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커맨(Wicker Man) -딱 맞는 제물

미드소마의 원조격 포크호러(folk horror)

by 김빙하

닐 하위는 스코틀랜드의 경찰. 약혼녀도 있지만 혼전순결의 서약을 지키고 있을 정도로 엄격하고 깊은 신앙심을 가진 독실한 크리스챤이다. 로완 모리슨이라는 여자 아이가 서머아일에서 실종 됐다는 익명의 편지가 경찰서로 배달되어 이에 대한 탐문을 하고자 혼자 경비행기를 타고 서머아일 섬으로 들어가게 된다.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의 섬과 밝고 유머스러워 보이는 섬 사람들은 육지에서 온 경찰에게 호의적인 듯 하면서도 미묘하게 엇나간다. 조직적이고 끈기 있게 탐문을 방해하는 섬 사람들에게 은근히 부아가 치밀지만 가까스로 자제하면서 아이의 행방에 대해 조사해 나가던 중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섹스와 다산, 풍년에 대한 기원과 경외감을 원천으로 하는 신앙에 제물을 바치는 풍습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위커맨(wicker man)은 나뭇가지를 얽어서 만든 사람 형상의 구조물이다. 고대 켈트족 신앙의 실제 제물 공양 의식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영화는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위커맨을 향해가는 여정이다. 어떻게 보면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고 생각할 수 있을만큼 영화 내내 실종 소녀에 대한 탐문과 조사,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 장면만 줄기차게 나오는데도 보는 이로 하여금 언젠가는 위커맨이 나올 것이고 과연 어떤 방식으로 나올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품고 계속 보고 있게 만든다.


시종일관 다소 강압적으로 탐문하는 근엄하고 경직된 표정의 육지 경찰과 알 수 없는 미소와 어딘가 나사 빠진 듯한 표정으로 느물거리며 빠져나가는 섬마을 사람들이 대비된다.

경비행기가 항구에 처음 도착할 때 모여든 촌로들은 호기심 어린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육지경찰이 섬으로 들어오는 데에 도움을 줄 생각은 없다. 소녀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도와줄 것만 같은 순수한 표정으로 응대하면서도 입으로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하위도 알고 영화를 보고있는 우리도 안다. 한 마디로 섬 사람들의 태도는 수동적 공격성이다. 근엄하신 육지 경찰 나으리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지만 성실한 공무원답게 최대한 자제하면서 혼자 탐문을 계속 해나간다.

화창하고 꽃이 만발한 낮의 섬 풍경 속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단체 합창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장면은 밝은 뮤지컬 같은 느낌을 주지만 노래 가사는 음담패설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남근 숭상을 가르친다. 십대 소녀들이 가운데 모닥불을 피운 채 나체로 둥그렇게 모여 처녀생식을 위한 의식을 치르는 장면은 마녀 의식을 연상하게 한다. 밤에는 보란듯이 거리에 나와 섹스를 하는 사람들. 여관 주인의 딸은 대놓고 금욕주의자 육지 경찰을 유혹한다.

섬 사람들의 행동, 의식, 말 모든 것에서 풍기는 기묘함이 그들의 해맑은 표정과 화창한 날씨, 아름다운 풍경과 대비되면서 한층 더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


하지만 섬마을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에 대비되는 육지 경찰의 근엄하고 강압적인 수사 태도를 한 발짝 떨어져서 편견 없이 본다면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풍자를 즐길 수 있다.

로완 모리슨을 애타게 찾는 경찰을 속이기로 작당한 섬마을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은 대체로 밝은 분위기에서 장난기가 가득한 행동으로 나타나고 음흉하게 속인다기 보다는 대놓고 약을 올리는 방식이다. 까르르 거리며 약 올리는 마을 사람들에 비해 한 번도 웃지 않는 육지 경찰의 표정은 권위적인 공권력과 정통 기독교의 엄숙주의에 대한 풍자다.


이 영화는 공권력과 기독교의 근엄함을 풍자하다 못해 ‘제물’에 대한 전통적 고정관념까지 비틀었다.

줄기차게 경찰이 로완 모리슨을 찾아 다니는 장면을 보고있자면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위커맨>인가 <로완 모리슨을 찾아서> 쯤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로완 모리슨이라는 소녀가 실존하긴 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게 되는데 그 때 쯤 전격적인 반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반전은 우리가 보통 인신공양으로 삼는 존재들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 제도권, 명예, 나이, 성별에서 충족 조건을 가진 존재가 자발적으로 제례 의식에 찾아들었을 때를 충족하는 제물. 그 제물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자체가 스포일러인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난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포스터를 눈 여겨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도 반전을 즐겁게 맞을 수 있었다.


호러 영화에 속하지만 공포스러운 장면은 거의 없다.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통념과 비교해서 이상한 범주에 드는 상황들이 많이 있어 기괴하다고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편견 없이 본다면 내내 웃으면서 볼 수 있다. 심지어는 결정적인 공포를 선사하는 마지막 반전 상황에서도 미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면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종교인이라면 크게 다를 수 있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소 충격받을 수 있는 장면들과 내용이라는 점은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볼 때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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