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죄의 역사

불신자의 내 맘대로 성경 읽기 2

by 보는 사람

집 앞의 숲을 어슬렁거린 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좀 외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그 끝에 아파트 숲 뒤쪽 배경으론 익숙하지 않은 밭이 나온다. 밭 둘레 사방으로는 사람 키를 넘어서는 굵은 철조망이 마름모꼴로 엮어진 가림막이 벽처럼 둘러쳐 있다. 철망 위쪽 난간에는 솟대 같은 새와 목각 인형 가족이 군데군데 앉아 밭을 지키고 있다. 볼 때마다 밭은 참 정갈하다. 밭 주변은 장독대, 깡통 등으로 만든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화분과 나무 작대기 위에 주전자를 고정시켜 만든 문패가 보이는데 주인장의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농장 가꾸고 꾸미는데 관심 많은 주인장의 부지런함과 애착이 저절로 느껴진다. 생업이 아닌 취미로 하는 자의 여유와 낙이다. 밭은 고랑도 말끔하지만, 밭마다 구획이 잘 나뉘어 있어 마치 작은 밭 마지기마다 주인이 있는 주말농장 같다.

그 작은 농장 밭 뒤로 낡은 마루 평상이 하나 있는데 그 평상 옆에는 옷 집에서 많이 쓰는 긴 거울이 있다. 주위 풍경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생뚱맞은 물건이라 무의식 중에 고개가 돌려지는데 그 거울 아래 공간에는 마치 무슨 경구 같은 말이 있다.


얼굴 몸매 보세요. 참 멋지군요. 양심적으로 살고 있는지 비추어 봅니다


집에서도 거울을 잘 보지 않던 나도 왠지 '찔끔' 해서 거울을 봤다.

‘양심적으로 사는가?’라는 말은 ‘죄를 짓지 않았는가?’를 묻는 말이다.

일전에 천지창조 역사와 이브 아담 부부의 선악과 이야기에 이어 읽은 성경 ‘죄의 역사’가 나왔다.

가인과 아벨


'카인'이라고 알고 읽던 이름이 성경에선 '가인'이라고 표기돼 있는데 발음상의 차이로 생각된다. 마치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 중에 앞 이름자에 강한 악센트를 주어서 '쫑~'이라고 부르는 거 같은 경우겠지.

성경은 잘 몰라도 '카인과 아벨'이란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잘 없지 싶다.

모두가 잘 아는 사람은 실은 아무도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겠지? 카인이 어떤 악으로 신의 미움을 사서 벌 받았고 아벨은 그의 착한 동생이다-라는 정도가 카인과 아벨 형제에 대해 내가 알던 단편적 얘기다.

성경 속 얘기는 이랬다.

농부인 카인과 목부였던 아벨 두 형제는 신에 대한 공물로 각각 땅의 소산물,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바쳤다. 우리가 흔히 쓰는 '희생양'의 어원이 아벨이 바친 양에서 시작된 것인가?

유고 짐베르크(핀란드)-작가는 생전에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며 작품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양을 안은 소녀'는 내가 붙여 본 이름


하나님은 동생인 아벨의 선물만 받고 형인 카인의 선물은 거부했는데 이에 질투심과 분노를 느낀 형이 동생을 죽였다. 하나님은 그 벌로 카인에게 '흉년'이란 벌을 주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두 가지 점이 흥미로웠다.

첫째는 하나님이 카인의 선물을 거부한 이유고 둘째는 카인의 살해에 대한 벌이 '죽음'이 아니라 '흉년'이라는 것이다. 먼저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원인이 된 하나님의 '카인 선물 거부'에 대한 해석을 보자.


①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물이었기 때문이다.

②아벨의 제물이 가인의 제물보다 더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③가인은 단순히 감사의 제물을 드린 것이었으나 아벨은 자신의 속죄를 위해 드렸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4에는 가인의 제사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창세기 4:7에서도 가인이 악을 행했기 때문임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가인의 제물이 열납 되지 않은 것은 생활과 제사가 일치되지 않은 믿음으로 드렸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든 해석은 세 번째 해석이다.

< 가인은 단순히 ‘감사’의 제물을 드린 것이었으나 아벨은 자신의 ‘속죄’를 위해 드렸기 때문이다.... 가인의 제물이 간택되지 않은 것은 생활과 제사의 불일치한 믿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신은 대부분의 오해와 달리 선물(예를 들면 십일조나 큰 교회 같은)이나 자신에 대한 '믿습니다' 류의 숭배보다 '속죄'하는 인간과 '신앙(앎)과 생활(실천)의 일치'를 이루는 인간들을 더 어여삐 여긴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 두 번 째는 카인의 살인에 대한 벌로 죽음이나 눈, 귀 등의 신체 형벌이 아닌 흉년을 주었다는 것이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또 자신이 행한 죄로 사람들에게 살해의 복수를 당할까 두려워하는 카인에게 죽임만은 면해준다는 말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자에게도 죽음만은 사해 주는 신의 은혜와 너그러움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현재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사형' 제도에 대한 반대로 읽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이 외에도 마치 죽는 고통보다 '사는 고통'이 더 크다는 얘기 같아서 ‘살아서' '성과 없는 긴 고통'을 감내하라는 더 무시무시한 형벌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해도 일해도 내 한 입 먹고살기도 힘든 나와 우리의 모습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먼 전생의 어떤 원죄와 속죄 없는 뻔뻔함 때문에 죽는 것보다 더 큰 사는 고통, 그중에서도 먹고살기 힘든 노동의 고통을 받는 것인가? 하는…….

이브, 아담 부부의 선악과 이야기에도 ‘노동’이 신의 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가!

성경 속에서 ‘고통’은 ‘생각’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했다. 생각이 선악의 판별, 수치감 등을 생성시키는 고통의 근원이라고. 그렇게 보면 선악과는 생각의 상징이다. 이브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나눠 먹은 벌로 여자에겐 임신과 남성 치하의 벌을, 남자에겐 평생 노동의 벌을 줬다는 것이다.

이브 너는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 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 아담 너는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카인은 갈아도 갈아도 밭이 안 일궈지는 흉년의 벌을 받았지만, 신은 그 자식들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하지는 않으신 모양이다. 카인은 여러 자식과 손주들을 얻었는데 성경을 읽다 보면 그 손주들은 목축업자의 조상, 청동기 혹은 철기 도구 제작의 조상이다.

.....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직업의 다양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한데 인간 죄의 다양함도 '직업의 다양화, 도구의 사용'과 함께 된 것 같다.


비기독교인에게도 예수님, 유다, 모세, 카인과 아벨만큼 유명한 성경 속 인물이 '노아'일 것이다. 직업의 다양화와 기구의 사용이라는 문명 발달, 청동기/석기시대를 암시하는 위 성서 인용문의 시기는 카인의 아들이자 노아의 아버지인 '라멕' 때다. 늘, 널리 전해지는 얘기보다 숨은 이면에 귀가 더 쫑긋거려지는 내겐 '노아의 홍수'에 관한 얘기보다 문명 발달이 인간의 사악심이 증가한 원인이라는 해석으로 귀가 쏠린다.

아버지 카인의 살인죄가 자식에게도 대물림됐음인지 라멕 또한, 살인과 죽임을 면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죄의 이유, 증가가 흥미롭다. 인간이 죄를 저지르는 것,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상처, 상함' 때문이라는 해석으로 들린다. 인간이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상처가 무겁고 깊어지는 것이며 같은 죄를 반복하면 '가중 처벌한다'로 해석되는 얘기도 나온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가인의 죄를 벌하려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벌이 칠 배일 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로다


근친 살인을 한 카인에 대한 신의 아량이 '살인 금지 부표'인데 '가인을 살해하는 자는 그 벌을 칠 배 받는다'였다. 같은 죄를 지은 카인의 자식 라멕에겐 '라멕을 죽이는 자는 그 벌이 칠십칠 배'라고 했는데 라멕의 죄가 아버지 카인의 죄보다 훨씬 커서 가중처벌했음을 보여준다. 라멕은 카인보다 더 많은 '상처'가 있어서 더 많은 죄를 지었고, 고로 인간이 점점 더 사악해지는 것은 그만큼 상처가 많아서인데, 그 인간의 상처는 직업과 도구 사용의 다양화(문명의 발달)와 비례하는 것은 아닐까!


라멕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라멕이 '여러' 마누라와 살았다는 '일부다처제'의 서술도 있는데 그의 죄나 상처가 크고 많았음은 일부다처도 큰 원인 아니었을까? 애초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게 내린 벌이 평생 '처자식 부양'과 '밥벌이의 고통'이었는데 마누라나 자식이 많은 라멕의 상처와 죄가 크고 깊어짐은 당연한 것! 선악과 섭취로 인한 분별력이 출산과 밥벌이의 인간 고통의 출발이라면 질투와 상처가 죄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라멕의 두 아내>-윌리암 블레이크. 테이트 미술관


죄의 증가, 점점 커지는 인간의 사악함은 급기야 신이 인간을 만든 자신을 한탄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신의 한탄과 후회의 결과가 그 유명한 '노아의 홍수'고 노아는 그 홍수 사태에서 제외된 인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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