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깨어지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2022년을 갈무리하며 올해를 대표하는 노래는 무엇이었을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르세라핌의 <Antifragile>.
나는 본능적으로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뭐랄까, 효율적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노력해서 단번에 성공할 수 있는 걸 실패하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과만을 좇다 보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고, 그렇게 지쳐있던 나를 비롯한 여럿 사람들에게 2022년 갑자기 등장한 키워드는 <갓생>이었다.
안티프래자일 이야기하다 갑자기 웬 갓생이냐 싶겠지만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열심히 살다가 방전된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살라고 하는 게 맞는 거야? 싶었지만 갓생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행위가 아니라, GOD생이라는 네이밍에 걸맞은 숭고한 행위라고. 결과가 좋아야만 GOD의 경지에 이르는 게 아니라 결과에 닿기까지 과정에서 한 노력들도 GOD이라는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며, 만약 실패하더라도 실패하기까지 했던 모든 노력들을 유일하게 인정해주는 단어였다.
그러면서 당장 실패해도 돼.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끈기를 갖고 임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에 이를 거야- 하는 생각이 주문처럼 통용되었고.
넘어져도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그래서 우리는 ANTIFRAGILE.
이는 유독 사건 사고가 많았던 2022년, 우리 모두의 마음을 붙들어주는 단어가 되었다.
르세라핌의 곡 <Antifragile>에서 화제가 되었던 가사 파트를 몇 가지 짚어보고 싶다.
유망한 발레리나의 꿈을 접고 한국으로 와 아이돌 직업을 선택한 멤버 카즈하의 가사,
"잊지 마 내가 두고 온 toe shoes 무슨 말이 더 필요해"는 인생의 변곡점에서 내가 한 선택에 방점을 찍겠다는 각오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
이어서 어린 나이부터 수많은 아이돌 그룹을 거쳐 마침내 젊은 나이에 다시 데뷔를 하게 된 멤버 사쿠라의 가사, "무시 마 내가 걸어온 커리어"는 결과가 어떻든 어린 나이부터 꾸준히 달려왔기에 최종적인 꿈에 이룩할 수 있었던 서사를 한 마디로 압축한다.
그럼에도 르세라핌은 "떨어져도 돼 I'm antifragile"이라며 실패하고 떨어지고 부딪혀도 결코 깨지지 않겠다는 정신을 반복되는 훅을 통해 강조한다.
올 한 해 많은 이들이 각자의 이유로 힘듦을 견뎌냈으리라 예상해 본다.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실패의 순간을 무수히 겪었고, 더 나아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극 앞에 무력한 나 자신을 보며 세상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쉬이 깨어지지 않겠다며 더 열심히 살아내 보겠다며 다짐을 하고 또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우리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기에 깨어지기 너무나 쉬운 존재다. 그렇기에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뚝심과 지금까지 달려온 길에 대한 믿음, 그리고 더 단단하게 살아가자는 그들의 노랫말이 우리 마음속에 더 깊숙이 공명한다. 꼭 '갓생'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용감무쌍한 일이다. 2022년 한 명 한 명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간접적으로 나마 마음에 스치운다.
어떤 가시밭길에도 바라던 세계로 더 높이 올라가겠다는 그들의 투지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로 생동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Fairy Tale은 갖다 버리라는 르세라핌의 가사가 어딘가 모르게 안쓰럽기도 하다. 가끔은 허황된 생각도 해보고 여유롭게 Fairy Tale을 꿈꾸기도 하며 그 속에서도 투지만은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램이다.
다가올 2023년은 어떤 해가 될까. 더 많은 사람들이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채기가 나고 흉터도 질 수 있지만 깨지지는 않았음 좋겠다. 희망이 아득해지는 이 시대에, 각자의 방법으로 단단함을 보존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