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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Aug 12. 2023

기록을 찍다

지역 인쇄업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 문화사


윤흥길의 <무제>란 소설이 있다. 윤흥길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인간소외를 많이 다뤘는데 이 소설도 그렇다. 인쇄소에서 원고에 적힌 글자대로 활자를 뽑아내는 일을 하는 인쇄공인 '문선공'이 주인공이다. 과거엔 없어서는 안 될 전문 기술자였으나 거의 모든 업무 분야가 전자, 자동화가 되면서 사라진 '과거의 직업(명)'중 하나다.

이 책은 1978년, 내가 채 10살이 안 됐을 때 나왔고 나는 30대 초에 읽었는데 그때 이미 문선공이란 직업은 사라져 가는 시기였을 거다.     

책 속엔 출판인들이 모여 주인공의 별명인 봉무제의 실력과 기행을 얘기하면서 인쇄 출판에 대한 낙담과 자부심을 같이 드러내는 대화가 있다. 모든 게 산업 자본화되는 시대에 인쇄, 출판 이 두 부분만 여전히 수공 작업이라 영세성을 면치 못해 사양길이라는 비관과 함께 기계가 편집, 교정, 좋은 활자는 만들 수 없다는 은근한 자부심, 직업적 낙관이 함께 드러나는 장면이다.


출판 관계자가 아닌 나도 자주 듣는 '인쇄, 출판업은 사양길이다.'라는 말이 1978년의 책에도 벌써 나온 걸 보면 위기감은 빨리 와서 오래가는 것 같다. 편집, 교정은 아직 사람이 많은 부분을 손보지만 이젠 예술, 번역도 하는 AI가 생기는 시대니 그 역할도 기계가 대체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활자'는 <무제>의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되게 기계가 더 좋게 많이 뽑아내고 있다. 출판업은 예전 같지는 않아도 아직 '사양'은 아닌 것 같다. 반면 인쇄업은 '사양'에 가까워 보인다.     


90년대 대구에서는 남산동, 대신동 등의 인쇄 밀집가 외에도 세가 비싼 동성로 주변, 내가 살거나 일하던 동네에서도 인쇄소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또 지인, 친구 중에도 인쇄업 종사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남산동 인쇄 밀집가 외에는 인쇄소가 거의 사라졌고 인쇄소 종사자 지인들도 그만두거나 투잡 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기록을 찍다>는 과거의 기억, 한때 대구의 주요 산업이었다는 점, 친구와 지인들 종사 업종이라는 것, 나도 20대 때 알바로 짧게 한 달 정도 했던 분야라는 친근감과 순간적 호기심으로 사게 됐다.      

단순히 책 속 글자와 표지 인쇄를 하는 작업 정도로 생각했던 인쇄 과정은 생각보다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하고 그런 과정은 비싼 기계, 공간, 다른 기술 과정 등의 이유로 한 인쇄소에서 만들어지는 경우는 잘 없고 여러 곳에서 분업한다는 걸 알게 됐다.


책을 통해 기억을 돌이켜보니 당시 내가 한 일은 제책과 제본 과정이었다. 인쇄된 종이를 번호대로 쌓아 풀칠해서 한 권의 책을 만드는데 내가 일했던 90년대 초에는 풀칠을 일일이 사람들이 했었다. 요즘은 풀칠 기계로 많이 하지만 아직 수작업을 병행하며 ‘풀칠 천 개에 4~5만 원’ 정도의 임금을 준다는 것에서 이 업종의 저임금 상황과 인력난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종이를 순서대로 좌에서 우로 병렬식으로 주욱 늘어놓은 뒤 번호순대로 팔뚝에 쌓아 올려 한 챕터 분량이 되면 또 다음 책 분량을 같은 식으로 쌓아 올리던 방법으로 일했다. 단순 반복작업이지만 방심하면 한 페이지가 바뀌거나 빠지거나 두 페이지가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것을 풀로 다 붙이기 전에 발견하지 못하면 전체 작업을 다시 해야 하고 납기 차질, 받은 돈보다 제작비가 더 나갈 수 있는 대형 사고가 되는 일이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단순 반복작업이라 식후엔 집중력이 떨어져 식곤증으로 잠도 오고 긴 선반대 같은 작업대에서 좌우로만 오가니 어지럽기도 했다. 잠을 깨기 위해 직원들끼리 여기에서 저기까지 누가 빨리 수거하나를 경쟁하다가 페이지가 틀어져 2차 검수자에게 욕먹었던 기억도 난다.

책  속 이미지

312 쪽으로 요즘 단행본으로는 두께감 있는 편이지만 현장 취재, 구술이 주를 이룬 글이라 가독성이 좋았다. 인쇄업의 흥망성쇠를 현업에 오래 있는 종사자들과 같이 돌아보며 한 직업의 성쇠는 단순히 한 개인의 성과나 실패가 아닌, 사회 문화사적 맥락과 다른 분야의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태생하거나 사라짐을 재확인했다.

그 속엔 변화에 적응 못 한 개인의 실패가 골목골목에 쌓인 것도 있었고, 망해간다는 시류 속에서도 빠른 시대 적응과 변화로 살아남거나 더 번성한 얘기도 있었다. 성공의 비법보다 망한 곳과 망한 자들의 비밀에 더 귀가 열리는 것은 윤흥길이 <무제>에서 말 한 '모든 꺼져가는 것, 모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지니는 일종의 비극미'에 대한 개인적 편벽일 수도 있다. 성공보다는 망하는 것 속에 인간과 세계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얘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인쇄업 현장에서 최소 30년, 보통 50년 정도는 일 한 사람들의 구술에 많이 기댔다. 현업에서 수십 년 있은 사람들의 90%는 ‘앞으로 인쇄업은 10년 안에 소멸할 것이다.’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중에서 특히 “내게 필요하면 기계지만 쓸모없으면 고물이다. 이제 내 기계는 고물이다.”라며 빈 가게, 멈춘 기계 앞에서 몇 번의 고사 끝에 인터뷰에 응해준 할아버지의 말이 가슴 아프게 기억된다.     


일반 학술 연구서와 달리 직업 기록물은 현장, 현장 속 사람들의 취재 없인 만들어질 수 없는 저술이다. 한 때는 서울 을지로보다 대구 인쇄골목이 더 크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인쇄 호황기였던 때는 이 도시의 인쇄소가 2000여 개였는데, 최근엔 500여 개로 그것도 40%가 영세업체라고 한다. 책 속에서 ‘영세’의 기준을 ‘셔터문’으로 설명하는 대목은 종사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말이라 인상적이었다.

‘셔터문이 하나면 기계 하나에 사장 혼자 일하는 집이고 셔터 네 개면 기계 두 세 대에 직원 한 둘은 있는 집이다. 이 골목엔 셔터 한 개 업장이 많다.’ 호황일 때는 인쇄 기계 한 대에 직원 5~6명이 일 했는데 지금은 한 대에 한 명씩 일하는 데도 많고 그마저도 운영이 안 돼 기계를 멈춘 곳이 많다고 한다.      


대구 인쇄업의 번창은 오랜 유교 문화의 중심지로 교육의 발달과 문인, 예술가가 많은 지역적 특성이 낳은 산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전쟁특수'도 한몫한 거였다. 전후 대구는 군대와 공공기관의 피난처로 여러 가지 전쟁특수 문화를 누렸는데 그중 금속, 섬유 등 주력산업도 급성장하면서 인쇄업도 같이 성장했다고 한다. 지금은 전 산업이 자동 전산화와 문화, 소비의 변화로 제조업이 대체로 쇠퇴했지만 90년대 이전엔 제조업의 발달이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친 걸 이 책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6.25 때 문인들과 현암사, 동아, 학원사 등의 출판사가 대구에 많이 내려오면서 인쇄업이 더 발달했는데 ‘전쟁’과 ‘대구문화예술의 르네상스’를 연결한 부분, 구미 산업단지의 발전과 퇴락은 대구 인쇄의 흥과 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말들은 그곳에서 일생을 보내며 현대사를 몸으로 통찰한 얘기라 기사나 책에서 듣는 것과는 다른 배움의 울림이 있었다.

“문화예술은 사람들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발전하니까 그런 교류의 장이 전쟁 때문에 생긴 거니까 전쟁은 대구 문화예술의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인쇄업계와 잉크 업계, 신문사와 인쇄업계의 충돌과 갈등은 지금의 의사들과 약사들의 갈등과 비슷한 면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밥그릇 싸움만큼 정직하고 치열한 게 없잖은가.     


인쇄 기념관에 전시된 활자 인쇄. 책 속 이미지

인쇄 기계가 비쌀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예상을 초월하는 가격이었다. 싼 게 1억 정도, 10억 내외는 중저가고 컬러나 디자인 기능이 있는 고급 기계는 몇십억 도 보통, 몇백억짜리도 있다. 독일, 일본제가 대부분이고 고액이라 직수입만 되고 고장 나면 그 나라 기술자가 와야 고칠 수 있다. 한국이 세계적 위상이 높아졌다지만 산업 기술의 역사가 오래된 독일을 제외하고도 아직 고급 기술 산업에서는 일본도 따라가려면 멀었다는 현실이 이 책에서도 읽혔다.

일산 상품 반대 운동이 국민적인 호응을 얻으며 활발했을 때, 한쪽에선 이런 자조도 나왔던 기억도 나서 씁쓸했다. “농기구부터 병원 엑스레이 기계까지 일본산 없는 데가 없는데, 일본산 불매는 현실성 없는 허상이다!”

한국은 '빨리'잘하는데 '오래'하는 건 무능, 퇴물로 취급하고 기계로 사람을 대체하는 속도만큼 사람을 현장에서 제거하는 것도 빠르다. 연구하는 고급 기술자는 우대하지만, 그 기술을 기계로 만드는 사람, 기계를 움직이는 사람은 천대한다. 머리 좋은 사람 많기로 세계에서 손꼽는 한국에서 저런 기계는 못 만드는, 아니 안 만드는 이유 아닐까 하는 반문이 들었다. 그래서 로봇 수술하는 첨단 기술의 의사는 많아도 수술에 필요한 도구, 연장들은 만들지 않는 걸까 하는 씁쓸한 의문. 책상과 수술대 위의 연구자만 우대하고 거기 쓰이는 연장, 도구를 만드는 공장 사람들은 우대하지 않아서 없는 건 아닐까.     

만질 수 있는 돈, 가격은 쌀값이나 최저임금에 비교하고 구경하기 힘든 덩치 큰 가격은 집값에 비교하게 되는 게 내 버릇이자 한계인데 기계 한 대 값은 작게는 집 한 채, 많게는 수십 채 가격이면서 사용 기간은 예전보다 짧다. 높아진 소비자 안목과 책의 외형이 중요해진 시대성에 맞춰 다양한 종이와 컬러, 디자인의 고급화, 빠른 유행 변화로 기계 교체 시기는 10년 미만으로 짧아지니 웬만한 업체는 투자 대비 기계 회전율, 수익성을 뽑기 전에 재투자하기 힘든 환경도 낙후의 한 요인이다.

대구도 파주출판단지 같은 대형 출판단지를 조성해 시에선 그쪽으로 권유하지만, 자본과 기계가 기업 규모로 준비된 곳만 입주 가능해 영세 업장에선 그림의 떡이다.     



인쇄업 불황으로 지금은 다른 일을 하면서 논문이 많이 나오는 시기에만 부업으로 교정 일을 하는 지인이 있어서 ‘논문’이 인쇄소의 대목, 대품이라는 거, 요즘은 그게 확 줄어서 일거리가 더 없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이 책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종이 활자 시대에는 한 사람 논문의 보통 발행 부수가 1,200부 였는데 최근엔 심사용 5, 10부에 불과하고 그것마저도 ‘복사집’에서 하는 경우가 많단다. 또 7, 8백 부씩 만들던 교재도 2,3백 부로 줄었다고 한다. 교재나 문집 등 학교 출판물이 전반적으로 대폭 줄었는데 그마저 학교 자체 출판을 하는 데가 늘어서라고 한다. 학교의 기업화, 전산화로 인한 종이책 발행 감소 등 여러 요인이 인쇄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인쇄업의 발달과 퇴락을 언급하는 얘기 중 특히 인상적인 대목이 두 가지 정도 있었다. 먼저 '유흥업' 관련 얘기다. 대구 인쇄업 호황 시기엔 인쇄소가 대구에서 땅값 젤 비싼 동성로 쪽에 많이 포진돼 있었는데, 유흥업소가 성하면서 ‘술집에 밀려’ 그 인근 ‘재개발이 잘 안 되는’ 임대료 싼 남산동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때는 작은 지역서점, 갤러리, 화방, 고서점도 각기 그 색깔을 달리하며 동성로 일대에 포진돼 있다가 어느 순간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서점만 남고 사라져 갔는데, 그것도 '유흥업'이 영향을 미쳤을까 상상해 본다.


두 번째는 인쇄업 발달의 배경 중엔 '재래시장'의 번성이 큰 역할을 했다는 거다. 얼핏 생각하면 서점도 아닌 시장이 인쇄업과 무슨 상관일까 싶은데 대형마트나 온라인 몰이 생기기 전에는 모두 재래시장을 이용했고 그때 시장에서 쓰던 '양곡수매표'나 '전표' 인쇄가 큰 몫을 담당했다는 거다.     

인쇄업계의 ‘인건비’와 ‘인쇄 단가’도 인쇄업의 흥과 쇠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표였다. 30년 된 기술자가 처음 발을 들인 시기, 당시 월급이 50만 원 정도일 때 300만 원 정도 받았는데 지금 350만 원 받는다고 했다. 당시 인쇄업이 얼마나 호황이었는지와 함께 인건비 상승이 2000년대 이후 전 산업의 발목처럼 회자되지만 또 저런 그늘, 이면도 있는 것이다. 인건비 외에 인쇄 단가도 20년 전에 5~7천 원이었는데 지금도 5천 원으로, 인쇄량이 많아지면 3천 원으로 떨어진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젊은 기술자 신규 양성, 진입이 없어서 점점 쇠퇴하게 된다며 인쇄업을 ‘문화 지식 산업’으로 생각하고 육성, 지원해 주길 바라는 종사자의 바람은 지역 인쇄업의 경제지표와 함께 종사 직업에 대한 인식 변화의 간절함이 같이 담겨 있었다.

일하는 보람을 묻자 이 업종에서 보기 힘들다는 청년 기술자가 자기가 배달시켜 먹던 음식 스티커나 전단지, 오가며 봤던 광고지 만드는데 이렇게 복잡하고 많은 과정이 필요한지를 몰랐는데 내가 그런 것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 그런 광고지를 볼 때마다 작업자로서의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다는 말도 감동적이었다.     

젊은 기술자 유입, 육성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디자인 교육이 현장, 현실과 많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교육 현장과 정부에서 유심히 들을 대목이었다. 일이 힘들고 인식이 낮은 기계 조작보다 디자인 쪽은 젊은 층 유입이 있지만 학교 교육은 현장에서 2.30%밖에 적용 안 된다. 배우는 기기부터 현장은 맥인데 학교는 윈도 기반으로 둘은 단축기, 자판부터 달라서 현장에 오면 6개월은 새로 다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가르쳐 놓으면 서울 간다는 말에 이어지는 아래 인용은 기술자의 자부심과 후진 양성이 안 되는 현실을 안타까운 심정이 집약된 말이었다.

“우리는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을 오퍼레이터라고 부르고 인쇄 장비를 다루는 사람을 기장이라고 부릅니다. 기장, 곧 캡틴인 거죠. 항공기만큼이나 최첨단 장비를 다루는 사람인데 기장 말고 뭐라고 부르겠어요. 인쇄 장비 한 대당 몇십 억대, 몇백 억대까지 하는데, 다른 산업이랑 비교해도 이 정도로 비싼 장비가 잘 없잖아요. 이렇게 퀄리티 높은 직군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대우를 안 해 줬기 때문일 겁니다.”     


인쇄된 종이를 자르는 기계도 전자동화 되기 전 수공 작업을 겸하던 구 경력자와 기계 작업만 배운 신규 작업자의 차이를 말하며 인쇄를 맡긴 의뢰자도 ‘현장에 와서 기계 돌리는 걸 한 번씩 보라고’ 말하는 종사자에게서도 기술의 자부심, 장인 정신이 느껴졌다.

“기계를 완전히 믿지 마라. 절대 믿지 마라. 그렇게 이야기해요. 기계를 믿으면 믿을수록 오히려 작업 신뢰도가 더 떨어질 수 있어요. 기계도 틀릴 수 있으니까 사람이 한 번 더 확인해야 돼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일할 줄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저한테 만약에 재단기로 종이를 지폐 크기랑 똑같이 자르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제 눈엔 그것밖에 안 보여요. 만날 그것만 연구했으니까.”     


지역의 산업을 문화, 역사적 관점에서 보존시키길 바라며 하는 말 중엔 나도 모르는 지역의 역사도 있었는데 ‘골목’에 관한 말이다.

“대구가 골목으론 최고다. 부속, 깡통, 공구, 돼지, 약전 골목들이 많은데 이런 한 업종 전문 골목이 잘 없다. 지역의 자랑으로 보존시켜야 한다.”

인쇄 전문 골목인 남산동은 지금 카페 골목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문 닫은 인쇄소가 카페로 업종 변경되는 곳도 있고 이층 다 쓰던 곳에서 일층은 인쇄소, 이층은 카페로 축소 운영하는 곳도 있고. 기계를 겨우 돌리거나 멈추는 상황의 오랜 종사자들은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골목의 문이 다 닫혀 폐가가 되는 거보다는 뭐라도 열려 있는 게 낫다는 말에선 자력으로 안 되는 것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자포적인 상황이 같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이 책 속에서도 신구 갈등까지는 아니지만 세대 차이가 드러난다. 옛날 하던 방식을 고집하며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고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오랜 경력자와 노동 대비 저임금과 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저인식, 열악한 작업 환경, 대화 불통으로 젊은 사람들이 오래 있기는 힘들 것이라는 젊은 작업자의 말은 양쪽 나름 다 경철할 만한 내용이 있었고 그것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단시간에 극복되기는 힘든 문제였다.


이 불황 속에서도 지역에서 직원 수십 명을 채용할 수 있는 저력 있는 중대형 인쇄소도 있었지만, 개인 대표의 창의적이고 시대 변화에 발 빠른 사고 외에 출발 선상이 다른 여러 지엽적 요건도 있었다. 책에선 비교 언급하지 않았지만 30년 이상의 오래된 영세 인쇄소 대표들 상당수는 빈곤한 가정에서 의무 교육을 겨우 마치거나 그마저 마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지역의 규모 있는 인쇄소로 언급된 업장 대표들의 공통점도 있었다. 그 시절 흔치 않은 대학 졸업자로 교육과 기계 재투자가 가능한 자본과 인맥을 갖춘, 출발 선상의 조건이나 배경 차이가 났다. 셔터 하나, 많으면 세 개의 영세 업장 대표들 대부분은 고등학교도 겨우 나와 몸 하나로 성했다 망했다 하느라 재투자, 재교육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좋았던


-직업 기록물이 가지는 사회, 역사적 의미를 같이 톺아보는 의미가 좋았다.

-인쇄 골목 안의 카페 등 다른 업종 인터뷰를 같이 넣어 특화 골목의 활로와 인쇄업의 재기를 골목 안 다른 상권과 연결해 모색한 부분도 좋았다.

-인쇄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서점, 그중에서도 70년 된 지역의 중고 서점 ‘월계서적’의 인터뷰를 넣은 것도 좋았다.     


인상적인


-코로나, 비대면 문화로 지면 인쇄는 줄고 박스 인쇄는 증가했다.

-문집, 족보 전문 인쇄소인 '대보사에 3년 이상 근무하면 경북대학교 한문과 대학원에 입학' 자격이 주어졌고 경북대 한문과 3, 4학년의 학점을 주었다.

-<월드인쇄>는 직원이 스무 명 넘는데 코로나 불황 속에서도 인원 감축이 한 명도 없었다.

-봉투가 주력 인쇄물인 인쇄소인 <경북 프린팅>은 직원이 90명이다.

-선거홍보물도 거의 다 서울로 간다. 무소속만 지방에서 찍는다.

(서울에 일거리 들고 가는 의원 명단 밝혀서 득표에 반영하고 싶다.)

-브라우니를 밀고 싶지 않고 치즈 케이크를 밀고 싶은데 브라우니를 못 이기더라고요.

-활자를 좋아해 사 모으다 연 카페에 인쇄기를 직접 갖다 놓고 매장에서 쓰이는 라벨, 스티커를 직접 출력하고 라떼 플레이팅도 인쇄 느낌의 레터링으로 한다.     


아쉬운


-‘인쇄업’을 대상으로 한 기록물인데 책이 너무 정직하다. 종이 재질은 좋고 가독성 좋은 행, 자간 같은 글자 자체의 편집은 좋은데, 책 속 사진과 전체적인 디자인이 올드해 보인다. 기관의 의뢰, 혹은 어떤 공모를 위한 예산에 맞춘, 전문 편집자나 디자이너 없이 만든 책이라는 느낌을 주는 외형이다. 기왕이면 인쇄 장인들이 만들면 이 정도 책이 나온다는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외형이었으면 이 책의 의미가 더 살았을 건데 아쉽다.

-가장 아쉬운 점은 ‘대구’의 인쇄(업) 역사를 다뤄놓고 정작 책은 ‘부산’ 출판사에서 만들었다는 모순이다. 출판사 ‘산지니’는 나도 이전에 거기서 나온 시집을 괜찮게 읽어서 좋은 인상이 있지만, 대구에 이 책 만들 정도의 출판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책 속에는 ‘대구의 인쇄는 부산이 못 따라왔다.’라는 말까지 언급하고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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