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진지함이 쌓여 무거워지는 순간 우리가 나누는 모든 대화들은 판단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오빠는 책임감이 무거웠기에 사소한 말들도 항상 계산기를 두드리고 봤다. 대화할 때엔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상황과 상태를 살펴야 한다. 같은 말을 해도 해석이나 감정이 어긋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가벼이 넘어갔는지 지금도 도통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어긋남은 성격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읽고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 대화는 감정의 교환이고, 어떤 사람에게 대화는 상황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그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때의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집 문제는 제일 먼저 예비부부의 속을 썩이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우리도 피할 수 없었다. 그때 당시 내 부모님은 오빠가 적어도 인서울 또는 서울과 1시간 내외로 근접한 경기도 지역에서 집을 구하길 원했다. 귀하게 키운 딸아이를 고생시키기 싫다는 마음이 앞서간 걸까? 부모님의 선의는 우리를 오히려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다.
경기도 변두리에 오래된 아파트를 갖고 있었던 오빠는 내 아빠가 내민 조건에 망설였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도 장인어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공감했지만 자기 능력 밖의 문제인 것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갖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도 도무지 나오지 않는 견적을 어떡하겠는가. 집 문제는 우리 사이를 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아빠의 바람은 단순했고, 그만큼 현실과의 거리는 멀었다. 오빠는 밀려오는 답답함과 막막한 심정에 거의 울상이었다. 집을 팔 경우 가격의 절반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대출을 받아도 턱없는 금액이었기에 그랬다.
나는 오빠를 돕고 싶어서 내 부모의 말을 너무 담아 듣지 말라고 기운을 북돋았다. 지금 당장은 엄마 아빠가 그렇게 말해도 우리가 이미 힘들다는 상황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내가 오랫동안 부모님을 봐왔던 패턴을 수집한 결과로 말하자면, 알면서도 괜히 싫은 소리를 먼저 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오빠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면 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뭔가 오빠 마음속에 있는 불을 지폈나 보다.
어느 토요일은 내가 꿀 같은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나 보니 부동산 팸플릿이 책상에 쌓여있었다. 이게 뭐냐고 오빠한테 물어봤는데 아침 일찍 내 집에 들어와서 쉬다가 마음이 답답해 산책 갔다 오는 길에 부동산 몇 군데 들러서 가져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날 저녁, 오빠가 나한테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부르길래 커피를 들고 갔다.
탁상 앞에 서로 마주 보고 앉으며 커피를 마셨는데 머그잔의 온도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미리 말하는 것 같았다. 잔을 입에 대고 홀짝이던 그가 무겁게 꺼낸 말 한마디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그리고 커피는 뜨거웠다. 마시다가 그의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잔을 놓칠 뻔했는데 입천장만 데었을 뿐 다른 곳은 무사했다.
“대출을 해서 우리가 살기 좋은 아파트를 사면 좋을 텐데. 어떻게 생각해?”
오빠가 꺼낸 말속에 들어있는 무게를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오빠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봐왔고 나 또한 시장조사를 꾸준히 했기 때문에 가벼운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오빠의 얼굴을 응시하며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경청했다.
나랑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포물선을 그리듯 눈은 내 시선을 회피하며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이런 순간에, 상대방이 멀어지기 전에 먼저 묻는 쪽을 택하는 편이다.
그가 은근슬쩍 스마트폰을 꺼내 애 먼 화면을 쓸어내리는 순간 나는 운을 떼었다.
“오빠, 왜 자꾸 다른 델 보는 거야? 무슨 일 있어?”
내가 말하기 무섭게 오빠는 토끼눈으로 날 바라봤다.
“엉?”
마치 내가 오빠를 혼낸 것 같은 상황이 돼버려서 그땐 당혹스러웠다.
그가 고민을 나한테 털어놓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를 하길래 기쁜 마음으로 응해줬을 뿐이었는데. 내 앞에 앉아있는 오빠는 자꾸만 작아져서 어딘가 구멍으로 숨어버릴 것 만 같았다.
숨어버린 그를 찾아내려면 역시 무언가를 던져봐야 한다. 그게 치즈일지, 덫일지, 아니면 잠시 기대도 되는 공간일지는 그때 가서 알 일이다.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열었다.
“혹시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뭐야?”
돌아온 오빠의 대답은 실로 놀라웠다.
“네가 화냈잖아. 나는 단지 상의를 했을 뿐인데 죄지은 기분이야.”
“어?”
짧은 대답을 뒤로하고 우리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는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가 한 대답은, 내가 화가 난 것처럼 느껴졌다는 뜻으로 읽혔다. 미국식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나더라도 그 자체가 대화의 종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불편함이나 긴장 역시 대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감정이 섞인 상황에서도 대화를 충분히 이어갈 수 있었다.
직접적으로 네가~했잖아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내가 그렇게 느껴졌어’라고 번역해야 마음이 편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석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로부터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나는 감정보다 맥락을 먼저 읽는 환경에 오래 노출되어 있었고, 상대방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에는 나름의 자신이 있었다.
나는 이 대화를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내 예상과 달리 그는 뒷걸음질을 쳤다. 호랑이를 실시간으로 마주친 것처럼 삐질 삐질 거리길래 뭔가가 잘못됨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어!”
내가 그날 당장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때 상황의 숨은 뒷 이야기는 1주일 지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아주 기분이 좋은 날은 금요일과 주말이었는데, 외식할 때 한번 넌지시 물어보니 속마음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오빠의 입장에서는 내가 대화를 할 때 눈을 마주치는 게 어색했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니 그때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눈을 마주하는 정도는 괜찮은데, 진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내 얼굴 표정이 찌푸려지는 게 보이길래 오빠는 내가 화가 났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여기에서 할 말을 고르거나 감정을 정리할 때 생기는 얼굴표정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오빠에게 생소한 경험을 선사했다.
내 얼굴표정과 비슷하다며 오빠는 직접 본인 미간을 손으로 누르면서 그때 상황을 흉내 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웃음에도 종류가 있는데, 안면근육에 힘이 빠진 채로 웃음이 나온다면 그건 허탈감에 가까울 거라 장담한다. 하지만 나의 어떤 얼굴표정 때문에 화가 났다는 오해를 한 건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웃음이 가시고 나니, 이 일을 감정으로 설명하는 건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때 상황을 다시 시연을 해서 내 얼굴표정을 사진으로 찍고, 거기서 오빠가 화가 났다 느끼는 표정을 한 사진을 골라내기로 했다.
오빠는 어떤 걸 골랐을까? 궁금해졌다.
위에 나열한 사진들은 그가 고른 얼굴 표정들이다. 다른 커플들은 어떤지 잘 모르기 때문에 참고만 하면 좋겠다.
화가 난 것 같다는 오해를 받았던 내 표정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눈썹이 내려가 있지만 강하게 찌푸려지지 않음
→ 분노가 아니라 집중·생각·판단 상태에서 나온다.
입이 닫히거나 애매하게 벌어짐
→ 감정을 터뜨리는 중이 아니라, 말할 내용을 정리 중일 때의 전형적인 입 모양이다.
턱과 입 주변에 과도한 긴장 없음
→ 화가 났다면 턱이 더 굳고, 입선이 직선으로 고정된다. 여기엔 그게 없다.
표정 변화의 방향은 ‘표출’이 아니라 ‘보류’
→ 불쾌·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생각 중, 판단 중, 정리 중’이라는 신호다.
오빠가 문제를 삼은 내 얼굴의 공통점은 잘 알겠는데 왜 이런 오해를 불러들이는지 이유는 여전히 알기 어려웠다. 순간, 내가 겪었던 어느 기억들이 떠올랐다.
집, 돈, 일자리 같은 중요한 문제를 논할 때마다 나는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을 고르는 습관이 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덩달아 진지해지곤 한다. 그런데 그이뿐만 아니라 내 부모님도 나에게 종종 말하던 게 있었다.
“너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니? 화낼 일이 아닌데.”
상황이 진지해질수록, 나는 비슷한 말을 자주 듣게 되니 귀에 익을 지경이었다.
사실 이 말에는 들어야 할 주인이 있어야 하는데, 정처 없이 메아리치는 말을 상대방이 내뱉을 때마다 나는 항상 곤욕스러웠다. 지금 오빠랑 내가 겪는 갈등을 보니 딱 이 상황인 거다.
오해는 서로 쌍방이었다. 나 역시 대화하면서 그가 화가 난 것처럼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그가 화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 나는 대화의 맥락을 따라서 해석하기 때문에 말 자체에 민감했다. 말이 언제 어디서 바뀌는지, 그 미묘한 차이도 맥락을 통해 짚어내기 때문에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대부분 이야기의 맥락이 끊어지거나 상대방이 먼저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지금은 대화가 잘 안 되니 추스르고 와”라는 말을 꺼냈을 때 내면 속의 갈등이 일었다. 오빠가 내가 화났다고 느끼고 이야기를 중지시키는 순간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서로가 똑같은 사람이었다.
막상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지금은 부끄러워 어딘가에 숨고 싶다. 나는 그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오빠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까. 어쩌면 서로 잘못됐다고 말을 해도 둘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이 웃프게 느껴졌다. 사랑이 그렇듯, 문화 차이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나온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치관이 다른 것 빼곤 문화차이는 더 이상 없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생각하는 것도 달랐지만,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얼굴 표정도 매우 달랐다. 이 사실을 “화 안 냈는데 화가 났대” 에피소드 덕분에 깨닫게 되었다.
일상을 살아내는 데에는 저마다 익숙한 행동 양식과 기준이 있다면, 나와 오빠는 서로 다른 안내서를 들고 살아가는 셈이다.
얼굴 표정에서 드러난 우리의 다름은, 생각보다 더 많은 일상으로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