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관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건,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온다.
연애한 지 3년이 다 되어갈 즈음 나는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함께 서울 데이트를 하던 중 화장실이 급해졌는데 주변에 갈 곳이 없어 몹시 당황스러웠다. 하필 추운 겨울이라 더 고역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화장실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오빠가 좋은 생각이 났다며 나를 불러 세웠다. 자기 집이 근처에 있으니 볼일도 보고 잠깐 쉬어가자고 했다. 몸도 녹이고 가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마 부모님은 집에 안 계실 거라 괜찮다며 나를 계속 안심시켰다. 평소 부모님은 실내 체육관에 가거나 동네 사람들과 모임이 많아 집에 거의 없다는 말을 오빠는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반복했다. 그때 나는 그의 행동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부모님을 만나도 괜찮은데 오빠는 자기 가족을 보여주는 게 불편한 걸까?”
내 눈에 오빠는 조금 특이해 보였다. 나에게는 남자친구의 가족을 만나는 일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 그래서 그 말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오빠 뒤를 따라 별생각 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집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발을 쉽게 떼지 못하던 오빠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문을 열자마자 상황을 알아차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당황했지만 오빠의 부모님 역시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오빠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이 만남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어붙은 공기처럼 그대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나에게 이 상황은 크게 낯설지 않았다. 나는 정중하게 웃으며 남자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000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 순간을 친구네 집에 놀러 와 부모님을 만난 정도로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오빠의 부모님은 꽤 뻣뻣한 표정이었다. “어… 그래” 하고 작게 중얼거리며 삐걱거리는 모습은 마치 아직 연구 단계에 있는 휴머노이드 같았다. 어색함을 풀어보겠다고 스몰토크를 꺼냈지만 오히려 말이 꼬였다. 그제야 알았다. 지금은 무언가를 더 보태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편이 낫겠다는 걸.
그 판단이 서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잽싸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볼일은 가능한 한 신속하고 깔끔하게 마쳤다. 문을 열 때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손에 힘을 조절해 고리를 돌리고 천천히 문을 밀었다.
오빠가 소파에 앉아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공기 위를 공중보행하듯 빠르게 소파로 이동해 그대로 착석했다. 이 순간만큼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가 되는 편이 안전했다.
바로 옆에는 오빠 엄마가 앉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살짝 굴려 그쪽을 훔쳐봤다. 그녀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텔레비전을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 속 사람들은 웃고 있었지만 거실은 잠긴 것처럼 조용했다.
오빠 아빠는 물병이 어디 갔냐며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정적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리 엄마 왜 이렇게 굳었어.”
눈치 없이 오빠가 여자 둘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오빠가 천사처럼 보였다. 그의 등장이 어색함을 단번에 깨뜨렸기 때문이다. 오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쪽으로 등을 내주며 자리를 만들었다. 말 몇 마디가 오가는 사이 공기는 아주 조금 풀렸다.
오 분쯤 지났을까.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꼈다. 이 집에서 이 상황에서 그만하면 꽤 큰 진척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상자 속에서 깔깔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가족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가 작별 인사를 하기 직전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으로 들어갔던 아빠는 작별 인사를 할 때 문을 살짝 열고 “잘 가라”며 배웅해 줬다. 그날 오빠는 가족들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며 웃다 자빠질 뻔했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상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오빠는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연애 중에 부모를 만나는 일을 결혼과 강하게 연결해 생각했고 여자친구의 부모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그날 집에서 터뜨린 그의 웃음이 더 낯설게 느껴졌던 거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한국에서는 보통 결혼을 앞둔 시점에야 가족에게 연인을 소개한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나는 기출문제를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오빠 가족이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연인을 가족에게 소개하고 함께 어울리는 일이 일상에 가깝다. 나에게 가족을 만난다는 건 결혼을 암시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삶의 일부를 나누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괜찮을 거라 여겼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한국 문화를 몸으로 겪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고 오빠 가족은 분명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날의 어색함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오빠가 결국 나에게 그의 가족을 소개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내가 먼저 그를 우리 가족에게 소개했고 그 모습을 보고 오빠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일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연애를 하면서 중요한 사람을 가족에게 보여주는 건 내 기준에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일이었다.
더 나아가 오빠는 결혼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양가의 결합으로 여겼다. 상대방이 자기 부모를 좋아하지 않으면 결혼도 어렵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문화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내가 가족을 대하는 방식이 익숙했을 리는 없었다.
내가 가족에게 그를 소개했을 때 부모 반응은 좋지 않았다.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왜 굳이 소개하느냐는 눈치였다. 말과 얼굴 표정은 달랐다. 못마땅해하면서도 끝내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게 딸을 대하는 부모 마음이었을까.
오빠가 내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데이트는 자연스럽게 오빠와 엄마를 이어주는 다리가 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보통은 결혼하기도 전에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부모를 만날 계기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리를 마련하더라도 아직 결혼할 사이는 아니라는 이유로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트가 끝나면 오빠는 늘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엄마 눈도장을 찍었다. 당시 내 생각은 단순했다. 데이트를 했다고 해서 꼭 함께 귀가해야 하는 건 아니었고 혼자서도 충분히 집에 갈 수 있다고 여겼다. 동시에 오빠를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우리 집과 오빠 집은 지하철로만 세 시간이 걸렸고 중간에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거리였다. 거리와 상황이 어땠든 오빠는 한결같았다.
집 앞까지 데려다줄 때마다 엄마와 마주치긴 했지만 오빠는 그 문턱을 쉽게 넘지 못했다. 그 선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를 찾아왔다. 시간이 쌓였고 그만큼 얼굴도 익숙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 입에서 “저 아이가 너 남자친구니?”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이 모든 걸 바꾼 건 아니었다. “설마 내 딸이랑 결혼하진 않겠지”라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오빠를 향한 경계심이 호감으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어느 날 상황은 내가 가늠하지 못한 쪽으로 서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내 부모님은 내가 오빠와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고 오빠 부모님은 내가 다녀간 이후부터 오빠에게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오빠 집을 방문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오빠는 이 흐름을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내 엄마를 보는 순간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그가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상황을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벌어진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서로 가족에게 인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이미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어쩐지 그날 이후 내 엄마 아빠 얼굴에는 근심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속사정은 우리만 알고 있었고 양쪽 부모님은 아무것도 모른 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위에 서 있었다. 밟아야 터지는 게 지뢰지만 어디가 안전한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험했다. 만약 한국 사람끼리 연애하고 결혼했다면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었을 패턴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미국 문화’라는 지뢰를 이미 땅속에 묻어둔 상태였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무슨 일이 터질지.
땅따먹기와 지뢰 찾기를 하나로 합친 결혼 준비 게임이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