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 02
서른이 되면서 정리하는 2번. 가정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가정이야 형태가 매우 다양하지만 저는 완벽한 부모님이 없다 로 모든 내용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저도 그렇고 어린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에 그려지는 부모님은 좋은 부모와 계모(종종 비현실적으로 많이 다루는) 두 가지 유형을 많이 소개했어요. 저도 어릴 때는 어린 마음에 엄마아빠는 좋은 사람이다, 부모가 되는 거는 동화처럼 완벽하고 뭔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거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참, 마음이 꽃밭이었네요.
세상은 왜 이런 걸 가르쳐주지 않았을까요? 제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친구들 엄마아빠도 만나 뵈어서 인사드리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다 보면 가정의 다양함에 놀라곤 했어요. 이걸 엄마아빠한테 00이 부모님은 왜 그래요? 하면 황급하게 사정이 있어서 그러겠지.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둘러대셨지만 이상했어요. 요즘은 가정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니까 한부모님도 계시고 이혼가정, 그다지 그럭저럭 한 가정 등등을 비판하지 않고 그냥 인정하고 넘기려는 추세지만 그때는 아니었어요.
엄마가 안 보이네, 아빠가 왜 없어? 아저씨 아줌마는 왜 싸우는 거야? 이런 말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저는 몰랐으니까요. 친구가 화가 나서 저에게 달려와 자길 욕하냐고 한바탕 쌈박질하고. 지금은 어른이 되어서 깨달은 저는 그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요. 이런 문제는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저를 낳으시고 부모님은 서로 대화하거나 돌보실 여유가 없었어요. 옛날에는 사람들이 선을 보거나 중매로 결혼을 하기도 하고 연애해서 결혼을 해도 커플상담 이런 게 없었대요. 그냥 좋으면 연애 1-2년 하다가 바로 결혼하시거나 가족이 소개해주어 결혼하신 분이 꽤 많으셨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불타는 연애를 하고 고속 결혼을 하셨습니다. 가정을 이루니 이제 여러 가지 집중을 해야 하는데 저를 키우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는 장애를 가진 딸아이를 생각하시고 아주 큰 결심 하셨습니다. 이건 추후에 한번 더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제가 초등학생이 되니 잦은 말다툼, 어린 제가 봐도 별거 아닌 것 같은 그런 사소한 싸움, 내 입장은 이렇다 저렇다 완고히 버티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재산 다 깡그리 잃은 채 부랴부랴 부산으로 피난 오신 저희 친할머니 할아버지가 낳으신 귀한 7남매 막내아들 우리 아버지. 지금은 자수성가를 하셔서 꽤 안락한 수도권 아파트에 살고 계시고 사장님이시지만 자수성가의 결실은 매우 완고한 고집으로 남았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알뜰살뜰 돈관리 잘하셨지요. 환상의 콤비일 줄 알았는데! 고집으로 인해 많은 돈을 벌지만 고집으로 인해 가정을 잃는다는 말이 역설적이네요. 그리고 기준치가 아주 높아지셨는지 그림을 그린다 하고 아버지랑 똑 닮아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큰딸은 걱정되셨는지 못마땅했는지, 그냥 주는 돈 다 받아먹고 편하게 살면 되는데 고생을 사서 하는 딸아이랑 갈등은 매우 컸습니다.
대화가 안 되시는 상황이 매우 답답하신 어머니와 아주 완고한 강철고집의 아버지 사이를 보노라면 저도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자수성가를 하신 분들이 두 가지 유형이 있으신 것 같아요. 인품이 좋고 제때 굽이 숙일 줄 아는 사람하고 뛰어나고 능력이 있으나 과도한 자신감이 고집으로 변질된 사람 두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자수성가라고 다 좋은 건 아닌가 봅니다. 초등학교 때에 저희 아버지는 바깥에선 아주 좋으신 분이셨지만 완고하심은 가족을 힘들게 했습니다. 어린 저는 그때 무얼 했을까요?
바깥으로 뛰쳐나와 선생님! 선생님! 친구들아! 제 사정을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우리 아빠는 내 말을 안 들어줘. 나보고 오히려 말 안 듣는 애라고 하는데 난 다른 친구들 보면 이게 맞는 거 같아. 한 문장을 마치고 나면 이 사실은 아버지 귀에 분명히 들어갑니다. 엄마는 여보 하지 말라고 뜯어말려도 아버지는 부글부글 바깥사람에게는 세상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좋아 보이시는 아빠가 설마 너를 이렇게 했겠어?
저만 거짓말쟁이, 부모 말을 안 듣는 나쁜 아이, 이상하니 피하고 싶은 아이라는 낙인이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매우 찍혔습니다. 저는 이후로 입을 완전히 닫았습니다. 믿을 놈 하나도 없구나! 부모님은 저를 결국 미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하면 좋을 것 같다 결정을 하시고 저를 미국으로 보내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엉엉 울면서 부모 손을 따라 한국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 갔지만 이게 상황을 뒤집을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제 관점이 바뀌기 시작한 거예요.
한국에선 거짓말쟁이 나쁜 아이였던 제가 미국에 가니 어떻게 됐을까요? 이렇게 하면 가정폭력이다, 학대다, 친구들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No Touch), 사람을 존중해라, 가정도 존중해야 한다를 배우고 자란 거예요. 저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미국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신고하는 방법도 친히 알려줍니다. 미국에선 연인 간에서도 데이트폭력이 존재한다고 일찍이 중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칩니다. 학생들도 연애하고 할 건 다 하니깐 가르쳐야죠! 사랑하는 사람은 소중히 여겨야 하는 존재가 맞습니다.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한국이 "정"은 최고라고, 부모 자식 간의 정은 한국을 이길 나라가 없지만 가깝고 친밀할수록 상처 주는 관계가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다양한 가정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홀로 자식을 키우시거나 어머니께서 홀로 키우시는 가정도 있고 화목한 가정, 뭔가 으스스한 가정도 있습니다. 제가 아주 기억에 남는 가정은 아주 극단적인 종교단체(*몬교에서 파생된 종교라 뭐 라카드라)라는 친구의 피셜을 곁들인 친구의 부모님은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그 친구는 혼자서 미국 동부로 건너와 일하고 스스로 돈 모아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어요. 얼마나 싹싹하고 좋은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말을 안 했다면 평범한 부모 밑에서 자랐구나 생각할 뻔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는 중학교 때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 엄마가 열심히 사시는 걸 보고 제가 "야 너네 엄마 최고다! 우리 엄마 아빠는 둘이서 힘을 합쳐야 해내는데 너 엄마는 원더우먼이야" 하니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울 엄마 최고라고요. 한국의 정도 좋지만 가끔은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부모와 자녀를 타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타인이라면 쉽게 끊고 절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완벽하게 절교하고 타인으로 분리한 사람을 제가 만난 적이 없어요. 타인이라 치부해도 마음으론 속앓이 하고 가까운 친구라고 저한테 와서 털어놓기도 하는데.. 하지만 분리된 인격과 자아라고 말할 순 있습니다. 저랑 부모님은 사람 대 사람이에요.
가족의 형태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 상당히 다양했어요. 동화 속의 엄마아빠는 이미 깨부순 지 오래입니다. 친구들을 만나다 보면 이 친구는 이런 환경일 거다라는 편견을 깨는 경험도 몇 번을 하다 보니 충분히 설득이 됩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구나. 나도 부모가 되면 분명 그럴 수 있겠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실제로 부모 중 한 분이 조폭이셨던 친구도 몇 명 만나게 되었어요. 일본도라는 것을 아주 익숙하듯 언급하는 친구란.. 국내/해외 조폭들은 지금 일반인으로 살고 있지만 그 분위기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어요) 동심이 너무 깨져서 죄송합니다. 세상이 참 이렇게 넓네요.
저는 어머니랑 지금은 관계가 좋아졌지만 아버지랑은 아직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권위를 가질수록 자수성가를 하셔서 쌓아놓으신 곳간이 풍족할수록 주변을 둘러보기 쉽지 않기에 모든 말이 잔소리로 들리시나 봅니다. 아무리 공을 들이고 쌓아놓아도 부모 자식 관계는 완전히 정지 상태가 되는 거예요. 저랑 아버지는 정지 상태입니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지만 아버지는 엄청 서운해하십니다. 저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부모에 대한 이상과 기준은 진짜 있을까요? 모르겠네요! 저는 그저 필요하면 스스로 개선을 하면서 다 함께 잘 살고 싶어 졌어요. 그게 좋은 거 아닐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은 아직도 가족의 이상상에 사람들이 많이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가족은 못된 가족이다 이 가족은 좋은 가족이다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 게 있을지 모르겠어요. 중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부관계 1등 세대갈등 1등 부모자녀 갈등 1등인 한국. 이 오명을 벗으려면 본인이 불온전함을 받아들이고 상대방도 그렇게 보아야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저라도 제가 잘나고 완벽한 인간인데 누가 저를 보고 뭐라 그러네! 자아도취하면 그냥 모든 게 다 잔소리로 들리고 짜증이 날 것 같으니까요. 저희 부모님이 결국 이혼하신걸 보니 실감이 납니다. 나는 끊임없이 문제점을 고민해 보고 개선을 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존재라는 것을요.
지금은 제가 예비남편이랑 결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혼가정하고 화목한 가정이 서로 만나서 결혼을 준비하게 되면 생기는 문제가 무엇일까요? 이 대한민국에서 이혼가정의 결혼은요, 이혼가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혼했지만 관례에 따라 전 남편이나 부인을 함께 자식의 결혼식에 대동하는걸 아주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는 거 같습니다. 이게 참, 저한텐 매우 난감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받으신 상처가 너무 크셔서 부들부들 거리시고 저도 아버지는 어려우니 말이에요. 그래서 결혼을 준비하면서 예비남편과 많이 싸웠습니다.
알게 모르게 저희 어머니는 많은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떠안으시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오빠는 이걸 이해하기 어렵고, 저희 아버지도 전처랑 함께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큰 딸은 여전히 못마땅하시고.. 많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다른 타인의 환경을 대할 때에 많은 실수를 범하곤 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두 집안이 만나 한가정을 이루는 것이니 순탄하게 잘 진행하는 게 핵심인데, 자신의 불온전함과 치부를 드러낼 용기 있는 자가 많이 계실까요? 저희는 서로의 가정을 오픈마인드로 알아가되 걱정되거나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그냥 해탈했네요. 그냥 잘 살고 싶었어요.
모든 부모는 완벽하지 않다를 기본바탕으로 깔고 결혼 준비를 해 나가니 요즘은 한결 편합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길 바라면서 살면 힘들어진다는 어느 나이 지긋한 노부부의 말씀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저도 완벽한 미혼 싱글이 되려고 노력할수록 더 쓰라린 패배감과 자격지심을 맛보았기 때문에 일단 수긍합니다. 저도 부부가 되어서 자식을 낳고 살다 보면 이 글에 추가적인 결론을 낼 수 있겠죠? 그때 한번 이게 맞더라 아닌 거 같다고 30년 후 한번 더 검토를 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