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노동은 이브 할매에 대한 신의 연좌제

불신자의 내 맘대로 성경 읽기 1

by 보는 사람

불경과 성경은 한 번은 읽어 보자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지만 몸(읽기)은 늘 생각에 졌다. 또 세속의 말씀(글) 속에 성스러운 말씀들은 뒷전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며칠의 유람 끝에 귀가한 집에는 '성경책'이 도착해 있었다. 여행 가기 전, 목사 부인인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었다.


'성경 좀 읽어 보려고 중고 서적을 훑어봤어. 일반 서적처럼 많이 없기도 하지만 이 불신자, 문외한 눈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네. 하나님 모시고 사는 네가 초보자 추천용 좀 권해다오'


만나는 동안 소박한 삶의 형태뿐 아니라 '교회 오라'거나 '불신지옥' 같은을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아 기독교(인)에 관한 편견을 해소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친구다.

"성경을 뭘 사나? 우리 집에 많은데. 내가 한 권 보내 줄게"

불신자 문외한의 서툰 질문에 하나님은 실속 있는 답과 선물로 응답해 줬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빛 표지 안에 고이 모셔져 지퍼 처리까지 된 가죽 양장본 성경책이다.

수면 보완제 겸 편한 꿈이나 좀 꾸라고 잠자리에서 주로 읽었는데 '태초의 말씀'은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뭐, 원래 좋은 말씀은 한꺼번에 깡그리 읽어치우는 게 아니라 두고두고 읽는 게 좋은 거지.

성경은 굳이 '순서'대로 안 읽어도 상관없을 텐데.... 고정관념, 습관을 쉬이 못 버리는 나는 또 앞 장부터 읽어 간다. '신석기 빗살 무늬'만 주야장천 들추다 삼국시대가 어느새 저 멀리 가 버린 그 옛날 미련함이 예감됐다.


말씀


하나님이 여러 생물을 만들 때의 공통점이 있었다. 식물, 짐승, 사람 그 세 생물체의 창조 과정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요소는 '말씀'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말'만으로 생명을 만드는 신의 능력을 표현한 것이지만, 성경이 글보다 '의 교리'란 뜻 같기도 했다. 그 유명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말은 글보다 그 수용에 있어 평등하고 자유롭다. 물론 성서뿐 아니라 모든 종교, 교리, 학문도 애초엔 말로 먼저 존재하고 전달됐을 것이다. 글자를 먼저, 많이 배운 남자들의 손과 기록을 거치며 모든 종교 교리와 학문은 남성 중심의 말로 전달 전수됐겠지. 성경이 말의 교리라는 건 그만큼 '말의 중요성'에 대한 뜻 같게도 여겨진다.

"들은 대로 행하라!"



하나님의 생물 창조 시 '말씀'외에 '흙'도 있었다. 창조 사역 식물은 말씀으로, 짐승은 말씀과 흙, 사람은 말씀과 흙과 생기로 만들었다고 나온다. 그런데 '짐승과 사람'에게는 필요했던 '흙'이 '식물'의 창조에는 왜 안 들어갔을까? 신이 짐승이나 사람은 식물처럼 '말씀만'으로 말을 들어 먹지 않을 복잡하고 까다로운 종자들임을 애초에 안 것인가? 식물이야말로 사람과 짐승보다 오히려 흙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짐승과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되므로 식물은 두 생물 사후의 영양소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일까? 하나님은 생물의 우선순위에서 식물은 세 번째로 둔 것인가?


사람의 창조 과정엔 말씀과 흙 외에 '생기'가 하나 더 있었다. 생기! 사람의 원초적 조건인 그 생기 말이다. 한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날 때의 기운 '쯤일 것이고 사전적으로는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라 돼 있다.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 중의 하나가 그 '날 때의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다. 날 때에 있었다는 그 기운들은 대체 언제, 어디서 다 새 버렸단 말인가?


짐승과 사람을 만드는데 필요했던 '흙'은 '땅'의 한 요소기도 하다. 꼭 기독교, 성경에서 뿐 아니라 철학가, 종교인, 예술가도 '땅, 흙'의 중요성과 의미를 많이 얘기했다. 근대 이전의 모든 국가가 '농업'을 귀히 여긴 것도 그런 연장성 아닐까? '땅(흙)에서 나와 땅으로 돌아간다'라는 것은 기독교적 사상은 아니지만 흙의 '환원성', 자연으로의 '회귀성' 뭐 이런 것과 연결된 것은 아닐까?

창세기 앞부분 에덴동산 얘기 중, '땅을 갈고 지키게' 하려고 '생명(사람)을 만드셨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 인간에게 선악을 알게 한 뱀에게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는 저주도 나온다. 비기독교 국가였던 우리나라에서 사람에게 하는 비하 중 '평생 흙이나 파 먹고살아라'는 말과 유사한 저주다. 흙, 땅은 우리 (인간) 생명의 원천이며 살아갈 '밥'이니 '밥 벌어먹고 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으로 들린다.


'밥 먹고 살기의 저주, 고단함'을 말하는 대목이 또 있다. 아담과 이브가 뱀 때문에 선악의 판별과 수치감, 고통의 근원인 생각을 가지게 됐다. 신은 그 벌로 여자에겐 '임신과 출산'의 고통과 '남성 치하'의 생애를, 남자에겐 평생 '밥벌이의 고단함'이란 벌을 지게 됐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 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 하시고,


아담하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얼굴도 모르는 저 먼 몇 겹의 옛날, 이브 할머니가 선악과를 따 먹는 바람에 오늘날의 우리가 출산과 육아의 고통, 남녀 차별과 노동의 고욕을 치른다는 말이다. 하늘 법에는 연좌제 폐지도 없는 것인지, 그 연좌제 참 길기도 하구나! 신이 천지 창조할 때와 비교도 안 되게 세상은 각박하고 인간은 강퍅해져 이제 여성은 출산을 거부하고, 남자는 노동을 거부하며 흙이 있는 산으로 들어가고 있구나.



흙, 땅을 가는 중요한 도구 중 하나가 사람의 '손'이다. '손이 정직한 사람'이라는 말은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 말이나 생각보다 몸이 빠르고 좋은 사람이라는 뜻일 게다. 현대에서는 '뇌(머리)'가 능력이지만 성경에서는 '손'이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란다. 머릿속 생각은 잘 보이지도 않고 언제든 바꿀 수 있지만 손은 그 행함이 바로 나타난다. 신체의 위, 아래를 어우르며 발과 함께 가장 정직하고 부지런하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오른쪽 하나님이 왼쪽 인간을 '손끝'으로 가리키고 있다.


정복

그런데, 하나님의 인간 창조 과정 중에는 오늘날 온 세상과 사람을 이토록 피곤하고 혼란하게 한 '정복'에 관한 말도 나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왜 하나님은 하늘의 새와 가축과, 땅과 바다의 물고기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과 더불어 살라-고 하지 않고 자연과 짐승을 다스리게, 다스리라 했을까? 애초 하나님은 식물보다는 동물을, 그 동물 중에서도 두 발로 설 수 있는 '직립 보행'의 인간을 자신이 만든 생물 중 최상급으로 계급 설정해버린 것 아닌가? 이른바 하나님이 만든 생물계의 금수저가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고 짐승은 은수저 식물은 흙수저인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같은 독실한 신자와 사제들이 자신들과 다른 얼굴색, 모양을 한 이민족들을 미개인으로 치부하고, 그들의 땅을 정복할 구실을 '신의 뜻으로'란 빌미를 준 것은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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