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소나무, 조그만 꽃 한 송이일지라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단어 "아름다움"을 재해석하다

by 명형인

아버지랑 가끔씩 함께 서울에 올라갈 때 차 밖으로 청계산-양재 구간의 소소한 풍경을 보곤 했다. 항상 청계산을 지날 때마다 어수선한 건물들이 점점 사그라지듯 적어지다 드넓은 녹색 밭으로 풍경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그 풍경이 나올 때마다 창밖을 보는걸 아주 좋아하는 편임) 청계산 부근에는 화원과 목석원이 많이 있었는데 사이사이에 뻗어있는 굽은 소나무들이 유독 눈에 뜨이곤 했다. 키가 크지 않고 작거나 땅딸만 한 아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나에게 물어보시더라. "넌 저 소나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니?" 그때 당시 27년의 내공을 근거로 삼이 아버지의 질문에 숨은 속마음을 완벽하게 알아채렸나 싶었다. 뭔가 좋은 대답을 원하신 것은 분명했다. 진지함에 가득 찬 아버지의 마음에 난 불씨 하나를 지폈다.


"소나무 하나하나가 굽어 여기저기 뻗어있고 그 모양이 제각각이네요! 똑같은 게 단 하나도 없어요."

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키가 작지만 강인한 소나무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예상 밖의 내 대답에 대한 아버지의 실망스러움이란. 그 기색을 알아챌 땐 너무 늦었던 걸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그럴 땐 그냥 예쁘다 또는 아름답다고 하는 거야. 단어는 항상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해. 굽었다는 건 썩 좋지 않다" 그때부터 곰곰이 생각을 여러 번 해보았다. '아름다움을 표하는 단어의 기준이 무엇인가?' 그리고 '좋은 단어를 사용해야만 아름다운 걸까?'라고 곱씹어보았다. 이와 같은 고찰에 대한 나의 정의를 이제 내려보고자 한다.



1.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상대방이 생각하는 것하고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동물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을 예로 들어보자. 어떤 사람들은 눈이 크고 앙증맞은 고양이가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몇몇은 오히려 퉁퉁하고 가필드같이 맹한 고양이가 예쁘다고 한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보통 내 친구들과 달리 쭈굴쭈굴하고 못생겼다고 하는 퍼그, 불도그 같은 종을 너무 최애 한다. 그래서 아랫입술 위로 작은 이빨을 삐죽 내민 불도그가 옆에 드러누워 크르릉 코를 골면서 잠자는 모습에 껌뻑 죽는다. 고양이도 페르시안종처럼 약간 찡 끄린 모습을 한 애들이 너무 매력적이라 느낀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파충류들도 나에겐 예쁜 아가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식물들도 물론 취향이 각각 남다르다. 어머니는 가지와 잎이 쭉쭉 뻗어있는 화초들을 좋아하시지만 나는 땅딸만 하고 통통한 다육이를 사랑한다. 어머닌 내 다육이들을 보고 귀엽지만 나무나 꽃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어려워하신다. 그러나 난 물이 희박한 환경에도 자기 몸을 쭈그리며 생존해나가는 다육이나 선인장의 끈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키운다. 관리하게 쉬운 것도 있지만 그만큼 느릿느릿 성장하는 게 매우 좋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아름다움의 기준도 개개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일상에서 많이 발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2. 아름다움의 개념은 긍정적인 단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먼저 생각해보자. 높이 쭉쭉 뻗은 소나무들하고 여기저기 굽은 난쟁이 소나무들이 있다. 그리고 화려하며 큼지막한 꽃들이 있고 반면에 조그맣고 수수한 색의 꽃들이 그 옆에 있다고 생각해보길 권한다. 어떤 게 더 아름답게 들리는가? 아마 대부분은 전자를 택할 수 있다. 글은 대체적으로 시각적 감각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의미를 띤 수많은 낱말들로 이루어진 언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유적 비유적으로 빗대지 않는 이상은 감동을 주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럼 이제 아래를 보라.

(좌) 곧은 소나무 숲 (우) 굽은 소나무 숲 | 출처:픽사 베이

다른 모습을 한 두 소나무 숲을 잘 감상했다면 이번엔 꽃을 비교해보며 생각해보자.

(좌) 달리아 (우) 방울꽃 | 출처:픽사 베이

글로만 읽고 듣는 것보다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가? 모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위의 예시뿐 만 아니라 일상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글이나 단어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각을 통해 몸소 느껴지는 비중이 매우 큼을 실감하게 된다.


3.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시대를 따라 그 폭이 넓어진다.

시대를 걸쳐 새로운 것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름다움은 오히려 본연의 수준을 추구하는 추세임을 많이 느낀다. 아름다움이 있는 그대로의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기준에 대한 경계가 매우 모호해짐을 느끼는데. 훗날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들에 매력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게 우리는 논리적 아름다움을 지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은 머리가 아닌 가슴 한편으로부터 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