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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혠나날 Jan 24. 2024

좋아하는 것과 얼굴들



작년에는 장기하님을 3번 보았다.

한 번은 포항재즈페스티벌, 한 번은 서울재즈페스티벌, 한 번은 그의 단독 콘서트에서.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장얼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나른하면서 독특한 음과 가사가 특별하고 싶었던 여고생의 취향에 딱 맞아떨어졌다. 뭐 물론 그와 동시에 에픽하이, 드렁큰타이거, 신화, Muse 등 다양한 음악을 들었지만. 음악에 있어서 나는 취향이랄 건 없고 그저 잡식이란 말이 어울릴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장기하님을 개인적으로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가 무한도전이나 다른 tv 프로그램에 나오면 다른 연예인들보다 더 흥미롭게 지켜보긴 했지만 그래도 그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한 마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장기하님을 직접 찾아가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그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DJ 파티에도, 소극장 무대에도 갔던 것에서부터 그의 책(상관없는 거 아닌가?)을 읽고 종종 SNS도 챙겨보게 되었다. 장기하님에게 특별한 소식이 있으면 나는 자연스레 친구에게 문자를 하고, 장기하님의 스케줄이 있으면 우리는 바쁜 일상을 짬 내 가끔씩 만난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면

까치들의 다리가 놓이는 칠월 칠석처럼,

대출이자와 버거운 회사 업무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더 서툴었던 우리를 만나는 날이 찾아온다.



민들레 홀씨처럼 흔들리던 우리 어린 날의 잔상과

야자가 끝나면 주황 가로등을 올려다보던 저녁과

공원 벤치에 앉아 웃으며 흘려보내던 가을낙엽과

여름방학 방과후 수업을 위해 양재천을 지나며 맞았던 바람 같은 그 시절의 감성이 얼기설기 엮이는 것이다.  

 

나는 장기하를 보고 있는 건지,

내 친구 유빈이를 덕질하는 건지,

지난날의 어린 나 또는 우리를 반가워하는 건지 모른 채 그저 그 모든 것을 뒤섞고선 손을 들고 몸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그 순간을 행복해한다.


조금 더 솔직하고 지금보다는 덜 복잡했던 그때처럼 그냥 몽글한 구름에 올라타듯 시간여행을 한다.

그러면 금세 행복해진다.

 

좋아하는 것에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좋아하던 것의 모습은 두리뭉실한 추상화처럼 뭉뚱그려져 애틋해진다.

내가 좋아했던 작은 눈송이는 점점 굴러지고 부풀다가 커다란 눈사람이 되어, 좋아한 것은 그 자체를 넘어 또 다른 의미와 시간을 담는다.


내가 오랫동안 좋아한 것에는 항상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함께하는 얼굴이 떠오르고 함께한 시간들이 따라오고 그럼 그 모든 것들이 물큰하고 터져 다시 설레게 된다.


내가 한 가지를 오래도록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소중한 이들이 함께이기 때문이란 걸 이제 안다.

나만의 취향도, 지조 높은 끈기도 아닌 나와 함께 그 시기에 좋아했던 우연과, 함께 좋아해 온 시간과, 오래도록 함께 지켜온 기억 때문에, 그래서 더 소중해진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 언제든 항상 어려진다.

함께이기때문에 어려질 용기를 갖는 것도 쉬운가 보다.


사소하고 작지만 내가 꽤나 오래도록 좋아하는 모든 것들. 메이플도, 장기하도, 신화도, 해리포터와 지브리 영화도. 그저 모두 오래오래 함께 좋아하고 싶다.

나의 덕질도 소중한 얼굴도.





가끔씩 오래 보아도 긴 시간 동안 변치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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