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에 내가 본 것들.
조금 늦었지만 올 2월에 본 콘텐츠들의 월말 정산을 해보려 한다.
참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책을 보며 작고 큰 메시지를 가슴속에 아로새겼던 것 같다.
1.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2023)
-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
- 강백호, 송태섭, 정대만, 서태웅, 채치수 출연
- 애니메이션
- 124분
★★★★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 멈추지 않는 도전을 그린 영화
농구에 ㄴ자도 몰랐던 내가 단시간에 농구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던 건,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의 놀라운 스토리텔링이다. 하나의 경기에 참여한 모든 캐릭터들의 삶을 담아냈고 승부 기세의 높낮이에 따라 그들의 삶의 애환과 환희를 적절히 녹여냈다. 극 중 송태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그가 걸어온 삶이 어떻게 그가 하는 플레이 그 자체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의 삶을 따라오다 보면 그가 승부를 대하는 태도에 당위성을 발견하며 심지어 삽시간에 그의 편에 서게 된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바칠 정도로 한 가지에 몰입하는 청춘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그리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꿈이 없고 비전과 목표가 없이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꿈'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살아갈 명분을 얻게 된다. 더 높은 도약을 향해 Rabbit Jump를 꿈꾸는 2023년 모든 이에게 가장 걸맞은 청춘 영화.
아비정전 (1990)
- 왕가위 감독
-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주연
- 드라마, 멜로/로맨스 장르
- 100분
- NETFLIX
★★
자유를 갈망하는 바람둥이 ‘아비’는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을 찾아간다. 그는 그녀에게 이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하게 될 거라는 말을 남기며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결국 ‘수리진’은 ‘아비’를 사랑하게 되고 그와 결혼하길 원하지만, 구속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아비’는 그녀와의 결혼을 원치 않는다. ‘수리진’은 결혼을 거절하는 냉정한 그를 떠난다. 그와의 1분을 잊지 못한 ‘수리진’은 ‘아비’를 기다리는데…
(결말 포함) 왕가위 감독 특유의 플랫한 스토리와 바람과 같이 자유로운 캐릭터들은 <아비정전>에서도 돋보인다. 극 중 주인공 ‘아비’는 한마디로 바람둥이다. 누구에게나 사랑을 속삭였지만, 그중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매표소 직원 ‘수리진’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듯했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의 불씨는 매몰차게 꺼지고 말았다. 새로운 사랑인 ‘루루’ 역시 영원히 자신만을 사랑해 줄 것 같았던 아비가 떠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아비는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헤집어놓고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난다. 그의 자유로운 속성처럼 그 누구에게도 떠나는 것을 선언하지 않고 멀리, 훌훌.
그는 어떤 국면을 맞이하게 될까. 어처구니없게도 말미에 아비는 자신이 덤비던 조직원의 총에 맞아 죽는다. 영원히 자유롭게 날아다닐 것 같던 아비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 목숨을 잃으며 허무한 마무리를 짓는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고, 영원은 없다. 어떻게 사느냐는 정답도 없고 결국 자신의 몫이겠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며 우습게도 아비처럼은 살고 싶지 않단 생각이 강렬해졌다. 1분 1초를 값지게 만드는 것은 진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심을 다해 살고 싶다, 놓치는 것 없이.
유령 (2023)
- 이해영 감독
- 이하늬, 박소담, 설경구, 박해수 주연
- 액션 장르
- 133분
★★★☆
“유령에게 고함. 작전을 시작한다”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 항일조직 ‘흑색단’의 스파이인 ‘유령’이 비밀리에 활약하고 있다. 새로 부임한 경호대장 카이토는 ‘흑색단’의 총독 암살 시도를 막기 위해 조선총독부 내의 ‘유령’을 잡으려는 덫을 친다. 영문도 모른 채, ‘유령’으로 의심받고 벼랑 끝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쥰지, 암호문 기록 담당 차경, 정무총감 비서 유리코,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 통신과 직원 백호.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뿐. 기필코 살아나가 동지들을 구하고 총독 암살 작전을 성공시켜야 하는 ‘유령’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 사이, 의심과 경계는 점점 짙어지는데…
추리 영화라고 하기엔 다소 부족하나, 화려한 액션과 미장센에 집중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박차경과 윤난영 그리고 박차경과 유리코 사이에 흐르는 공기와 속삭임, 굳은 결의와 형성된 신뢰가 주축이 되어 영화가 가진 여러 단점을 상쇄한다.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들 사이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여성 인물들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혹자는 미장센에 집중한 나머지 장르적 장점은 가져가지 못했다고들 비판하지만, '스타일'만으로 사랑받았던 다른 상업영화들을 떠올리자면 비판의 까닭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취향의 차이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숭고한 시대정신을 주된 장르로 삼았다는 점에서, 스타일을 좀 더 빼고 극을 보충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쿄! (2008)
-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 봉준호 감독
- 아오이 유우, 카가와 테루유키 등 주연
- 드라마 장르
- 111분
★★★★
(1) '아키라와 히로코(Interior Design)’(미셸 공드리 감독 작품). 홋카이도에서 영화작가를 꿈꾸는 애인을 따라 상경한 히로코의 이야기 (2) ‘광인(Merde)’(레오 까락스 감독 작품). 도쿄가 전율한다. 하수구에서 신출귀몰한 괴상한 남자를 둘러싼 이야기 (3) ‘흔들리는 도쿄(Shaking Tokyo)’(봉준호 감독 작품). 10년간 히키코모리(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한 남자가 어느 날 피자 배달부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세 명의 거장 감독이 바라본 도쿄를 담아낸 옴니버스 무비. 대도시의 이야기는 다채롭고 무궁무진하다. 아프기도 슬프기도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꼭 귀 기울여야 하는 이야기를 나열한다. 예술은 역시 위대하다!
(1) '아키라와 히로코' 미셸 공드리,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가는 현대인이 최소한의 가치를 발할 수 있는 '사물'이 되어버린 동화적 이야기. 번듯한 직업과 원대한 꿈이 없다면 사람으로서 구실을 못한다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주인공 히로코는 공허함을 넘어 자신이 '공허함' 그 자체가 됨으로써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동화적이고 경쾌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프다.
(2) '광인' 레오 까락스,
그저 도시 괴담이 아닌 실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비극을 은유적으로 전시하며 가해자를 향해 신랄하게 책임을 묻는다. 당신들은 진정 잘못이 없나요? 나의 죄를 당신들이 벌할 명분이 있나요? 당신들이 그렇게 했던 것에 이유랄 게 있었나요?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듯 꽥꽥 외쳐대는 광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3) '흔들리는 도쿄' 봉준호,
집 안에 숨어 타인과의 교류 없이 살아가는 히키코모리. 피자 배달원과 처음 눈을 맞추는 순간 흔들리는 건 심장 그리고 그가 살아온 세계의 전부. 다들 집 밖으로 나와서 서로 눈을 맞추고 호흡을 나누고 사랑하자-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2023)
- 김태준 감독
- 천우희, 임시완, 김희원 주연
- 스릴러 장르
- 117분
★★★☆
회사원 ‘나미’(천우희)는 퇴근길,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을 잃어버린다. 스마트폰을 주운 ‘준영’(임시완)은 ‘나미’의 폰에 스파이웨어를 설치한 뒤 돌려준다. ‘나미’의 스마트폰으로 취미, 취향, 직업, 동선, 경제력, 인간관계 등 ‘나미’의 모든 것을 알아낸 ‘준영’은 정체를 숨긴 채, ‘나미’에게 접근한다. 한편, 살인 사건을 쫓는 형사 ‘지만’(김희원)은 사건 현장에서 아들 ‘준영’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직감으로 ‘준영’을 몰래 조사하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그날 이후 ‘나미’의 평범했던 일상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데… 단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내 모든 일상이 무너진다!
영화 시작 직후 5분가량이 영화가 끝나기 전 25분 보다 더 긴장감 있고 무서운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의 스릴러라면 한창 클라이맥스를 즐기고 있을 시간보다 더. 영화의 인트로에선 우리 일상이 얼마나 스마트폰에 의존해 운영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디지털로 점철된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실로 거대한지를 짧은 호흡의 컷전환을 통해 전시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생각보다 더 실체가 없고, 우리의 신뢰가 생각보다 더 쉽게 무너질 수도 있겠단 가능성을 보아서일까?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한 번쯤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다. 인생에 깊숙이 침투해 버린 이 작은 기계가 공포스러워지는 순간이 불쑥 찾아온다. 영화가 끝나고 주변을 둘러보니 한 손에는 아이패드, 한 손에는 스마트폰 그리고 책상 위에는 노트북, 바로 맞은편엔 TV가 놓여있어 괜히 섬뜩해졌다.
2. 도서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저자 : 데일카네기)
★★★☆
인간관계를 다루는 고전 도서, 그 이름도 유명한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알짜배기로 담겨있었다. 책 중간중간 방법론에 덧붙여 '아첨이 아닌 진심으로 행해야 한다'는 말이 반복되는데, 사실 데일카네기가 이르는 모든 방법들을 진심으로 실천하려면 번뇌가 소멸된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긴 했지만 최대한 이를 지향하며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건 분명 도움 될 거라 생각됐다. 읽는 내내 ‘와.. 이렇게 해야지!’라는 생각보단, 책에서 조언해 주는 것과 실제 나의 모습과 비교해 가며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까? 를 많이 반추해 봤다. 분명 인간관계를 현명하게 해 나가는 능력은 살아가는 데 있어 성공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역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학과 같은 기술 분야에서도 기술적 지식은 금전적인 성공에 15퍼센트 정도밖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85퍼센트는 인간관계에 관한 능력.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다른 사람을 이끄는 능력이었다고!) 덧,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이 읽으면 더욱 효과가 좋을 책이다.
디테일의 발견
(저자 : 생각노트)
★★★
저자가 자신의 일상에서 발견한 공간, 제품, 서비스에서 차별화가 느껴진 디테일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 요즘 마케터를 비롯해 여러 직군, 나아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원천으로 '영감'이 강조되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인스타 등의 SNS 계정을 통해 자신이 얻은 영감을 업로드하고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영감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된 책이다. 사실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도서'의 느낌보단, 관찰 기록집 같은 형태를 띠어 잘 정리된 SNS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하나하나 내가 생각지도 못한 흥미롭고 새로운 관점의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어 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다. 어쨌든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건, 의식적으로 관찰 레이더를 곧추 세워야겠다는 것. 결국 차이를 만드는 아이디어는 관찰을 해서 영감을 얻고 수집된 생각들로부터 기인되는 것이 아닐까?
싯다르타
(저자 : 헤르만 헤세)
★★★★
인간의 구제가 어디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가장 긍정적인 대답을 주는 책. 나는 이 책을 읽고,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구제받는가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1) 자아 (2) 지식이 아닌 지혜 (3) 사랑 (4) 단일성
나의 영혼으로부터 초탈해 세상 삼라만상을 이해하고 품는 것이 진정한 경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 모든 삼라만상은 나의 내면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전부는 결국 나 자신이고, 우리 인생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진정한 앎이란 지식이 아닌 지혜다.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인해 얻는 지식은 내가 나의 삶을 통해 경험하고 부딪혀가며 알게 되는 지혜와는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생의 굴곡에서 직접 경험하며 얻은 깨달음과 지혜를 간직하며 살아갈 것. 거짓된 앎을 경계할 것.
더불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아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역시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은 사랑이다. 마지막으로 싯다르타가 강물에 비유를 했던 시간의 단일성 역시 중요하다. 강물은 끝이 없이 계속 산에서 바다로 흘러가며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쌓이고 깎이고 쓸려가며 생태계를 유지한다. 영원히 하나로 이어져 흘러가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 역시 우주의 큰 흐름 속에서 흘러가는 강물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굳이 시간을 분리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그에 구애받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구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깨달음을 글로 정리하며 다시 한번 나의 가치관이 또렷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데에는 애매한 자기 계발서가 아닌 고전이 답이라는 생각.
2월 역시 이처럼 다양한 영화와 책을 통해 마음의 양식을 길렀다. 사실 도서 <싯다르타>의 경우, 최근에 읽었던 (3월) 책이나 빨리 글로 정리해두고 싶어 브런치에 옮기게 되었다. 콘텐츠로부터 다양한 영감을 받으며 나도 빨리 깊은 인사이트를 지닌 콘텐츠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