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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장금 Jul 26. 2020

나는 친구와 술과 사교의 부자였다


나른한 오후,

나는 행복한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친구와 술을 사랑했고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지내왔다.  

언제나 많은 사람을 알고 싶었고, 적을 한 명도 만들기 싫었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 처절한? 노력으로

누가 뭐래도 친구와 술과 사교의 최고 부자로 살아왔다.


참 행복한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이란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내 배가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게 느껴졌다. 

내 건강이 무너진 탓도 있었지만 내 배의 탑승 인원이 기준을 한참 초과한 상태란걸 알게 되었다. 

너무 많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구나.

이렇게 지내다간 내 배가 침몰하겠구나.  

내가 소멸되겠구나.


그때부터 의도적으로 인간관계를 내려 놓기 시작했다. 

내려 놓음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내가 찾지 않으니 나를 찾는 이들이 별로 없었다.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그렇게 술과 사교와 소모성 관계를 어느 정도 정리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도 찾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할 때 진심으로 나를 찾아 걱정해주는 몇몇이 있었다.

그들이 내 소중한 벗들임을 깨닫는 계기였다. 




넓고 거친 바다의 풍랑에 몸을 내 맡긴채 아찔하게 흔들리는 짧지 않은 항해를 즐긴 후 

지금은 잔잔한 호수의 조그만 배에 따땃한 햇살을 받으며 홀로 여유롭게 누워 있다. 

처음부터 그런 짜릿하고 변화무쌍한 항해를 즐기지 않고

아늑한 호수의 작은 배를 탔다면 자칫 무료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와 술과 사교의 부자로 바쁘고 화려했을 때보다 느리고 무료한 오늘이 더 행복하다.


이젠 복잡한 관계를 내려놓고

단순하고 느슨하게 살아가고 가고 싶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사유하며, 소란한 갈등에 고요하고 싶다. 


혼자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여행을 하고

이따금씩 내 좋은 벗들과 도란거리고 싶다. 



관계과잉의 삶을 수시로 탈맥락화해야 내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다.

타의에 의해 탈맥락화되는 순간에도 그리 당황하지 않는다 (슈필라움의 심리학 / 김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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