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티카 로크
약자 혹은 소수자가 살인이나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을 때 그 사건을 증오 범죄(hate crime)라고 명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번 미묘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몇 년 전 강남에서 있었던 한 정신이상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사건도 여성계에서는 혐오 범죄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다수의 언론과 경찰에서는 정신 이상자의 ‘묻지마 범죄’로 규정지었고 실생활에서 이유 없는 테러의 대상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실질적 위협을 느낀 많은 여성들이 반발하며 피해자에 대한 애도의 움직임을 보인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이유 없는 테러를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과 그런 범죄가 실제로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라는 요구는 항상 있어왔지만 다수에 속한 사람들과 시스템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인정하면 갈등이 더 커질 것이라는 믿음과, 그 믿음 이면에 자신들과는 다른 약자의 목소리를 키우고 싶지 않은 기득권 시스템의 내밀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죠.
<블루버드, 블루버드>는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한 흑인 텍사스 레인저의 행적을 따라가며, 증오 범죄를 일삼는 백인 범죄 조직의 존재와 실태, 피해자의 인종에 따라 수사의 무게가 달라지는 사법 시스템, 21세기에도 여전한 인종 차별 등을 묘사합니다.
여기서 잠시 주인공의 직업인 ‘텍사스 레인저스’에 대해 한 번 살펴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야구단 이름으로 알고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는 본래는 ‘텍사스 레인저 디비전(Texas Ranger Division)이라는 텍사스주 고유의 일종의 경찰 시스템입니다. 텍사스가 멕시코 영토였던 당시 미국인 이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텍사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Stephen F. Austin이라는 사람이 처음 민병대 개념으로 모집해서 창설한 것이 시초입니다. 공식적으로 창설한 1835년 이후 여러 차례 해산과 집합을 반복하다가 텍사스 주 내의 공식 형사 기관으로 자리 잡았고 이 기관의 멤버는 주 내의 각종 사건에 형사사법권을 행사할 권한이 있습니다. 주로 백인 남성으로 이루어진 명예로운 자치경찰로 여겨지다가 1988년에 Lee Roy Young이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텍사스 레인저가 되었고 현재는 160여 명의 멤버 중 흑인 7명, 히스패닉 30여 명, 여성 4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텍사스 레인저인 대런은 아리안 브라더후드라는 네오나치 범죄 집단의 멤버인 백인 남성 살해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맥과의 친분 때문에 정직에 처해 있던 중 텍사스 라크 지역의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살인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FBI 친구 그렉의 부탁으로 이 지역에 잠입해 사건을 조사하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FBI의 부탁이지만 대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증오 범죄 수사에 대한 사명감과 흑인 피해자에 대한 동질감이 이 사건을 결코 외면할 수 없게 만들죠.
사건이 일어난 라크라는 작은 마을에는 월리라는 백인 유지가 있는데 그도, 그의 선술집과 종사자 그리고 그곳을 아지트 삼아 보이는 다른 백인들도 아리안 브라더후드와 관계있는 건 아닌지 수상합니다. 그 맞은편에 있는 흑인 여성 제네바의 카페와 함께 월리의 선술집이 사건의 무대이자 5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들의 애증에 가까운 관계도 사건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타지에서 무슨 일인지 텍사스 라크로 왔던 흑인 청년 마이클의 시신이 강가에서 발견되고 뒤이어 이 지역 토박이인 젊은 백인 여성 미시의 시신도 인근에서 발견됩니다. 마이클의 죽음은 술에 취한 채 강물에서 익사했다는 결론으로 섣불리 마무리 짓는 반면 백인 여성의 사망에 대해서는 흑인의 사망에 따른 보복 범죄로 몰고 가려는 경향을 보이는 지역 수사관과 백인 무리에 대해 진실을 파헤치려는 대런의 활약이 맞섭니다.
이 소설은 21세기에도 여전한 인종 차별과 증오 범죄, 계급의 차이 등 남부 미국의 사회상을 드러내는 사회파 소설 같은 면모를 지닌 한편으로 텍사스의 자연환경, 술집과 카페의 풍경, 그 안에서 흐르는 음악의 묘사가 세세하면서도 유려하기도 해서 애잔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제네바의 카페에서 흐르는 블루스나 제네바의 남편이 결혼 전 뮤지션으로서 투어 하던 옛이야기 같은 대목에서는 소설을 읽고 있는 사람도 현재 Freddie King이나 Lightning Hopkins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음악이 흐르는 소설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블루스 뮤지션의 음악들을 찾아 들으면 우리가 친숙한 에릭 클랩턴은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로 더 유명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불현듯 찾아올 정도입니다.
소설의 제목 <블루버드, 블루버드>도 John Lee Hooker의 음악 <Bluebird>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텍사스 동부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인종 간의 정서와 사회적 분위기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 사실적으로 묘사한 필력의 작가는 애티카 로크(Attica Locke)입니다. 작가 자신이 텍사스의 휴스턴에서 나고 자라 <59번 도로 미스터리>라고 붙인 소설 부제의 장소인 59번 고속도로를 따라 부친과 함께 오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아프리칸 아메리칸 여성 작가로, 소설 속 텍사스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정서, 특히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서 느끼는 그들만의 동질감과 동지애, 미묘한 슬픔과 분노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 정서, 무의식이 있었기에 이렇게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소설을 읽는 내내 웰 메이드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작가가 영화나 tv 작가로도 활약하고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애티카 로크의 작품은 현재 이 블루버드, 블루버드만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 이 소설 전후로 몇 편의 작품이 더 있으므로 앞으로 한국에서 더 번역되어 읽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