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구름에서 떨어진 날

11화

by 명형인

그날 이후, 연애는 끝나고 준비가 시작되었다.

미래를 그리며 서로 함께 걸어가고 싶단 마음이 커질수록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렸다. 사랑을 할 땐 오로지 감정에 충실했나 보다.

나랑 그 이는 천사처럼 면사포를 몸에 걸친 채로 구름 위를 뛰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닥이 푹 꺼져 지상으로 뚝 떨어져 버린 신세 같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털가죽을 몸에 두른 채 손에 돌도끼를 들고 있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걸 설명할 수 있는 글자가 하나 있었다.



“결혼 준비”



남녀가 밀림 속으로 떨어져 으르렁 거리는 정체불명의 동물들과 사투하는 과정이 자꾸 떠올랐다. 이 게임은 감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나랑 오빠는 세 마리의 악랄한 짐승들을 피할 수 없었고 살기 위해 싸우는 용맹한 전사인 셈이다. 격파해야 할 괴물들은 — 집, 돈, 결혼 허락. 결혼을 허락받는 건 내가 개인적으로 넣고 싶어서 추가했다. 집과 돈 문제 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부모님이 결혼을 기꺼워하지 않는다면 신혼 집과 돈 문제는 무력해진다는 사실을 말이야.

최종 보스는 “허락의 관문”인 거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앞두고 이와 같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을 지낸 나는 엄마 아빠가 제일 어려웠다. 부모님의 영향력은 여기에선 매우 막강했는데, 손을 까딱하면 모든 대소사들이 단번에 정리가 될 것 같은 분위기와 함께 권위적인 기운을 풍겼기 때문이다. 나에겐 너무 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의를 가질 법한데 부모님 앞에서는 아무도 의견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내 남자친구도 그 많은 자식들 중 하나였다. 필요하면 엄마 아빠랑 얼마든지 부딪히고 필요한 말은 꼭 하는 나랑 정반대였다. 그러니 내 눈에는 당연히 그 남자가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었지.



답답한 마음에 그에게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오빠, 결혼은 우리가 하는 거잖아. 그런데 부모님을 꼭 설득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당연히 허락을 받아야지. 너희 부모님이 아직 못마땅해하는데 그럼 어떡해? 부모 없이 식을 올릴 거야?”


“그럼! 부모님이 싫어하면 단 둘이서 결혼식을 올리면 되지. 친구는 친한 애들만 초대해서 작은 파티를 열자.”


“휴… 이게 아닌데.”


나와 오빠는 의견이 자꾸 엇갈렸다. 이야기하는 내내 계속 한숨을 푹푹 쉬는 오빠의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왜 이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할까?

내가 그를 우울한 사람이라고 착각했을 때 오빠는 나를 머릿속에 꽃밭이 가득한 사람으로 오해했던 것 같았다. 이게 다 문화 차이란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오빠가 부모 허락 없이 결혼을 추진하려 했던 나를 극구 말린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서 손해를 볼 수 있는 행동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꼬투리 잡힐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었다. 한번 나쁜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열심히 퍼 나르기 마련이라 작은 이야기가 크게 와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단순히 나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게 문제라는 설명을 들었다. 직장과 대인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지혜라는 게 요점이었다. 오빠는 내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길 바랬다. 그의 희망사항과 달리 내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셀럽이나 유명인사가 아닌 이상 소문의 파급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솔직히 연예인 아닌데 내 이야기를 가지고 누구 코에 붙이냐는 게 내 입장이었다. 여기선 강력한 법 제도도 한몫을 했었다. 미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쁜 생각이 들어도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밖으로는 ‘그럴 수 있지’라는 말만 꺼냈다. 나는 자유로웠다.

말이 안 통할 경우 법원에서 만나면 그만이지. 이와 같은 마인드로 살아왔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신경 써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오빠가 뭘 걱정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한국에서 딱 한번 소문으로 인해 고생한 적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거짓정보를 퍼뜨린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전부 다 근거가 없는 풍문이었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문을 퍼뜨린 사람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사람들은 종종 당사자 보다 불특정 다수의 말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 상황이 딱 그랬다.


여러 번 경고를 줬음에도 험담은 계속 이어졌다. 오빠한테도 영향이 가서 사람들이 그에게 대놓고 나에 대한 나쁜 말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법으로 소송을 진행했다. 상대방의 죄질은 법적으로 인정되었고 나는 판결을 통해 피해를 회복할 수 있었다. 결혼식은 이야기가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새 신부를 보며 수군거리는 상황은 좀처럼 상상이 되질 않았다. 결혼은 개인의 큰 행사이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거나 피해를 끼치는 행위랑은 거리가 멀 어 보였다. 경사를 가지고 나쁘게 말한다 한들 근거 없이 개인의 생각을 섞은 소문에 불과하기 때문에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오빠가 소문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누군가가 악의를 갖고 만행을 저지른다면 당연히 법 대로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법이 미국만큼 강하진 않지만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승산이 있었다. 직장에서는 나쁜 이야기가 들려도 일에 집중하면서 월급을 따박따박 받으면 그만이었다. 상사가 너무 힘들게 하면 그 직장은 나에게 적합한 일 터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이다.



내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았더니 오빠는 도리어 내가 너무 앞서갔다며 안절부절못했다.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해 내가 너무 과하게 반응한다며 불편함을 내비쳤다. 소문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외적인 부분에서 오는 거란다. 지금도 오빠가 어떤 의미로 말한 건지는 모르겠다. 남의 시선이 중요했던 걸까?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걸 억지로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힘을 쓸수록 상황이 꼬였던 경험을 했기 때문에 흘러가는 대로 두는 편이 좋았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내 아빠가 결혼을 완강히 반대한다는 점이다. 본인이 생각한 건 끝까지 굽히지 않는 성격이라, 잘못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식을 올리지 못할까 두려웠다. 결혼을 반대한 건 내 가족뿐이었다. 오빠의 가족들은 오히려 나를 환영했다.



나중에야 우리가 결혼 허락을 받았을 땐 주변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경제적으로 닥친 어려움 덕분에 으리으리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원했던 부모님은 고집을 완전히 꺾었다. 이대로라면 내 딸이 더 나은 조건의 남자를 만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욕심을 내려놓은 걸로 추측하고 있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나와 오빠의 결혼 준비 과정은 좀 독특했다. 내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진 덕택에 바위 같이 단단했던 부모님은 많은 것을 내려놓으며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보통은 좋은 날 자식들을 결혼시키는데 말이다.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어려움 속에서 아주 순조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이 훨씬 앞서가는 기분이었다.



어쩌다 내쳐지듯이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땡큐였다.
부모님은 가족일 뿐, 나에겐 결정을 대신해 주거나 삶의 모든 부분을 공유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람은 확실히 내 쪽으로 불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예식장 근처에 얼씬하지 못하는 것보단 나아서 안도감이 들었다.



부모님은 나를 따로 불러서 결혼할 때 형식적인 부모 역할을 하는 대신 하객은 부르지 않을 거고, 나를 금전적으로 도우지 않을 거라는 경고를 했다. 순간 ‘네가 예뻐서 결혼을 허락하는 게 아니란다’란 말로 들렸다. 상황을 잠시 지나고 다시 들여다보니 ‘나는 네가 데리고 온 남자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돌려서 표현하는 소심한 심술이었던 것 같다. 그땐 왜 그랬을까.

지금은 내 부모님이 오빠를 아주 좋아하고 친아들처럼 이뻐한다. 결국엔 좋아할 거면서 첫인상은 왜 그리 차가웠을까 모르겠다.



여기서 내가 갖고 있는 문화적인 배경과 가치관이 빛을 보게 되었다.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물과 기름 같이 느껴졌던 문화 차이는 오히려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부싯돌 두 개를 딱 딱 부딪혀서 불을 피우는 상상을 해보자.

우리는 서로에게 부싯돌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나랑 오빠는 서로 부딪힐 땐 당장은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그 무엇보다 더 강렬한 불꽃을 함께 피워냈다.

다만, 그땐 방법을 몰라서 불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 서로 다른 언어로 자막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서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수록

내 침착함은 이상하게도 다른 의미로 읽히기 일쑤였다.

불씨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채

우리는 서로 손 잡고, 밖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한 발씩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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