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n is mighter than the sword." 펜은 칼보다 강하다. - 에드워드 불워 조지 리튼의 "시슐리외 추기경"속에서
글에 대해 표현하라고 할 때 내가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나는 글쓰기가 참 좋다. 그래서 회사에서 끊임없이 뇌를 소모하고 집에 와서 펜 하나 잡는 게 천국이다. 좋은 작품이 머리에 떠오르면 당장 컴퓨터에 앉아서 브런치를 켠다. 물론 따뜻한 벌꿀차나 녹차와 함께 말이야. 키보드 타자를 칠 때마다 머릿속으로 같이 읽으면서 글을 쓸 때 내 모든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참 신기하다. 어쩜 말은 마음껏 하고 내뱉어도 정리가 되질 않고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했던 내 머리가 금세 말끔해진다. 이게 글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인 것 같다. 글쓰기란 나의 고단한 하루를 정리해주고 심신을 가라앉혀주는 최고의 명상이다.
가끔씩 글과 말을 보면 인격을 가지고 있는 한 인격체로 보이기도 한다. 각자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고 표현하자만 마치 화성에서 온 사람과 금성에서 온 사람이랄까. 우리는 남녀를 화성인, 금성인으로 표현하듯이 글과 말도 서로 상반된 성격을 띠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점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많이 접하고 있다.
아, 이제부터 말과 글이 각각 가지고 있는 성격 3가지를 일상생활에 빗대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말이 가지고 있는 성격
1. 반응형 융통성을 갖춘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나한테 대뜸 무언가를 보여주면서 설명해달라고 하거나, 새로운 제안을 제시할 경우 본인은 그것이 비즈니스의 일부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렇다. 입을 떼어 말을 하고 대화를 하는 순간 그건 일종의 인간 비즈니스가 되는 거다. 보통 말을 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부탁을 받은 대상을 먼저 파악하고 뒤이어 그 사람의 성격과 입장을 빠르게 분석하기 시작한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친한 지인이 새로 나온 미용제품을 보여주면 "이걸로 이렇게 어떻게 연출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근데 혹시 그 스타일을 좋아하면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으냐"며 그 사람의 취향을 사로잡는다. 반면에 넌 이걸로 이렇게 스타일링하면 예쁘겠네 라고 말했을 때 그 상대가 심기 불편해한다면 그건 실패다. 제안도 마찬가지다. 누가 생선을 먹자고 했는데 본인이 싫어하는 게 생선인 경우도 있긴 하다. (물론 나는 생선을 좋아한다) "난 생선을 못 먹으니 다른 거 먹자"라고 했을 때 그 요주의 생선요리가 상대방이 큰 마음을 먹고 준비한 엄청난 회심의 작 또는 꼭 전하고 싶은 진심의 일부일 경우 그이는 매우 실망이 클 수 있다. 큰일날 말을 내밷은 셈이다.
그래서 말의 융통성이 매우 중요하다. 난 이걸 싫어한다고 대놓고 밝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전하고 "생선요리와 함께 다른 요리도 하는 식당에 가자"는 등 대안책을 부드럽게 제안하는 게 현명한 이유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융통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융통성이 타고나지 못한 사람은 대개 대화를 나눌 때 갑작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뇌가 꽁 얼어붙은 것 같이 입이 안 떨어지는 것도, 입을 뗄 때마다 어설픈 대답으로 주변 사람들의 오해를 사는 것도 이 융통성의 차이 일 뿐이다. 그렇다고 글에 이와 같은 융통성이 없는 건 아니다. 이건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2. 미래를 바라보며 진행한다.
말의 미래 진행형 시제는 위에서 언급한 융통성과 연결이 되는 부분이다. 상대방의 생각과 기분을 빠르게 파악하며 맞춰가는 대화의 기술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예측하는 성격이 강하다. 즉,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을 하고 인식을 할지 이 모든 계산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화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현재 진행형으로 대화를 한다면 매우 단순하나 융통적인 면은 떨어질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 이 시간 이 상황만을 전제로 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는 단순한 잡담이나 안부를 물을 수 있어도 심도 깊은 비즈니스적인 대화를 이루기엔 역부족이다. 그렇기에 말을 잘 다루는 사람은 그 자체가 미래 진행형을 지향하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본인은 미래 진행형이란 과거와 현재가 아닌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내다보며 그것이 진행되고 있는 걸 미리 가정하에 말을 짜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3. 사람을 움직인다.
말 그대로 사람을 움직이는 비즈니스 성격을 띠고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마치 산을 옮기는 것이라 표현할 정도로 고난도의 기술을 요한다. 융통성과 논리를 둘 다 겸비한 자가 사업을 잘 이끌고 성사시키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사실임을 기억하라.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현란한 말재간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논리와 융통성의 완벽한 조화, 임기응변을 요하는 소통의 기술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혀끝 앞에 사람이 서 있는 격이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얼마나 잘 설득시키고 뜻하지 않은 돌발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말의 성패가 갈린다.
글이 가지고 있는 성격
1. 인내심이 있다.
말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글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인내심이 매우 강하다. 한 땀 한 땀 적히고 문자가 쳐질 때마다 존재하고 새로운 구상이나 내용이 생각나면 그 위에 덧쓰운다. 그렇게 글은 한결같이 기록이 새겨질 때마다 그 자리에 있고 날마다 쌓여간다. 히스토리(기록)는 글이 가진 큰 장점 중 하나이다. 하나의 글을 시작하면 대부분 하루아침에 끝맺지 않고 이삼일을 걸쳐서 다듬어간다.(본인은 보통 짧게는 이틀 길게는 1주 정도 잡는다) 아주 뛰어나고 훌륭한 내용을 가진 글이라면 더욱 그렇다. 말은 생각하자마자 바로 입에서 나오고 생각이 바뀌면 이전에 있던 말은 묻혀서 사라져 버리지만, 글은 어느 시점에 시작해도 수정과 수정을 거듭해서 다듬어진 형태로 존재한다. 글의 인내심은 매듭지어질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렇게 다듬어지고 다듬어진 논리와 철학은 아주 견고해서 감히 휘두르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2. 과거로부터 이어져 있다.
말은 미래 진행형이지만 글은 과거 진행형이다. 글을 쓰다 보면 간혹 글의 방향이나 내용을 참고 및 인용하기 위해 역사를 짚어보거나 과거의 기록들을 들 취보 곤 한다. 그렇기에 글은 현재의 정보와 미래의 비전을 갖고 있으나 동시에 과거의 흔적을 안고 간다. 내가 최근에 읽은 "내 안의 우주 입속에서 시작하는 미생물 이야기"는 미생물에 대한 현대적인 견해를 담고 있으나 그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중세시대로 돌아가 네덜란드의 상인이자 과학에 관심이 상당히 많았던 레이우엔훅,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었던 현미경의 아버지 로버트 훅을 다시 찾아가고 미생물학의 황금기를 살펴보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충분히 지금의 견해를 설명해도 됐었을 뻔했지만 자신의 논리를 더 견고하게 굳히기 위해서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그의 미생물에 대한 새롭고 신선한 제안을 우리 독자들은 더 쉽게 납득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말은 몇 초 내에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지만 글은 수십 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함으로 사람들을 납득시킨다.
3.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람을 납득시킴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그것이 글이 가진 제일 강력한 성품이다. 글은 때론 우리 인간들을 쏙 빼닮아있다. 아니, 그 글을 쓴 필자를 닮았다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쓸 때마다 그의 인격과 가치관, 철학 등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글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글을 표현하자면 산을 옮기는 마법과도 같다. 매우 신비로운 능력을 강연을 듣듯 하루 이틀만 듣는 게 아니라 일주일, 몇 달을 걸쳐 읽으며 곱씹어보면 분명 에베레스트급 강심장도 녹여낸다. 그러한 글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천대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공감을 산다. 그렇기에 글은 그에 맞는 독자들을 만나야만 그 가치를 발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여느 사람들처럼 글도 인격과 감정을 가진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고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칼은 그 사람을 찌르지만 펜은 그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은 말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힘을 가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