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아와 생각 Sep 30. 2022

안녕 대상포진

대상포진이란 녀석은 원하지도 예상하지도 달가워하지도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신경의 자극은 놀라울 만큼 창의적이었으며 적극적이었고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 예의를 쌈 싸 먹은 대범함을 자랑합니다. 생애최초 슈팅스타를 맛보았을 때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동그란 존재가 그러했듯이 수두 바이러스는 그렇게 피부 신경 속에서 팡팡 터지는 자극을 선사했습니다. 그 녀석들은 자극의 잔치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를 터트리고서는 이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창의성이 돋보입니다. 어느새 나의 한쪽 다리에서만 펼쳐지는 자극의 향연이 이제 조금씩 받아들여야 하는 그 무엇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적극적으로 병원 침대 위에서 생활하며 신경에 내리꽂는 주사도 맞고 있지만 아직은 이러한 자극의 잔치가 몇 주만 더  갈지 아니면 옆에 계신 병원 동기 할머니의 경우처럼 평생을 짊어지고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체념은 몸에 대한 비겁함도 무책임한 방임이 아니었습니다. 수두 바이러스에 대한 전쟁에서 기승전은 인간적인 노력을 함께 들이부을 수 있었지만 결이란 것은 절대 나의 의지나 바람이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엉덩이에서 다리 끝까지 바이러스의 활동 무대는 나의 몸 상당 부분이었습니다. 작은 벌레가 이리저리 사방팔방 기어갔다가는 큰 송충이도 이에 질세라 스멀스멀 불쾌한 따가움을 주었습니다. 쿡 찌르는 바늘 수 십 개가 등장하기도 하고 한밤중에 자는 나에게 칼끝이 무자비하게 등장해 벌떡 일어나 자던 잠을 못내 마무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형벌로 곤장을 내린 적이 없었지만 내내 엉덩이는 얼얼하여 방금 누군가가 기다란 막대로 곤장을 쳐댄 듯이 엉덩이가 뻐근하였습니다. 스트레스와 누적된 피곤함이 밤이 되어 자연스레 어둠이 찾아오듯이 내 몸에 가까이 서 있었고 그다음엔 병마라는 녀석이 찾아와 병마에 시달리는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알려줍니다.


병마 덕분에 나의 아버지는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시간을 벌고 있었던 대상포진에 대한 경각심을 얻어 자연스럽게 예방접종을 하셨습니다. 이런 주위에 끼칠 수 있었던 긍정의 변화에 위안을 삼으며 대상포진이 아직은 남겨놓은 오묘한 자극을 끌어안으며 오늘 밤도 병원 침대에서 잠을 청해봅니다.




나는 처음 엉덩이에 발진이 올라왔을 때 대상포진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정을 알지 못하는 처음 이사를 온 낯선 도시에서 대상포진이란 그리 낯설지 않은 흔한 질병에 가까운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8개나 되는 병원을 헤매며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신속한 진단과 치료의 방해요소는 일요일 발병, 남편의 출근, 첫 방문한 병원에서 진단받지 못한 불운, 5살 아이 육아였습니다.


맨처음 일요일 진료중이라고 검색 결과에 뜬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대상포진 같아요.'라고 말해보았지만 당직 의사는 아직 띠 모양을 갖추지 않은 형상을 보자마자 애매하다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간호사는 혹시 환부 사진을 찍은 것은 없냐며 5살 아이까지 옆에 앉혀 기다리며 진단받지 못한 환자의 안타까움을 위로하는 듯 했습니다. 일요일날 문을 여는 피부과를 찾아보란 말은 다섯살 아이와 복잡하고 낯선 도시를 찾아헤매보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불안한 예상은 적중했고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일요일에 문 연 피부과는 미용만을 전문으로 하여 수익을 올리는 곳이었기에 나는 병에 대한 진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할 수 없이 아이와 함께 돌아왔고 아이에게 밥을 간단하게 해서 먹였습니다. 아이는 씩씩하고 천진하기만 했고 저는 점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세를 떨쳐 엉덩이에서 다리쪽으로 진출하며 속도를 내고 있었습니다. 다리에 마비 감각이 왔을 때 누워서 마지막 119에 전화를 걸었고 다려오고 있었던 구급차는 5살 아이와 함께 있다는 말에 마땅하게 주위에 맡길 곳이 없다면 출동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출동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다리의 마비의 감각이 어쨌거나 통각이 아닌것에 그저 감사해야 했고 마지막으로 겨우 남편이 일하는 곳까지 아이를 태워다 주고서야 대학병원이란 곳에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급차를 타고 왔다면 우선 진료의 대상이 되었겠지만 내 발로 운전하여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이란 곳은 5시간 대기시간을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발길을 돌려서 겨우 인근에 휴일없이 일요일 진료를 하는 의원을 찾아서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고 항바이러스제를 먹는 아프고도 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헤매는 사이 바이러스는 면역이 푹 떨어진 신체에  깊숙하고 치열하게 신경을  파고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태로 누더기가 되어버린 한 쪽 다리 피부는 뻐근하면서도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나의 정신을 반짝 각성시킵니다. 몸안에 잠복해 있던 작은 바이러스에게  맹렬하게 공격을 받을만큼 건강을 잃어버린 나의 몸에게 살짝 말을 건네 봅니다. 이젠 조금 괜찮니?

작가의 이전글 나의 천재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