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 01
제가 서른이 된 지 4개월 하고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요즘 30살의 고찰, 서른 보고서 등등의 에세이가 참 유행이더라고요. 관심이 있는 듯 없는 듯 흘겨보기 만 했던 저도 인정하는 바가 있답니다. 30살이 된다는 것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과정이자 본인이 20대에 경험했던 것들과 깨우친 지혜를 종합해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정립하는 변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자 삶의 결실이 어느 정도 나타나는 것을 세간에서도 이미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서른이라는 키워드로 무수한 영화, 소설, 수필 에세이들이 매해 나오고 항상 세대 간의 관심사가 되곤 하니까요. 젊음의 상징이자 향수의 서른.
저도 서른이 다 가기 전에 제가 느낀 점들을 풀어나가려 합니다.
1번. 제목이 좀 독특합니다. 서른이 되면서 얻은 삶의 지혜가 장애인에 대한 거라고요?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하실 수 있습니다. 네,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글을 첫 시작으로 선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부모님이 저를 임신하셨을 때 그 사실을 모르셨고 제가 나올 때에도 1-2년은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장애가 있다는 걸 판정받은 때가 아마 옹알이를 이미 시작을 하고 슬슬 엄마 아빠 등 간단한 말을 할 때로 넘어갈 시기였을 거예요. 어느 날 딸아이가 엄마 아빠라고 말을 아직 안 하고 부모님 속이 타들어갈 때 명성이 높다던 서울대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았답니다.
결과는 세상에, 귀가 안 들린답니다. 어렵게 낳아 애지중지 키운 딸아이가 귀가 안 들린다는 말에 부모님은 아 세상이 망했구나. 좀 나쁜 말로 하자면 다리 밑에 저를 버리고 가야 하나 하는 심정이었다고 하셨어요. 요즘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지만 80 90년대에는 이게 빈번히 일어날 정도였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청각장애인이 다니는 특수학교 졸업생 선배님 중에 저보다 훨씬 오래전에 태어나신 대 선배님들은 부모가 다 안 계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하지만 이게 이 사람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잘 자랐다, 못 자랐다 할 수 있는 척도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누군지 잘 모르시고 고아원에서 자라나 특수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들어간 선배님들도 전부는 아니시지만 진짜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성숙하고 사람됨됨이가 좋으신 분도 계십니다. 어쩌면 세상의 편견을 깨어부수는 일입니다. 자라온 배경과 무관하게 사람됨됨이가 좋고 인성이 좋으신 선배님들은 결혼을 하셔서 비장애인 자녀들을 두시고 그 자녀들은 아주 잘 자란 경우도 실제로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환경이나 겉모습을 보고 함부로 욕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바닥에 자란 사람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 많은 깨우침을 얻고 후천적 인격의 성숙함을 이룬 경우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어디서든 존재합니다. 부유함이 올바른 인격의 무조건 적인 척도가 되지 않더라고요.
저도 한때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한창 어린이들의 자아가 한층 자라날 시기에 아주 심한 괴롭힘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아주 엄하셨습니다. 내가 장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장애를 갖고 난 이상 딸아이의 세상은 암흑일 뿐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는지 저에게 훨씬 강도가 높은 교육과 한 치 없는 완벽함을 요구하셨기에 저는 틱 증상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게 요즘은 틱 장애라고 불러요. 저는 음성 틱 하고 행동 틱이 있었습니다. 저의 틱은 진짜 기가 막히게도 욕설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혼내시고 답답하니 제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고 때리는 등 행동으로 보여주는 체벌과 엄청난 욕설을 퍼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솔직히 안 들리기 때문에 말로는 안 통하니 행동으로 이렇게 혼내야 사람이 된다라는 체벌방식으로 인해 일부 청각장애인들 인격 형성에 악영향을 끼친 사회적 폐헤가 지금 청각장애인들을 만나다 보면 몸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입모양을 보고 알아들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시발 시발 병신 같은 x이라고 외치는 걸 제가 귀가 안 들리는 제가 너무 찰떡같이 따라 하는 거였습니다. 행동틱으로는 뻐큐가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참 웃픕니다. 제 틱 증상 때문에 부모님이 많은 충격을 드셔서 더더욱 먼지 나게 저를 체벌하셨지만 다행히 지금 저는 눈 깜빡거림과 찡그림 틱 증상만 있습니다. 어릴 때 미국으로 유학 가서 부모님이랑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의 가치관을 바뀌 주신 저의 미국 부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랑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이 글을 우연히 본다면 이미 잘 아실 거예요. 이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제 틱증상이 너무 심해지고 친구들과 관계에서도 많은 불이익이 있었습니다. 저의 틱도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 불편하다고 담임선생님께 직접 자진해서 저랑 반을 바꿔달라고 요청을 한 친구도 있었어요. 이건...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제 모교 선생님께서 책을 출판하셔서 제가 축하의 의미로 책을 직접 사서 읽었는데 하필 그 책이 학교에서 특수교육 하면서 느낀 후기였어요. 선생님께서 그 책에다가 써 놓으셨더라고요. 청각장애인 학생이 있었는데 틱장애도 있어서 반 아이들 중 그 학우를 불편해해서 당당하게 선생님께 반을 교체해 달라 했다고 쓴 글을 봤는데 이건 딱 저 이야기이지 뭡니까. 장애인 학생 이름도 살짝 언급했기 때문에 눈치챘어요. 아이고! 하지만 서른이 된 지금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그때 사회적 배경하고 부모님의 성향에 따른 교육방식, 스트레스로 인해 발현된 틱 장애와 교우관계의 어려움 이 모든 게 맞물립니다. 가해자는 과연 누굴까요? 이 사회의 편견이 아닐까요?
저도 이 이야기를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의 배경의 일부를 드러낸다는 것은 어쩌면 가족일원을 욕보이는 것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약점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이 세상에 있는 누군가가 겪을지 모르는 것이고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부모님께선 저희 부모님이 겪었던 고통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무거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 감춰져 지는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용기를 내어 경험담을 나눠야 사람들이 알게 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제가 서른이 되기 전에 저를 불러서 따뜻한 커피를 사주시고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내가 너를 많이 때렸고 욕을 하고 분노를 했었지? 엄마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그때 당시에는 엄마는 청각장애에 대해 잘 몰랐고 엄마가 귀가 안 들려본 경험이 없어서 귀가 안 들린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몰랐고 딸아이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온 세상의 조롱과 비난을 받을 까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너를 빈틈없이 완벽한 아이로 키우면 엄마가 죽어서 하늘나라로 갔을 때 네가 사람답게 잘 살 거라고 착각을 했었다. 그리고 네 틱 증상은 내가 너를 혼내면 멈출 줄 알았는데 더 강도가 심해지더라. 요즘 유튜브에 틱장애 아동에 대한 채널이 많이 나오는데 보면 볼수록 이 엄마가 너무 무지했음을 느꼈다. 이게 엄마가 살아보니 단단히 나만의 착각이었고 너는 안 들려도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더라. 너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고 엄마가 너무 이기적으로 무식하게 행동한 것에 너한테 진심으로 사과할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본인의 자존심과 권위를 완전히 내려놓으셨고 저는 어머니를 말없이 안아주었습니다. "엄마, 사과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그때 깨닫게 되더라고요. 아, 나는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일찍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습니다. 귀가 안 들린 채로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큰일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놀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비난하고 흉을 보면서 괜히 괴롭히려고 하는 나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이용하려 드는 사람을 만날 수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저를 온전히 바라봐주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큰일이 아니지만 그만큼 사람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하고 본인 스스로가 올바른 인격과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님은 장애인 자녀가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분별력을 키워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가정교육이 안되어도 본인이 분별력을 깨우치도록 노력을 하면 분명히 얻을 수 있습니다. 환경은 후천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귀가 안 들려서 생활이 불편하다고요? 전화가 안된다고요? 걱정 마세요.
요즘은 속기사님을 고용해서 문자 통역을 받을 수 있고 수어를 할 줄 안다면 수어통역센터에 가서 수어통역 지원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전화는 귀가 안 들리니 문자로 회신 달라고 스마트폰에 부재중 메시지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손말이음센터 PC버전을 이용해서 문자 중개, 수어 중개, 이중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을 문자로 변환시켜 주는 통신기기를 무료로 대여해 줍니다. 판교청년센터 등등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청년센터에 미리 요청을 드리면 속기사님을 섭외해 주거나 수어통역사를 섭외해 주십니다. 사람들과 대화가 잘 안 되면 종이와 펜을 꺼내 필담을 할 수 있습니다. 수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수어를 배우면 수어로 소통하면 됩니다.
해결책은 매우 많습니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4차 산업 시대에 불평을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새로운 기술은 얼마든지 개발됩니다. 청각장애인 본인이 자존심을 하나 내려놓아야 하고 비장애인들도 고집을 하나 내려놓아야 합니다. 저는 귀가 안 들린다고 받는 손가락질과 비난으로 인한 자존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제 인격과 품위는 저 본인만이 지킬 수 있기에 누구도 나 자신을 상처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외출해서 어딘가를 가면 "제가 귀가 안 들려서 괜찮으시면 종이에 글을 써 주실 수 있을까요?" 혹은 귀를 가리키면서 손을 휘휘 젓기도 하고 입모양으로 소통을 해야 하면 입모양을 볼 수 있는지 양해를 구합니다. 제가 인공와우 수술을 했지만 인공와우 수술을 해서 열심히 말을 배우고 완벽하게 들으려고 연습을 했지만 이게 제 삶의 전부를 보증해 주지 않습니다.
소리를 듣는 것은 좋습니다. 말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건 청각장애인들에겐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입니다. 인공와우 수술을 해도 수어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어만 배우면 분명히 수어에만 의존하는 불편함이 따릅니다. 인공와우 수술을 해도 듣고 말을 하려고 인간힘을 쓰는 것도 한계에 다다릅니다. 수어에만 집중하고 한글 문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책이나 논문 등 어려운 문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고급지식을 얻는 데 한계가 생깁니다. 저는 인공와우 수술을 해서 최대한 잘 듣고 말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지금은 한국수어도 배워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글과 문법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한글로 된 여러 가지 다양한 책들과 영어로 된 영문 원서를 짬짬이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의 삶에 많은 유익이 되고 있어요.
살다 보면 장애는 신체적인 불편함에 불과합니다. 정서적인 힘을 키우는 것은 본인에게 달려있습니다. 그 장애를 이해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올바른 인격 형성, 올바른 가치관의 형성과 자립 능력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단 사실을 저는 서른이 되는 해 "제 삶의 지혜를 다룬 책"에 한 장 집어넣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글이 비슷한 고민이나 경험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