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새로운 좀비, 구태한 갈등

넷플릭스 드라마

by 김빙하

킹덤이 시즌 2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전체적인 줄거리로 보아 처음 설정했던 스토리는 일단 시즌 2에서 정리되는 듯하다. 시즌 2 후반부에서 시즌 3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주요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다른 배경과 다른 적대적 관계,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은 암시다.


시즌 2까지의 줄거리는 적통자로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 왕조 관습과 왕족의 권력을 가지고 싶은 귀족의 충돌에서 온다.

왠지 순조 즈음일 것 같은 조선 후기. 임금의 사망설이 분분한 가운데 임금이 살아있다고는 하면서도 어안을 보여주지 않는 편에 중전과 외척이 있다. 친아버지인 임금이 병석에 누워있다고 알고 있으나 중전에 막혀 용안을 뵐 수가 없는 세자가 있다.

이 도입부는 중전과 세자의 갈등 구도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서자 출신인 세자와 적통을 생산해서 권력을 쥐고 싶은 중전은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등구조다. 여기에 외척 세력까지 가미되어 있으니 전형적인 조선 후기형 권력 다툼이고 장자와 외척을 대척점에 놓은 선악극이다.

킹덤의 성공적인 지점은 좀비 스토리를 사극에 훌륭하게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세자와 외척의 충돌에 줄기를 둔 채 갈등 전개의 도구로 좀비라는 개념을 멋지게 이용했다면, 드라마 속 외척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좀비를 이용한다.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걸 막아야 하는 외척은 중전이 아들을 생산할 때까지 왕을 살려 두어야 한다. 이미 좀비를 이용하는 방법을 전쟁에서 써본 적이 있는 중전의 친정아버지이자 영의정 조학주의 실행으로 인해 죽었으되 죽은 게 아니게 된 왕. 과거의 어의가 왕의 진료를 위해 궁궐로 불려 갈 때 함께 갔던 조수에게 참혹한 일이 일어나고, 어의가 그 시신과 함께 부산에 있는 자신의 의원 지율헌으로 다시 내려온 이후 영남 지방에는 죽여도 죽지 않는 수많은 괴물이 출현하게 된다. 여기에 역모의 누명(?)을 쓰고 쫓겨 내려간 세자 이창이 도달하여 의녀 서비 등과 함께 역병에 맞서면서도 한양으로 올라가 진짜 역모를 한 외척 세력을 물리쳐야 한다.


왜 하필 외척인가

외척 세력과 왕권의 충돌은 한국 역사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갈등 구조이다.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이 왜 외척밖에 없겠는가. 서양에서는 외척보다는 장자에 의한 위협이 더 근원적인 공포임을 보여주는 신화나 고전들이 있다. 아버지를 거세한 크로노스는 아들인 제우스에 의해 권력을 내려놓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기어이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나. 서양의 신화를 보면 살부(殺父)에 대한 공포가 남성 집단의 무의식 중 하나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로 성공한 남성의 공포의 대상이 아들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측면이 있다.

이에 비해 유교적 동양적 가부장에서는 유독 처나 처의 원가족(외척)이 무의식적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측천무후(측천 순성 황후)에 대한 사후평가나 야사에 처 혹은 여성을 혐오하는 내용이 가미된 건 공공연한 사실이고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남자 가장이 잘못될 경우 남편 잡아먹은 어쩌고 하며 처에게 어처구니없는 비난을 돌리는 유구한 전통이 있지 않은가.

조선 후기 자체가 외척 세력의 존재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사적 시기였기 때문에 <킹덤>에서 세자의 대척점에 '악의 축'으로서 외척 세력을 놓아둔 점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가부장적 왕권과 유교적 종묘사직의 신성한 장자 계승에 불경스럽게 도전하는 중전과 외척 세력이라는 설정이 아무리 조선 사극이라 해도 21세기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로 나오기엔 너무 구태의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를 배경으로 해도 갈등 설정은 현대적일 수도 있겠건만 2020년에 나오는 드라마의 갈등 구도가 순조로운 가부장 계승은 선, 그것을 방해하는 처와 외척은 악이라는 식이니 1980년대에나 열광하며 보던 장희빈 류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않아 보여 안타깝다.

결국 <킹덤>의 갈등 구도가 상징하는 게 그런 가부장의 공포이지 결코 역사 진보적 관점에서 왕권 위협의 상황을 묘사한 게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도가 썩 매력적이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백성이 없다. 좀비만 존재

세자와 외척의 갈등이 주요 줄거리니 백성에 대한 연민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최근에 영화로 나온 사극 몇몇에서 보여준 트렌드-어려운 백성의 처지에 반성하거나 분개하는 통치자-를 볼 때 <킹덤>은 미래의 통치자 일지 모르는 세자의 백성에 대한 고뇌를 과감하리만치 생략했고, 종묘사직에 대한 충성 대 역모 구도만 부각했다.

<킹덤>에 나오는 백성은 거의 모두 미래의 좀비 세대일 뿐이다. 통치의 대상으로서 현재의 상황에 대한 묘사라고는 좀비에 쫓기는 백성을 성밖에 두느냐 성안으로 들이느냐 할 때뿐이다.

궁궐 밖으로 나간 세자이면서도 백성을 바라보는 시점이 좀처럼 안 보이는 전개는 이 드라마의 한계이면서 전개상 장점이기도 하다. 매 시즌 6화씩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스토리가 밀도 있게 진행되도록 하려면 아무래도 주인공들 간의 직접적인 갈등 외의 다른 감정적인 구성을 넣기 빠듯했을 듯하다. 드라마 치고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을 구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스피디하게 전개해야 했을 것이고 스토리의 메인 줄기와 큰 상관없는 감정적 군더더기를 쳐내야 했을 것이니 덕분에 드라마가 깔끔하게 빠진 것 같기는 하다.


좀비에 대한 기발한 설정

초반과 중반 후반에 이르기까지 좀비의 생태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초반에는 좀비가 밤이 되면 어두운 곳에 들어가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다가 중반 이후에는 밤이 되어도 팔팔해지게 되는데 낮밤이 문제가 아니라 기온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생사초라는 풀잎으로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있으나 전염이 되지는 않다가 인육을 먹은 후 전염성이 강해지는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등 여태껏 보던 좀비 물들과는 다르게 좀비의 태생과 변이에 대해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해 가며 설명한다. 이 역병의 생태와 변이에 대한 추리는 이 드라마의 지성(知性)을 담당하는 의녀 서비의 몫이다.

서비의 입을 빌어 비로소 알게 되는 좀비의 생태 덕분에 우리는 왕이 이미 좀비였으나 한양에 창궐하지는 않았던 이유, 안현 대감이 변한 좀비에게 물린 조학주는 변하지 않고 다른 좀비에게 물린 계비조씨는 변한 이유를 알게 된다.

여태껏 보았던 다른 좀비물에서는 좀비를 단순하고 영혼 없는 썩어가는 괴물로만 보았던 것과는 달리 이 드라마에서 좀비는 강력한 전염성 질환 즉, 역병의 존재이고 이 처음 보는 역병의 발생원인과 역학, 생태를 서비의 탐구와 발언을 통해 좇다 보면 어느새 방역의 한 복판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즉 좀비를 단순히 괴물이나 악으로 보는 게 아니라 역학과 의학의 관점에서 질병으로 보는 시선을 견지하는 의녀 서비 덕분에 액션물로만이 아니라 의학 추리물과도 같은 느낌으로 흥미를 가지고 계속 보게 한다.


캐릭터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세자 이창 캐릭터는 그리 와 닿지 않았다.

초반 설정에는 역모에 실제 가담도 했고 왕위에 욕심이 없던 것도 아니었던 듯한데 후반으로 가면서 왕위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리니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건 일반적인 스토리 물 주인공 캐릭터 전반에 해당도 되는 듯한데, 많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특별나게 뛰어난 무술이나 지략, 초능력 같은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주인공 자체가 잘 돋보이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주인공 이창 캐릭터는 배우 주지훈의 나름 괜찮은 용모 외에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킹덤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캐릭터로 둘을 꼽겠는데 첫 째가 중전인 계비 조 씨이다.

계비 조 씨는 시즌 1에서 해원 조 씨의 권력 장악을 위해 부친, 오빠와 함께 술수를 부린 중전이고 시즌 1의 후반부까지 비밀을 지닌 인물로 나온다. 계비 조 씨 역을 한 배우 김혜준은 시즌 1에서 연기에 대한 악평이 있었으나(개인적으로 시즌 1의 연기가 왜 문제가 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배우에 대한 낯섦 때문에 저평가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시즌 2에서는 그런 혹평이 있었는지조차 말끔히 잊어버리도록 악의 중추적 역할을 맛깔나게 해냈다. 연기도 연기지만 김혜준 배우 얼굴 특유의 균형 잡힌 좌우가 지체 높고 화려한 캐릭터의 좌우대칭 클로즈업을 잘 살리고, 아직 다 빠지지 않아 보이는 젖살이 야무지고 젊은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안성맞춤인 것 같다.

동서양의 많은 사극이 권력을 위해 딸을 처첩으로 보내는데 이용하는 설정이 많이 나오지만 그 계비 조 씨만큼 자신만의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는 드문 것 같다. 자식들 중 딸이라고 천대하다가 이용하기 위해 중전으로 만들어 버린 아버지 조학주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장면에서 가문을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자신만의 권력을 원하고 아버지의 가치를 배신하는 딸의 캐릭터는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또 하나의 각인되는 캐릭터는 동래부사 조 범팔이다. 초반 등장에서 또 흔한 탐관오리구나 추정했던 경솔함을 깨는 캐릭터.

지역의 실질적 고위 행정직 이방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낙하산 사또는 전래 동화나 전설에서 흔하게 본다. 간사한 이방의 달콤한 혀에 녹아 백성은 안전에 없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전형적인 조선형 중앙 파견 지방 고위직 말이다.

조 범팔도 초반에는 경솔하면서 백성의 안전보다는 지역 양반들과 자신의 안녕에만 관심 있는 부사로 나온다. 하지만 흔히 보던 탐관오리와는 달리 이 사람, 줏대가 없어도 너무 없다. 이방이 뭐라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따르던 사람이 어찌하다 살아남아 서비와 함께 다니고 서비에게 연심을 품다 보니 서비가 시키는 대로 세자의 편에서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줏대가 없으므로 중반에 숙부인 조학주의 사주를 받아 일을 그르칠 뻔하고 한양으로 올라가 벼슬까지 하게 되지만, 심약한 캐릭터답게 사람을 해하는 직책을 버거워하다가 최종적으로 세자의 편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전석호라는 제법 비중 있는 배우가 왜 저런 역에 나올까 하는 초반의 물음이 해소되고 조 범팔은 나름 유머와 인간적인 캐릭터를 담당하면서 시리즈 끝까지 가게 된다. 음모와 술수, 비장함과 추리, 목숨을 건 전투 속에서 조 범팔 캐릭터가 담당하는 긴장 해소가 있어서 이 드라마를 끝까지 쉽게 볼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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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의 큰 챕터 하나는 시즌 2에서 마무리되는 것 같다고 앞에 썼다. 그런데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느낌은 든다.

조학주나 계비 조 씨 같은 중추적 악역이 허무하고 급하게 최후를 맞이하다 보니, 저 사람들이 추구한 건 권력이 아니라 내가 못 가질 거 아무도 못 가지게 하겠다는(실제로 이런 뉘앙스의 대사가 나온다) 심통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세자는 아버지인 임금에 대한 역모에도 참여할 정도로 권력욕도 있었던 듯하고 중전과 외척의 득세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도 있었건만 조학주 일당이 제거되고 난 후 느닷없이 권력욕이 사라져서는 그야말로 씨를 알 수 없는 아기에게 왕위를 주겠다는 결정을 한다. 스토리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외척 제거, 장자 계승이라는 명제가 슬그머니 없어져 버리니 여태까지 왜 저렇게나 싸웠을까 하는 허무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탄탄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시즌 1의 복선이 2에서 충실히 설명되는 전개를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온다.

또한 어느 곳에도 없던 독창적이고 역동적인 좀비의 생태와 전투는 볼거리를 많이 준다.

시즌 3부터는 조선 내에서만이 아니라 조선 밖으로부터의 적과 싸우는 스케일을 보여줄 것 같은데 스케일보다는 나는 아마도 서비와 조범팔 때문에 계속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