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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Feb 23. 2023

나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되었다-한나 아렌트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든다>. 김은주

이 글은 읽고 쓰는 공동체 <행간>의 여성 세미나 5기 수업의 발제 과제로 쓴 것이다.

1월 9일부터 총 6주간에 걸쳐, 김은주가 엮고 쓴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의 6장을 각 챕터와 연계된 여성 작가의 단편 소설 6편과 함께 읽고 생각과 글을 나누었다. 나는 첫 장의 한나 아렌트를 발제로 맡게 되었다.

밥 버는 곳에선 무거운 옷 보따리를 버스로 나르고 잠자는 곳은 자주 이사하는 생활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보부상, 유목민 같은 부유감으로 진득하니 집중하는 시간 내기 부담스러운 일상을 산다. 최근엔 가게 만기, 어머니 발병으로 이번 세미나 신청일 직전까지도 망설였다. 그러던 중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현실 앞에서 내가 할 일은 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하고 정신의 근육을 단련하는 거더라'라는  어느 분의 말에 감화를 받아 읽기에 재참여하게 됐다. 그런데 마침 내가 발제로 선택한 한나 아렌트의 사유 속에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무의미한 죽음에서 흘러나오는 불안을 견디거나 권태와 환멸로 이를 피하기보다 활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결심했다.


인용된 문장의 ‘활동’은 기존에 내가 알고 쓰던 의미와 좀 다르게 아렌트가 ‘노동’, ‘작업’과 비교해 <인간의  조건>을 구분하는 개념으로 쓰는데 뒤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사유, 시작, 공공성’이 한나 아렌트를 읽으며 뽑은 키워드인데 먼저 유대인으로서의  아렌트부터 얘기해 본다. 아렌트는 모계 유대인으로 관습적인 유대 교육을 받았지만,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고  독일식 교육을 받으며 자라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길에서 ‘유대인’이라는 놀림을 받고 ‘이방인’이라는 자각을 처음 하게 된다. 그 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 강단에 설 수 없게 되고 1933년의 독일 의사당  화재 사건 이후 자신을 유대인으로 정체화하게 된다.

*독일 의사당 화재 사건: 1933년, 총리로 집권한 히틀러는 공산당을 무력화하고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권력 쟁취를 위한 선거법 개정을 실행한다. 선거 1주일 전 독일  의사당에서 대형 방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방화범이 정신질환자라고 보고했지만, 히틀러가 이를 주요 공산당원들의 계획된 범행으로 발표하면서 히틀러의 정권 획득이  대중의 지지와 함께 정당성을 가지게 된 사건이다.


어린 시절의 아렌트처럼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도 없이 살던 많은 사람이 단지, ‘선택 불가능한’ 조상의 혈통 때문에 무고한 학살 대상자가 되었다. 홀로코스트 과정에는 유대인을 독일과 독일 민족의 번영에 해악을 끼치는 위험한 이방인이라는 대대적인 여론전이 개입됐다. 악독한 고리대금업자, 더러운 부랑자, 성적  타락자, 위험한 반란자, 원숭이 같은 혐오적 대상으로 교육하고 세뇌했다.

아렌트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과 유대인 학살사, 폭력에 대한 저항은 좁게는  한국의 호남 차별과 광주 항쟁, 넓게는 수많은 소수자 차별로 연결되었다.


내 아버지는 전라도 사람이었다고 들었지만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셔서 제사상 사진으로 말고는 얼굴도 목소리도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정체성도 없는 처지라 대대로 영남인 가정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산 내가 아버지의 어릴 때 고향인 호남, 호남인의 정체성을 인식할 일은 없었다. 아버지는 본가가 전라도였지만 어릴 때 고향을 나와 돌 아가시기 직전까지 대구, 경북 모처가 생활 근거지였다. 게다가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은 나는 아버지 형제들과도 소원해져 큰아버지 장례식 이전에는 큰집에 간 일도 몇  번 안 된다.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은 잘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호남, 호남인에 대한 차별 발언과  부정적인 세뇌 속에서 자라 가해자 정서로 차별을 이해했다.

‘해태 상품은 껌이나 과자도 사지 마라, 가전제품이나 자가용은 대우 것을 사지 마라.’라는 말을 들었고 삼성과 해태의 야구 경기 날은 한일 축구전보다 격렬한 응원전이 펼쳐졌으며 경기장은 소주병과 욕이 난무하는 적대감 가득한 현장이었다. 어른들은 전라도 사람은 앞뒤가 다른 거짓말쟁이, 빨갱이, 광주는 빨갱이들의 집결지이고 광주 항쟁은 우리나라를 전복하기 위해 광주로 잠입한 무장 공비들을 토벌하다가 생긴 ‘사고’라고 말했다. 뱃속에서부터 호남 혐오 발언을 들으며 자란 영남인이 많을 것이다.


내가 당사자로 사회적 차별을 체감한 것은 취업할 때의 서류, 면접 전형에서였다. 당시는 이력서에 본적지를 기재할 때고 본적지는 아버지의 고향이다. 나는 얼굴도 모르고 몇 번 가 본 게 다인 아버지의 어릴 때 고향이 전라도라는 이유만으로  서류나 면접에서 차별적인 제외나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런 유무형의 차별은  영남에 사는 많은 호남인이 자신과 그들 부모의 고향을 충청도 등으로 속이고 살게  했다.


박정희의 부 집권과 선거법 개정, 독재 정치, 공산당에 대한 공포감 조성, 호남인에 대한 혐오와 유언비어, 산업화 발전의 경제화 등도 히틀러의 정치와 닮지 않았는가.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극빈자 등의 사회적 소수자들도 차별과 편견, 음모론에 시달리고  다수성이 소수성 가해에 동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호남 고향의 아버지, 과부  엄마, 저학력, 늙은 미혼, 극빈이었다가 극빈만 겨우 면한 무주택자로 이 사회에서의  차별과 편견을 오래, 골고루 경험했다.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라서 공격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옹호해야 한다. 독일인, 세계시민, 인권의 지지자로서가 아니라, 그 외의 그 무엇으로서가  아니라.”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서 구체성으로 나를 증명하고 부당함에 대응해야지  동족, 평화, 인류애 같은 거대 담론으로 두리뭉실하게 화해하고 넘어가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저 인용문에서 유대인을 호남인/성소수자/장애인/여성/비정규직 등으로 바꿔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국가, 혈통, 몸, 성, 가난 같은 ‘비극적 운명에  순응하거나 이를 절망으로 덮어버리지 않고 그러한 운명의 의미를 찾아내고자 분투한  활동을 멈추지 않는’ 저항과 연대 덕분으로 우리는 혐오나 차별, 학살이 나쁘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 산다.


 1. 비판적 사유


자신마저 문젯거리로 불화하는 사유가 실존의 시작이라고 한 아렌트는 공감의 사유가 아닌 ‘비판’하는 사유를 추구했다. 비판은 ‘의심’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모두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면 그게 정답인가라는, 자신과 세상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문젯거리를 찾는 사유다.

긍정하는 사람은 편하지만 의심하는 사람은 불편하다. 외부, 타인과 세계는 물론 나 자신과도 끊임없이 불화할 수밖에 없다. 아렌트는 이를 “나는 나 자신에게 문젯거리였다”라고 말한다. 비판은 다수의 호감이나 동의에 다른 의견, 의심을 보이는 것이고  소수 약자가 다수 강자를 의심하면 배척당한다. 사유하는 자, 자신을 문젯거리로 성찰하는 사람은,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며 행위한다.


얼굴을 돌리지 않고 직면하겠다는 용기이며, 질문을 제기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결정. 인간 모두에게 도착한 어떠한 삶의 방향을 나 혼자서가  아니라 모두와 더불어 행할 때, 그제야 그 방향이 선명해진다.


아렌트는 자신과 관계의 불화보다 더 위험한 것을 ‘사유의 마비’로 봤다. 아이히만 취재를 통해서 그가 본 것도 사유를 마비시키는 억압적 체계가 만든 '악의 평범성'이었 다. 아렌트는 아이히만 전범 재판에 참석한 후 그가 뿔 달린 악마, 사이코패스같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인간임을 본다. 평범한 사람들 역시 어떤 조건에서는 악행에 가담할 수 있고, 비판적 사유 없는 복종과 맹목적인 일의 충실성이 악에 동참하 게 하는 것이라는 통찰을 한다.


전범 재판 이전에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라서 공격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유대인으로 서 자신을 옹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던 아렌트는 전범 재판 후 “아이히만을 처벌할  정의가 유대인만의 것이라면, 유대인은 전쟁에서 나치에게 희생된 비유대인의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로 생각의 전환을 맞는다. 이 발언으로 이스라엘인과 유대인 양쪽의 공격을 받았지만, 아렌트의 정의는 ‘보편타당성’이었다.

따옴표 안의 말을 전두환을 처벌할 정의가 광주만의 것이라면, 세월호나  이태원 사고가 그 희생자(가족)의 죽음만이라면 등으로 바꿔서 읽게 된다. 아렌트는 비판적 사유의 결여와 함께 부당함에 관한 대중의 무관심이 사회적 악을 성립하게 한다고 보았다.


2. 시작-시작하는 자만이 인간이다 


철학은 대체로 먼 곳, 높은 곳의 형이상학적 학문으로 여겨져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에 가까운 형이하학적인 나 같은 사람에겐 가깝지 않은 글, 학문이었다. 그래서 온전한 철학책은 각 잡고 읽은 게 몇 권 없고 아렌트도 다른 철학자나 작가의  글에서 언급한 것을 단편적으로 스치며 읽거나 들었을 뿐이다.  이번 시즌  선정 도서 중 한 권에 수록돼 그의 사유에 비로소 막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됐다.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는 어떤 세계로의 진입, 새로운 일의 ‘시작’ 일 것이다. 아렌트는 이 ‘시작’을 자신의 철학 개념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는지 시작에 관 한 수많은 말이 있었다.

시작은 인간 최고의 능력, 인간은 새로 온 자이면서 스스로 시작하는 자발적 능력을  지닌 자, 인간은 하나의 시작, 누군가의 시작, 시작하는 자만이 인간이고 시작할 때  탄생된다


죽음, 사후를 철학적 주제로 삼았던 당시의 남성 철학자들과 달리 그의 철학은 지금, 금시의 시작이었다. 시작을 ‘탄생’과 동일 선상에서 본 아렌트의 사유는 골방 안에서  거울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나는 누구인가 같은 나르시시즘적 자아 찾기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가치가 있는 비판적 사유였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어떤 종류의 집단에 속하게 된다. 탄생성은 우리에게 공동체에 속함을 깨닫게 하며, 이것은 공공성을 향한 노력으로 발전한다.


시작은 안 하던 것을 처음 시도하는 첫걸음, 새로운 세계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 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과거와의 청산, 문을 닫고 나오는 행위이기도 하다.


3. 공공성-빚 없는 삶은 없다 


SNS 친구의 프로필 소개문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함께하는 개인> 

아렌트의 ‘단독자로 사유하지만, 함께 사는 세계에서 행위하고자 하던’ 문장을 읽으니 그 프로 필이 생각났다. 아렌트는 개인적 관조가 아닌 공공적 사유로서의 철학을 고민하면서 <노동, 작업, 활동>을 구분한다. 생존을 해결하기 위한 단순한 돈벌이로 그치면 ‘노동’, 노동에서 어떤  의미와 보람까지 얻으면 ‘작업’, 자기 하는 일이 공공성을 가지면 ‘행위’라고 정의한다. 나는 아직 주로 노동, 가끔 작업이다.


탄생과 시작, 사유와 공공성을 한 축에서  본 아렌트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기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서 주인공 무제는 나는 빚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화학 약품이 버려진 강, 누군가의 지나치게 값싼 노동력으로 많은 사람이 더 편하거나 싼값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빚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빚이 없다”라고 당당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당일 배송, 무료 택배라는 거도 결코 무료가 아니다. 배송인, 판매자, 생산자 그 누구의 부담, 혹은 모두의 희생 이 들어간 거 아니겠는가.

인간성은 혼자 힘으로는 절대 획득되지 않는다. 인간성은 홀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를 공공성의 영역으로 향하는 사람들만이 함께 성취할 수 있다.


단독자로 비판적 사유를 하고 공공적 행위를 추구했던 아렌트는 노동, 생산, 자본적  결과와 연결된 현실 속 실질적인 노동, 정치 쟁의 같은 것엔 거리를 두거나 반대했다고 한다. 이는 뒷장의 쥬디스 스피박의 선명성과 비교되기도 하고 그의 사유나 행위는 토론과 담론이 주가 되는 광장에서(만)의 공공성, 관념적인 이론이라는 인상도 들었다. 아렌트의 책을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은 무지한 상태의 요약판 읽기만으로 ‘비판적 사유’를 하긴 무리라 이번 발제는 김은주 저자가 해석한 아렌트의 생각을 따라가는 정도로  다.


김은주의 책, 1장인 한나 아렌트와 같이 읽었던 단편 소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영웅> 맹목적인 일의 충실성과 인정 욕구가 파생한 '악의 평범성'을 스릴러적 스토리로 섬뜩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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