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번영, 난 할례

내 맘대로 성경 읽기4-할례

by 보는 사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한복음1-1)라는 문장은 성경의 태초는 글이 아니라, 말이라는 뜻이리라. 불경이든 성경이든 그 먼 먼 옛날에 성자들의 '말씀'을 '글'로 저술해 펴낸 사람들은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그 시대의 특권층 '남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남성의 시각, 권력자의 관점에서 쓰인 이야기들이 꽤 많다. 역사는 지금 관점이 아니라 그 시대의 관점에서 보라고 했지만 21세기의 비기독교인 여자가 창세기의 남자 이야기들을 면면이 쉽게 수긍하긴 힘들다. 가부장적 성차별론,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결혼, 여성과 노비, 이민족, 동성애자 등 소수자 차별, 일부다처제와 서자 차별 등 각종 차별의 전시장이 성경이기도 하다.


먼저 '할례'-


1. 례는 왜 신생아 출생 후 ‘8일째 되는 날’ 했는가?


원시 부족 국가, 중동, 아프리카 일부에서 여성에게 저지르는 잘못된 종교만행, 여성학대 정도로 알고 있던 할례가 성경 속에 나왔다. 내가 알던 것과 다른 건 성경 속 할례는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행하는 종교적 의식이었다.

언어적 의미는 '잘라내다'라는 뜻이라는데 성경 속에서는 '포피를 베다'라고 나온다. 설명을 읽어 보니 흔히 말하는 '포경 수술'이다. 서구 사회에선 거의 안 하고 우리나라의 포경 수술률이 유독 높다는 뉴스를 듣기도 했는데 할례의 역사에 기독교 배경, 남자 신생아에게 먼저 시작했다는 걸 새롭게 알았다. 할례의 대상이 여자든 남자든 비자발적 신체 훼손이 신에 대한 믿음의 증명이라는 건 비신자 처지에선 권력자의 강압, 학대 행위로 여겨진다.


성경에는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하라고 그 기간을 분명하게 명시해 놓았다.

7일까지는 아기 몸에 손대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출산 후 칠일 동안은 산모와 아기의 외부 접촉을 엄금했고, 가족이 아닌 외부인은 삼칠일이 지나서야 산모나 아기를 보지 않는가? 단순히 산모와 아기의 면역력이 생성되는 의학적 기간쯤으로 막연히 생각하다가 언젠가 그 칠일, 삼 칠일의 내력이 궁금해서 좀 알아보았다.

왜 8일도 10일도 아닌 꼭 ‘7일’인가?


옛날엔 숫자 3과 7일을 중요하고 의미 깊은 수로 생각했단다. 혼자서 분리되거나 합쳐질 수 없는 독자적인 최초의 홀수 1과, 리되고 합쳐지는 최초의 짝수 2가 합쳐진 숫자가 3이다. 불교의 삼보(불보, 법보 승보), 성서의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에 쓰인 3이 그런 중요한 의미가 존중된 숫자라는 것이다.

숫자 ‘7’은 하늘(신)과도 관련 있다. 예전 사극엔 “칠성님께 비나이다”라는 기도문이 자주 등장했었다. 여기서의 ‘칠성’이 ‘북두칠성’으로 사계절 어느 때나 볼 수 있는 북두칠성을 하늘로 여겨 소원을 빈 것이다. 해서 의미 있는 날, 길일은 다 7일과 연관된 게 많았다. 단군신화에서 웅녀가 마늘만 먹고 버틴 끝에 인간 된 날도 삼칠일, 21일이고 인간이 죽은 후 이승에 머무는 기간도 칠칠일, 49일이라고 한다.


숫자 3과 7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의미가 있는 숫자인지, 성경 속에도 두 숫자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 할례에 관한 얘기 속에도 나왔다. 7일이 아기가 할례를 견딜 수 있는 몸을 비축하는 기간이라고만 짐작했는데 성경을 읽다 보면 이게 또 여성 혐오와 연관돼 있더라.


제라드 호에(Gerard Hoet, 1648–1733) <이스마엘에게 할례를 베푸는 아브람>

2. 산모에 대한 성서 속 여성혐오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청결한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
(레위기 12-2~5)



생리혈과 출산혈을 쏟는 더러운 여자여, 감히 그 불경스러운 몸으로 기도 장소를 드나들거나 기도 때 필요한 물건은 만지지도 말라는 엄포다. 출산의 조건인 생리와 출산의 필수 현상인 출혈을 쏟은 더러운 몸으로 성소엔 발 딛지 말라고 한 명시 문이니 읽으면서 진짜 기분 더러워졌다.

인류 최초의 시민 공동체 리더, 거리의 철학자, 좌파 운동가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구세주인 예수를 세상 빛 보게 한 것이 여자 엄마다. 그런 여자 몸이 더럽다는 말만으로도 짜증 나는데 그 더러움에도 ‘차별’이 있다. 남아 출산은 그 더러움이 33일이지만 여아 출산은 그 더러움이 66일로 배라니 태어날 때부터 성차별당한 것이다.



3. 기브 앤 테이크-난 번영, 넌 할례!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 표징이니라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세기 17-13, 14)


유아 학대라고 할 수 있는 할례는 언제 시작됐는가?

성서 속 최초의 할례는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다. 그가 99세, 그의 아내 90세가 됐을 때다. 백 세가 코앞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출몰하시어 너에게 새로운 자손과 땅, 대대손손 번영을 줄 것이며 너희 부부를 민족의 아버지, 어머님으로 기리게 할 것이라는 축복을 내린다. 기브 앤 테이크로 난 ‘번영’ 넌 ‘할례’로 서로 증명하자고 거래를 한 것이다. 남는 장사다 싶기도 하고 갑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든 을 아브라함은 자신을 비롯한 집안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시행한다. 그 뒤 아브라함의 후대에서 남자 아기가 생후 8일째 될 때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할례를 하게 된 것이 할례의 시초다.

할례가 신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이면서 아기 ‘이름’을 정식으로 지어 주는 기준 날짜임을 짐작게 하는 대목도 있다.

할례 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누가복음 2장 21절)


<아기예수의 할례>. 귀도레니


할례에 관한 하나님의 지시 중에는 '노예'나 '노예매매'를 자연스럽게 대할 뿐 아니라 그 노예는 '이방 사람(외국인, 이민자)'이라는 자국민 우선, 타국민 차별로 읽힐 수 있는 말도 나온다.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은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창세기 17장 13, 14)


유대인들은 할례 한 자신들을 선민이라 여기며 비 할레 인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의 입장을 거부하고 성전 뒤 뜰에서 예배하게 했다. 이 뒤뜰은 ‘비유대인의 뜰’이라고 불렀다.



4. 율법으로부터의 자유-할례 하는 형식보다 마음, 믿음이다.

하나님이 자신에 대한 믿음의 증빙으로 그 집안 남자 누구나 생후 8일째는 다 할례 하라는 명시문이 있지만, 세월 속에 수용하는 사람들 마음도 변하고 시대에 따른 고정불변의 법은 없음을 성경도 말한다.

하나님 말씀 위주인 구약은 우리 아버지들이 그렇듯 아무래도 좀 융통성 없고 자기 말만 최고라는 권위와 여자 무시하는 가부장적 태도가 페이지마다 나온다.

신약을 조금밖에 읽지 못했지만 언듯번듯 들여다본 예수님은 하나님보다 신세대라 그런지 확실히 사고나 행동이 많이 열려 있다.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아버지 하나님의 시선 높이와 세상에 직접 몸담은 아들 예수의 실존 체험에서 온 시각 차이도 있을 것이다.

신약 중에 기독교 자유 대헌장이라고 불리는 갈라디아서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융통성 없는 규율과 형식에서 벗어나 서로 사랑의 연대로 믿고, 실천으로 자유와 구원을 얻자는 설법이 많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라디아서 5-4)


할례에 대해서도 당시로선 상당히 열려 있는 태도를 보인다.


헬라 인(비유대인, 이방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갈라디아서 2-3)
도리어 그들은 내게 무 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갈라디아서 2-8)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라디아서 5-6)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바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라디아서 5장 12~15)



5. 복수 할례


<시메온과 레위의 음흉한 복수>


할례가 신과의 언약으로만 이행된 것이 아니라 ‘복수’로도 사용된 일화도 나온다.

야곱의 딸 디나가 할례를 받지 않은 하위 족속(성경엔 하위 계급도 아닌, 하위 '족속'이라고 표기돼 있다) 하몰의 아들인 추장 세겜에게 강간당한다. 강간해 놓고 ‘사랑해서 그랬으니 딸을 주시오’라는 협박을 한다. 아버지 야곱이 우물쭈물 결정을 미룰 때 디나의 오빠들이 거짓 허락을 한다. 우리 집안은 할례 한 집안 남자들만 혼인시키니 네가 진정 내 동생과 결혼하고 싶으면 할례 하라!

할례의 기준이 무엇이던가? 그 집안 남자들뿐 아니라 그 집에서 부리는 종까지 모두 할례를 해야 진정한 할례, 언약에 대한 완벽한 증빙 아니었던가. 강간한 디나에게 푹 빠져버린 변태 세겜은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그들의 성읍 모든 사람에게도 할례를 지시한다.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이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제 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읍성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을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창세기 34장 24~31)


창세기 편에서 유일하게 속 시원하게 읽은 장면이다.

성경에선 '여성할례'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데 이게 여성의 정조 강제와 성욕감퇴, 일부다처제의 남성 이기심과 관련된 인권말살의 신체훼손이다. 이 얘긴 다음 포스팅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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