멈춤의 순간”을 말하곤 했는데, 딱 그랬다. 손가락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키보드에 의지해 치열하게 나를 증명하며 손목과 손가락을 너무 과하게 써온 탓이었다. 그때 손이, 아무 말 없이 그저 멈춰버렸다.


그리고 또 한 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고, 너무 오래 ‘책상에서 버티는 나’로 살았다. 갑자기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팔에 의지해 겨우 몸을 일으켰다. 혼자서는 꼼짝도 못 했다. 그제야 나는 나를 지탱하던 축이 허리였다는 것을 알았고, 그 허리를 얼마나 혹사시켰는지도 깨달았다.


마지막은 발이었다.


운동을 미뤄온 죄책감에, 무리해서 한 달을 걸었다. 그건 회복이 아니라 벌이었다. 결국 발은 멈췄고, 나는 또다시 몸에게 멈춤을 당한 사람이 되었다.




급한 마음에 병원으로 뛰어갔다. 한의원에서 허리에 침을 맞던 중, 허리는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제발, 좀 쉬고 싶었어.” 하지만 정작 나는 "네가 뭘 했다고 갑자기 이러는 거냐"며, 전기 자극과 침, 마사지, 충격으로 놀라고 지친 허리를 더 괴롭히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치료를 중단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허리에 다시 힘이 들어왔다. 쉼 외엔 어떤 치료도 필요하지 않았다. 발도, 손목도 그랬다. 가만히 두었더니 저절로 회복되었다.


몸이 보내는 경고를, 치료라는 이름으로 억누르지 말자


몸의 경고가 올 때, 우리는 “치료”라는 이름으로 그 피곤하고 놀란 몸을 또 괴롭힌다. 약을 먹이고, 자극을 하고, 두들긴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또다시 몰아붙인다. 하지만 몸이 원하는 건 빠른 회복이 아니라, 잠시 쉬어갈 허락이다. 고장 난 건 몸이 아니라, 그토록 나를 몰아붙였던 내 방식이었다.


모든 일에는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있다. 증상이 아닌 원인을 없애면 대부분의 병은 치료 없이도 저절로 낫는다. 몸의 소리를 무시한 치료법이 당장의 효과는 빠를 수 있다. 하지만 증상만 없애는 치료가 반복 누적되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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