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바다 갈매기는

리얼리즘 영화가 말하는 것

by 김빙하

너는 빠른 차를 가졌지. 난 어디든 가고 싶어. 여기만 아니라면 돼. 제로에서 시작하는 거야. 어차피 잃을 것도 없어.

트레이시 채프먼의 Fast Car 가사가 생각났다.

어촌 청년 용수에게는 선장(영국)의 배가 패스트카였다. 뼈 빠지게 일해도 어머니는 폐지 주으며 살고 일한 만큼 잘 살게 되리라는 희망도 없는 곳.

아무리 억척을 부려도 경매쟁이의 농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고 다 같이 으쌰으쌰 하려다가도 이곳은 일찌감치 틀렸다는 걸 눈치챈 배신자에게 털리고 아무도 일하러 오질 않아 노인들만 남은 곳.

젊은이는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고 노인은 그 계획을 도와준다 아무도 모르게.

싸패는 한 명도 안나오는 보험사기극인데 상황은 일찌감치 관객에게 다 공유된다. 이 영화의 진짜 미스터리는 맨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고 술만 마시는 노인 영국과 아들의 사망을 인정하지 않는 판례의 인생이다.


한 술자리에서 해줄 거 다 해주고도 욕만 먹는 사람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결론은 그들이 생색 내고 쪼잔해서였다.

영국도 ‘해줄 거 다 해주고도 욕먹는’ 사람. 근데 결이 좀 다르다.

자기한테는 아무 보상도 없을 보험사기에 공범이 되어주고 부둣가에 맨날 나와 앉아있는 판례가 빨리 포기하도록 매정해 보이더라도 혼자 수색에 참여 안하고 작업을 한다. 한국에서 쫓겨나게 된 영란에게 거지로 쫓겨나지 말고 가서 떵떵거리고 살게 사망신고서에 직접 사인하라고 관공서 안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진상이다.

언제나 멍한 젊은이가 눈을 반짝이며 ‘계획’을 말해서 해줘야겠다는 결심이 섰을까. 자기같은 노인들은 희망 없는 그 곳에서 그냥 살더라도 젊은 애들만은 나가서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어디서 왔을지가 영화에서 점차 밝혀지는 영국의 과거에 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섣불리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 지독한 리얼리즘 그 자체다. 너무 리얼리즘이어서인지 출렁이는 작은 배 안에서 일하는 장면을 볼 땐 나도 멀미가 나올 것만 같은.

정 많고 의리 많은 일면에 돈에 밝고 이웃을 시기하고 이주민을 차별하고 그악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시골 사람들의 이중성을 그대로 전시한 덕분에 같이 본 분은 감독이 시골을 싫어하는 모양이라고 했지만, 소멸되어 가는 지방에 살면서 착하고 순박하고 해맑기만 하다면 그게 사람일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할 때 보려 했으나 사정이 생겨 못가게 되어 서운했는데 개봉을 해줘서 너무 반가왔다.

오랜만에 딕션 좋고 연기 좋은 명배우들의 믿음직한 연기를 믿음직한 감독의 믿음직한 연출로 봐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