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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장금 May 14. 2020

교통사고의 기억

퇴근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강변도로에서 신호를 대기 중이었다. 내 앞엔 택시가 한대 있었고 나는 두 번째로 정차해 있었다. 매일 다니던 길이라 새로울 것도 긴장할 것도 없었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내 앞에 택시가 스르르 출발을 했다. 이어서 나도 느긋한 출발을 하려는데 갑자기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무언가에 여러 차례 머리를 맞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혼미한 정신으로 깨어났는데 코에서 피가 후드득 흘러내렸다. 코피 수준이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코를 막아 봤지만 손등으로 옷으로 흘러넘쳤다. 머리는 아주 둔탁한 동시에 예리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 상황이 뭐지? 내가 앞차를 들이받았나? 누군가가 흉기로 나를 공격했나? 몽롱한 정신으로 주변 풍경이 음소거된 채 아주 느린 속도로 시야에 들어왔다. 그제야 '교통사고구나' 하는 게 인지되었다. 


얌전히 신호 대기 중이던 내차를 뒤차가 사정없이 들이받은 것이다. 신호대 앞인데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돌진해서 내 차 후미를 들이받고 그 충격에 내 차가 앞으로 밀리면서 막 출발하려는 택시의 뒤꽁무니를 구슬 치듯 튕겨버린 것이다. 택시는 액셀을 밟고 있어서 총알처럼 질주하며 한참을 날아갔다. 지나던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엄청난 인사 사고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막 신호가 바뀐 덕에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일단 흐르는 피를 멈춰야 했다. 휴지를 찾을 수 없어 헤매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었다. 나를 들이받은 뒷 차의 운전수였다. 피를 흘리는 나를 보더니 대뜸 "안전벨트 안 하셨어요?"란다. 사람이 피를 흘리고 있으면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순서일 텐데 말하는 꼬라지가 기분을 상하게 한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니요, 안전벨트 했어요" 그제야 죄송하다고, 앞을 못 봤다고, 많이 다쳤다고 물었지만 이미 불쾌해진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휴지나 좀 갖다 주세요" 충돌 시 안경이 날아가서 세상이 너무 흐리다. 안 그래도 혼미한데 앞이 안보이니 더 정신이 없다. 


내가 튕겨버린 탓에 총알처럼 질주한 택시의 기사님이 씩씩대며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를 보더니 액셀을 밟고 출발하려던 자신의 차를 내가 튕겨서 저만치나 날아갔다고 역정을 내신다. 나는 연신 흐르는 코피를 막으려 입을 수건으로 막고 있었고 말도 제대로 안 나와 그냥 손짓으로 뒤차를 가리켰다. 


어디를 다쳤는지 알 수가 없어 몸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섣불리 몸을 움직였다가 나도 모르게 쓰러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두려웠다. 머리통보다 얼굴의 안면이 너무 아팠다. 사고 현장을 찍어야 하는데, 신랑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보험사에 연락을 해야는데, 안경을 찾아야 하는데, 이 모든 일을 하기 위한 핸드폰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겠다. 겨우 핸드폰을 찾았지만 손이 덜덜덜 떨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젤 먼저 렉카차 기사님이 도착했다. 나에게 괜찮냐는 짧은 한마디를 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지 않았는데 기사님이 내 상태를 괜찮다고 판단한 것 같다. 자신의 명함을 내 손에 억지로 쥐어주더니 차를 빼야 하니 내릴 수 있겠냐고 한다. 내 동의 따윈 안중에 없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더니. 나를 차에서 조심스레 내리게 해서 길바닥에 앉힌다.  


곧이어 경찰이 도착했다. 내게 면허증을 달라고 했다. 나는 "안경 좀 찾아주세요"라고 동문서답했다. 내 차는 견인되어 한편으로 치워지고 경찰이 도로에 엉킨 차를 정리하고 있다. 누군가가 와서 또 내 인적 사항을 물었다. 상대방 보험사였던 것 같다. 피를 흘리며 바들바들 떠는 내게 여러 명이 다투듯 인적 사항을 물어왔다. 나는 대답 대신 "차에 안경 좀 찾아주시겠어요?"라는 말만 자꾸 했다. 감사하게도 그분들 서너 명이 동시에 차를 뒤져 안경을 찾아주셨다. 앞이 보이니 조금 나았다. 너무 추웠다. 그 사이 핸드폰으로 가장 마지막에 통화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조금 전에 헤어진 카풀 동료이자 친구였다. 업무 처리보다 내 안위를 최우선으로 해 줄 내 사람이 필요했다.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의 역할에만 너무 충실했다. 그렇다고 뭐 특별히 해 줄 건 없었다. 그렇게 이후에도 냉바닥에 앉아 온 몸이 덜덜 떨며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내게 인적사항에 대한 폭풍 질문과 떨리는 대답은 꿋꿋하게 이어졌다.


119가 도착했다. 소방 대원이 "환자분을 보호해야 하니 비켜주세요."라며 내게 왔다. 119는 너무 따뜻하고 멋졌다. 119의 임무는 환자의 안전한 보호였다. 내가 너무나 기다리던 것이었다. 그때 친구가 도착했다. 잠시 친구의 얼굴을 보고 이내 구급차에 실려 병원의 응급실로 이동했다. 친구는 승용차로 구급차를 따라왔다. 구급차의 침대는 생각보다 많이 불편했다. 머리가 너무 흔들려서 어지러웠다. 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나서 앉았다. 이제 하얀 방호복을 입은 구급 대원의 폭풍 질문이 쏟아졌다. 코로나 이후 방송에서 익히 보았던 하얀 방호복의 구급 대원은 질문이 방대했다. 코로나 관련 질문부터(해외 다녀온 적 있냐, 대구나 신천지와 관련 있나?) 혈압 당뇨 등의 지병이 있냐? 먹는 약이 있냐? 최근 앓은 질환은 무엇이냐? 등을 물으며 능숙하고 숙련된 손짓으로 열과 맥박 혈압도 체크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머리 쪽 X-레이와 CT촬영(컴퓨터 단층 사진)을 했다. 국소적인 부위에 다량의 방사선을 노출시켜 단시간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 것이 신체에 상당한 위해를 가한다는 사실을 들은바 있어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 찜찜하고 싫었지만, 안 찍을 수도 없었다. 당직 의사는 사진을 판독하며 코에 금이 갔고, 머리 쪽 출혈은 없어 보이는데 자세한 건 내일 전문의가 다시 봐야 한다고 하셨다. 내일 오전에 다시 병원에 오기로 하고 일단은 집으로 왔다. 


신랑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다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입원하는 건 너무 싫다. 집으로 향하다가 차에서 미처 챙겨 오지 못한 핸드백과 열쇠 뭉치가 생각나 렉카차 기사님께 연락을 했다. 애마가 끌려간 장소를 검색해 차 안에 널브러져 있는 내 가방을 찾아왔다. 차고지는 너무 어두웠고 급도의 피로감에 내용물을 살필 겨를도 없이 가방만 겨우 꺼내왔다. 10년을 넘게 나와 함께한 애마의 처참한 꼴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많은 곳을 함께 다니며 내게 행복을 줬는데 끝까지 나를 살리고 네가 희생했구나. "수리는 안될까요?" "견적은 한번 뽑아보겠지만 현실적으로 수리는 어렵습니다. 엔진이 깨져서 오일이 다 샜어요. 수리는 불가합니다."  



집에 와서 보니 가방의 물건이 온통 쏟아져 중요한 물건들이 사라지고 없다. 외장하드와 유에스비, 블루투스 이어폰도 몽땅 사라졌다. 하드에 얼마나 중요한 자료들이 많은데... 환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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