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by 김빙하

1700년대 중후반 스웨덴을 통치하던 구스타프(구스타프 3세) 국왕은 왕권 강화를 추구하고 이웃나라와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 야심만만한 전제군주였다. 하지만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만큼 당시 유럽을 뒤흔들던 부르주아 혁명의 기운에 대한 두려움도 커서 감시체계 구축이나 측근을 이용한 공작정치도 만연케 하던, 유능과 무능의 다리를 오간 왕.

이 소설은 그 시대의 이야기다. 전쟁과 가난으로 내몰린 비참함 속에서도 살아내야 했던 가련한 사람들과 혼란한 틈을 타 자기 잇속만 챙기는 부패한 귀족들, 그 속에서 손 놓아버린 치안, 그럼에도 정의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

1부-4부로 이루어져 있는 소설의 1, 2, 3부는 각각의 주인공이 있다. 그 주인공들이 겪는 1793년 한 해의 파란만장한 삶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이 4부에서 펼쳐진다.


해전에 참전했다 한 팔을 잃고 난 후 방범관이 되어 생계를 잇고 있는 미켈 카르델은 1793년 어느 가을날 오물 범벅의 파트부렌 호수에서 사지가 잘리고 눈과 혀가 없는 시신 한 구를 수습한다. 누가 피해자에게 이렇게 참혹한 짓을 했을까. 말기 결핵으로 죽어가는 이성의 화신 세실 빙에는 치안총감인 친구의 부탁으로 이 사건의 비밀 수사를 맡게 되고 전쟁의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하던 카르델에게 함께 수사할 것을 제안한다. 수사를 해나갈수록 사건과 관련 있는 권력의 부패와 향락, 약자에 대한 가학적 착취의 흔적들을 확인하게 되고 수사를 원치 않는 세력의 방해에도 시달리게 된다.

2부에서는 크리스토페르 블릭스라는 가난한 젊은이의 삶이 여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펼쳐진다. 해전에서 외과 교수의 보조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의학을 공부하려는 뜻을 품고 스톡홀름에 어렵게 입성해서 의과대학에 찾아가지만 기본이 없어 퇴짜 맞는다. 고향 친구와 함께 소액 사기를 쳐서 자립 자금을 마련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귀족 행세를 하며 돌아다니지만 오히려 더 지능적인 사기단에 의해 그때까지 빌려놓았던 돈들도 모두 사기당하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처지가 된다. 결국 잡혀서 수수께끼의 인물에게 팔려가 폐허나 다름없는 한 성에 감금된 채 가지고 있는 의학 지식으로 할 수 있는 모종의 일을 수행할 것을 명령받게 된다.

3부는 안나 스티나라는 가난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이다. 과일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행상을 하는 안나는 어릴 적부터 같이 놀며 자라온 절친한 친구의 청혼을 거절하고 겁탈의 위기에서 벗어난 뒤 매춘을 한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모친상을 당한 와중에 말도 안 되는 누명과 엉터리 재판을 통해 투옥된 감옥은 끝없는 실 짜기 노동과 굶주림, 교도관의 지독한 착취와 가학 행위에 여자 죄수들의 정신이 나가고 속절없이 생명도 사그라드는 처참한 곳이다. 치밀한 계획으로 그곳을 탈출하여 신분을 위장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안나는 탈출 과정에서 생명을 잉태하게 된다.


얼핏 사건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2부와 3부의 인물들의 삶이지만 이들의 인생이 만나 사건을 만들고 또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꼭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에서 전혀 관련 없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얽히고설켜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을 본 것처럼 4부에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마치 퍼즐을 맞추고 난 후 같은 카타르시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흡인력 좋은 소설이 묘사해 놓은 1790년대의 스웨덴 민초들의 비참한 삶을 보고 있자면 사회를 고발하기 위해 범죄 소설을 쓰게 됐다는 마이 슈발과 페르 발뢰 처럼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는 스웨덴 역사에서 비교적 칭송받는 구스타브 3세 시대를 처참하게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를 구상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에서 스톡홀름 일대에 살았던 평민들의 낙후한 생활수준, 더럽고 질퍽한 도로, 오물 투성이 강과 호수 같은 도시 묘사는 물론이고, 귀족까지 가지 않더라도 평민 세계에서의 위계와 그 속에서의 착취, 거짓, 사기, 배신, 그리고 귀족과 관리들의 타락, 정치적 음모와 감시 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층위에서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는 듯한 소설이다.


소설은 매우 빠르게 읽힌다. 워낙 첫 장면부터 처참한 시신의 발견이라는 충격으로 시작하기도 하지만 모든 문장과 묘사가 흡인력 있고 읽다 보면 안타까움과 슬픔에 가슴이 저미게 하는 부분들이 많다. 또한 스토리가 풀리는 방식도 새로 등장한 인물의 최종 역할이 궁금해서 끝까지 안 읽을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몇 가지 중요한 복선이라고 생각했던 점들이 끝까지 제대로 안 풀리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좀 있는데, 저자가 수습을 못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나올 시리즈에서 설명되겠지 하는 기대도 된다. 그래서 만일 이 <늑대의 왕>이 시리즈로 나온다면 안 읽을 수 없게 될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독자의 기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배신하는 것이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징임을 볼 때 그냥 장르 문법에 충실해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등장인물 중 삶의 여정이 너무 팍팍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치밀함과 대담함이 감탄스러워 대단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끝으로 가면서 저버린 캐릭터가 있어 개인적으론 매우 안타까운데, 읽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으므로 설명 없이 한 번들 읽어 보시길. 몇몇 기대는 저버리더라도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