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어 하고 구화(입을 사용해 소통하는 방법)의 사용 여부가 그렇게 사람 또는 사회를 갈라놓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질 못하고 말이야. 수어를 하느냐 구화를 하느냐도 본인의 선택이고 그로 인한 삶을 걸어가는데 내가 그들이 선택한 삶과 방식이 잘못됐다 비판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을 부여잡고 인생 오솔길 걸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들도 그러하지 않은가?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닐 거란 거다. 그건 명백하다. 두 소통방식 중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주변 환경이 달라질 수 있는데 어느 누가 인생의 방향이 걸린 중요한 결정을 대충 하겠는가? 모든 결정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 원인을 자신이 자각하느냐 못하느냐가 관건일 뿐, 그들의 선택은 항상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그걸 본인의 생각으로 박박 우기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수어에 관심이 있고 수어가 충분히 언어로써 가치가 있다고 수용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러나 난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일생을 사람들과 구화로 소통하면서 살아왔다.
귀가 안 들리지만 수어가 서툰 사람이다. 이것 또한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일뿐.
나 스스로가 좋은 것은 수용을 하고 크게 받아들이지만
그 두 가지 소통방법이 왜 좋고 안 좋은 가에 대한 생각을 크게 해 본 적이 없다.
쉽게 말하자면 구화를 사용하면 더 많은 비장애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고
수어를 사용하면 더 많은 데프분들과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좋다는 것, 둘 다 훌륭하다는 마인드다.
너무 우유부단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뭐, 느끼는 대로 나 자신이 보여도 상관은 없는 것 같다.
나의 27년 인생에 있어 집안 가족들은 물론 밖에서도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말하는 말들이 있다. 내가 살면서 많이 들은 말 중에 TOP 3을 뽑자면, 아래와 같다.
1. "잘 들리는데 왜 그래요?"
2. "아까 내가 뭐라고 말했어? 왜 못 알아듣는 거지? 혹시 듣고도 모른 척하는 거니?"
3. "충분히 잘 듣는데 왜 굳이 수어도 하려고 하니?"
당연한 것 같지만 전혀 당연하지 않았던 이와 같은 상황에서 수많은 고충을 겪었었다. 그래서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가 있다. 그저 서로 충분히 알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라고 말이지. 사람은 각자 태어날 때부터 가져온 조건들과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사람이 틀을 찍듯 인생의 방향까지 다 찍어서 나올 수 있다면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굳이 말하자면 겨울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맛난 붕어빵이 생각난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다 사람의 본질인 인간성, 인간미라고 믿는다. 그래서 인류가 현존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제 본인은 아까 위에 언급했던 TOP 3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하고자 한다.
1. "잘 들리는데 왜 그래요?"
A. 이 질문의 의미는 참 다양한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청력은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잘 들린다"하고 매우 다른 듯하다. 잘 들린다는 척도는 나도 정확히 모르는데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들리는지는 오로지 나만 아는 것이니까. 반드시 답변해야 한다면, "나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나 자신의 살아온 환경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2. "아까 내가 뭐라고 말했어? 왜 못 알아듣는 거지? 혹시 듣고도 모른 척하는 거니?"
A.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 다. 나는 알아들은 것을 모른 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고 못 알아들어서 대답을 못 해주거나 말을 놓쳐서 엉뚱한 대답을 한 적은 있다.
3. "충분히 잘 듣는데 왜 굳이 수어도 하려고 하니?"
A. 첫째로 수어는 나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배우려고 하는 거다. 생각해보자. 비장애인들은 음성으로 소통을 하지만 안 들리는 사람은 수어를 사용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그래서 내가 "데프"에 대해 더 깊이 알려면 수어를 배우는 게 맞는 거다. 다른 나라로 가서 살면 그 나라말을 배워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둘째, 수어는 나에게 있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내가 늙어서 청력이 다시 손실된다면, 그땐 구화를 해도 듣질 못하니 어려움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난 수어가 아름답고 가치 있는 수많은 언어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심이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영어, 일본어, 중국어는 관심을 가지고 배우려고 하는데 왜 수어는 그 언어들 중 하나임을 인정을 안 하는 이유를 되물어보고 싶다. 수어도 언어인데 다른 언어들과 동등한 가치와 선택의 자유를 부여해야 마땅한 게 아닌가? (참고로 한국수어 언어 법은 2016년에 시행되었다. 하단 링크 참고하길)
아주 큰 늙은 호박이 위에서 쿵 떨어져서 두 동강 나도 발바닥에 큰 진동만 느낄 뿐, 귀는 아무런 반응이 없을 정도로 말이야. 다만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누군가가 고막을 징 치듯 힘차게 치며 사물놀이 하는 것 처럼 압력에 눌려 울리거나 먹먹해지는 건 느낀다. 딱 그 정도다. 그러나 인공와우 수술을 초등학교 때 하게 됐고, 그로 인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예 아무것도 안 들렸던 내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소리를 듣고 새가 짹짹이며 복도에 누군가가 저벅저벅 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 거는 어마어마한 변화 또는 마치 피카츄가 라이츄로 진화한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 내 귀는 여전히 안 들리는데 말이지.듣는 것도 완벽하지 않고 보청기를 빼면 그만인데 말이야. 더욱이 내 보청기가 박살 나거나 인공와우가 고장 나 버린다던지. 실제로 인간이 늙어가는 과정에서 인공와우도 기능이 노화되어 상실하는 사례가 주변에도 많다. 의료 기술로 어느 정도 끌어올려도 완치는 아니란 말이다. 맨 하늘에 이유 없는 벼락이 칠리가 없다는 것처럼. 모든 것에도 이유가 있고 그에 맞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한 인공와우가 크게 대단한 마법을 한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의료기술은 매직(Magic)이 아니다.매직을 바라지도 않고 말이야.그러다 보니 나의 청력은 온전하다고 볼 수 없고아무리 잘 듣는다 해도 대화 중 일부를 놓쳐버리거나 아예 못 알아듣는 경우는 매우 당연한 일이다. 나에게 당연한 것을 여러분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여러분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나 자신에게는 당연하게 적용되지 않는 경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