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이란 녀석은 원하지도 예상하지도 달가워하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신경의 자극은 놀라울 만큼 창의적이었으며 적극적이었고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 예의를 쌈 싸 먹은 대범함을 자랑합니다. 생애최초 슈팅스타를 맛보았을 때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동그란 존재가 그러했듯이 수두 바이러스는 그렇게 피부 신경 속에서 팡팡 터지는 자극을 선사했습니다. 그 녀석들은 자극의 잔치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를 터트리고서는 이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창의성이 돋보입니다. 어느새 나의 한쪽 다리에서만 펼쳐지는 자극의 향연이 이제 조금씩 받아들여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적극적으로 병원 침대 위에서 생활하며 신경에 내리꽂는 주사도 맞고 있지만 아직은 이러한 자극의 잔치가 몇 주만 더 갈지 아니면 옆에 계신 병원 동기 할머니의 경우처럼 평생을 짊어지고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체념은 몸에 대한 비겁함도 무책임한 방임이 아니었습니다. 수두 바이러스에 대한 전쟁에서 기승전은 인간적인 노력을 함께 들이부을 수 있었지만 결이란 것은 절대 나의 의지나 바람이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엉덩이에서 다리 끝까지 바이러스의 활동 무대는 나의 몸 상당 부분이었습니다. 작은 벌레가이리저리 사방팔방 기어갔다가는 큰 송충이도 이에 질세라 스멀스멀 불쾌한 따가움을 주었습니다. 쿡 찌르는 바늘 수 십 개가 등장하기도 하고 한밤중에 자는 나에게 칼끝이 무자비하게 등장해 벌떡 일어나 자던 잠을 못내 마무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형벌로 곤장을 내린 적이 없었지만 내내 엉덩이는 얼얼하여 방금 누군가가 기다란 막대로 곤장을 쳐댄 듯이 엉덩이가 뻐근하였습니다. 스트레스와 누적된 피곤함이 밤이 되어 자연스레 어둠이 찾아오듯이 내 몸에 가까이 서 있었고 그다음엔 병마라는 녀석이 찾아와 병마에 시달리는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알려줍니다.
이 병마 덕분에 나의 아버지는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시간을 벌고 있었던 대상포진에 대한 경각심을 얻어 자연스럽게 예방접종을 하셨습니다. 이런 주위에 끼칠 수 있었던 긍정의 변화에 위안을 삼으며 대상포진이 아직은 남겨놓은 오묘한 자극을 끌어안으며 오늘 밤도 병원 침대에서 잠을 청해봅니다.
나는 처음 엉덩이에 발진이 올라왔을 때 대상포진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정을 알지 못하는 처음 이사를 온 낯선 도시에서 대상포진이란 그리 낯설지 않은 흔한 질병에 가까운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8개나 되는 병원을 헤매며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신속한 진단과 치료의 방해요소는 일요일 발병, 남편의 출근, 첫 방문한 병원에서 진단받지 못한 불운, 5살 아이 육아였습니다.
맨처음 일요일 진료중이라고 검색 결과에 뜬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대상포진 같아요.'라고 말해보았지만 당직 의사는 아직 띠 모양을 갖추지 않은 형상을 보자마자 애매하다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간호사는 혹시 환부 사진을 찍은 것은 없냐며 5살 아이까지 옆에 앉혀 기다리며 진단받지 못한 환자의 안타까움을 위로하는 듯 했습니다. 일요일날 문을 여는 피부과를 찾아보란 말은 다섯살 아이와 복잡하고 낯선 도시를 찾아헤매보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불안한 예상은 적중했고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일요일에 문 연 피부과는 미용만을 전문으로 하여 수익을 올리는 곳이었기에 나는 병에 대한 진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할 수 없이 아이와 함께 돌아왔고 아이에게 밥을 간단하게 해서 먹였습니다. 아이는 씩씩하고 천진하기만 했고 저는 점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세를 떨쳐 엉덩이에서 다리쪽으로 진출하며 속도를 내고 있었습니다. 다리에 마비 감각이 왔을 때 누워서 마지막 119에 전화를 걸었고 다려오고 있었던 구급차는 5살 아이와 함께 있다는 말에 마땅하게 주위에 맡길 곳이 없다면 출동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출동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다리의 마비의 감각이 어쨌거나 통각이 아닌것에 그저 감사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겨우 남편이 일하는 곳까지 아이를 태워다 주고서야 대학병원이란 곳에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급차를 타고 왔다면 우선 진료의 대상이 되었겠지만 내 발로 운전하여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이란 곳은 5시간 대기시간을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발길을 돌려서 겨우 인근에 휴일없이 일요일 진료를 하는 의원을 찾아서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고 항바이러스제를 먹는 아프고도 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헤매는 사이 바이러스는 면역이 푹 떨어진 신체에 깊숙하고 치열하게 신경을 파고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태로 누더기가 되어버린 한 쪽 다리 피부는 뻐근하면서도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나의 정신을 반짝 각성시킵니다. 몸안에 잠복해 있던 작은 바이러스에게 맹렬하게 공격을 받을만큼 건강을 잃어버린 나의 몸에게 살짝 말을 건네 봅니다. 이젠 조금 괜찮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