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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U Dec 18. 2022

무덤


오랫동안 이 집에 혼자 살았다. 집에 있을 땐 노래도 듣지 않고, 혼잣말도 하지 않는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게 좋아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집은 조용하고, 이웃집의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소음만이 공기를 메운다.


아 참, 오늘 아침 날씨가 추워진 탓에 코트를 입어야 할지 패딩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다 옷걸이에 매달린 겉옷들이 와르르 떨어졌다. 시간에 쫓기고 있던 나는 옷 무덤을 그대로 둔 채 집 밖을 나섰다. 거대한 옷을 들어 올려 내 키보다 높은 걸이에 거는 일은 상당한 근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그 일은 조금 나중으로 미뤄본다.


작디작은 방에 모든 살림살이를 두려다 보니, 아무리 깨끗이 치우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폼을 내봐도 어딘가 모르게 조잡하다. 이는 은근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한 번은 엄마에게 투덜댔더니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면 안 그럴 거 같냐며, 분명 거기서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고 싶어 안달 날 거라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삼분의 이 크기의 원룸에서 잘만 살았다.


옷 무덤 옆에는 생뚱맞게 하얀 장식장이 놓여있다. 트렌디한 인테리어 가구만 모아두었다는 쇼핑몰에서, 유저들이 올려놓은 인테리어 레퍼런스에 반해 하얗디 하얀 장식장을 덜컥 구매했다. 장식장이 예뻐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예쁜 공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았고, 그에 반해 우리 집은 그만큼 예쁜 공간이 못된다는 사실도 잘 알았다. 알면서도 그렇게 가오를 부렸다.


장식장의 상단은 문짝 없이 내부가 드러나 있어 구색에 맞는 모던한 패브릭을 구매해 안이 보이지 않도록 상부를 덮어두었다. 어느 날부턴가 집 안에 돌아다니는 잡동사니를 둘 데가 없어 하나둘씩 패브릭 안에 숨겨두기 시작했다. 패브릭 안은 물건들이 서로의 공간을 비집고 효율적으로 자리를 잡느라 점점 무질서해졌지만, 패브릭 밖은 잡동사니가 줄어 깔끔해 보였다. 하루는 우당탕 소리가 나길래 근원지를 찾아보니 장식장 상부에 쌓아놓은 물건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모두 떨어져 있었다. 떨어진 물건들을 줍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려둔 예쁜 인테리어의 집들도 자세히 들춰보면 다 이러려나.


좌우간 시끄럽고 차가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품어주고, 나의 양면성을 낱낱이 관망하고 있는 이곳은 나의 집이다. 고맙기도 하고 괜히 머쓱하기도 해서 오늘은 저 옷무덤을 치우고 자야겠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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