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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와 생각 Nov 11. 2022

'괜찮아'와 '괜찮지 않아'

살면서 스트레스나 고통을 받을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에 경험했던 일들은 대부분 툭툭 털고 일어나 괜찮아라고 말해도 될만한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살면서 더러는 괜찮지 않다는 표현에 훨씬 가까운 일들도 많이 생겨났다. 지금 5세가 되어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결이가 맨처음 괜찮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3세 생애최초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였을 때이다.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지는 경험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도전에 가까운 일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태어나 가정과 같은 익숙한 환경 속에서만 줄곧 양육을 받다가 각자의 시기가 되면 어린이집과 같은 공공 보육기관을 찾게 된다. 그래서 계속 품안에 아이를 키워왔던 엄마 그리고 아빠들은 아이의 첫 어린이집 도전기에 주의를 기울이며 적응을 잘 할까 걱정을 많이 하게 된다. 한결이도 처음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생애최초의 도전과도 같은 일을 해보았는데 나는 그 때 내 아이가 낯선 환경과 도전에 적응하는데 그렇게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었고 어린이집 앞에서 들어가기 까지 조금 시간을 지체하는 일도 있었지만 아이는 그럭저럭 자기 나름의 적응의 시간을 갖고 있었던 것임이 분명하였다. 단지 아이와 떨어지는 것에 적응을 하지 못한 쪽은 오히려 엄마였다. 나는 아파트 내 가정 어린이집의 특성상 선생님과 등원인사를 하고 아이를 들여 보내고 철문이 닫히는 그 순간과 단절된 공간을 참 어색해 하고 어려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엄마의 마음을 잘 아셨던 보육교사 선생님은 아이를 잘 돌보아 주시는 틈틈이 아이의 활동 사진과 동영상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찍어 직접 개인sns로 보내주시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아도 살면서 정말 고마웠던 일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아이의 생애최초 어린이집 적응기간을 지내면서 보육교사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해주셨다. 3월에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이 많은데 한 아이가 엄마와 인사를 한 후 철문이 닫히고 현관 근처에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결이는 이 아이와 같은 입장이며 같은 조건의 시기를 지내고 있었는데 살짝 그 아이에게 다가가 "괜찮아~엄마 곧 올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의 눈에는 어린 한결이가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고 힘겨워 하고 있는 줄만 알겠지만 문이 닫히고 나면 어느 정도 자기 마음을 추스리고 같은 처지의 아이한테도 위로를 해줄 만큼 여유가 있고 적응기간을 순조롭게 거치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된다는 선생님의 표현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언어로 표현된 내 아이의 낯선모습이 그려지면서 기특하기도 하고 내 아이와 또 비슷한 또래 아이들의 세상 적응력에 놀랐던 것이다. "아 그래. 아이들은 금방 적응을 하는구나."


             




얼마전 이태원 참사에 즈음하여 아빠는 뜬금없이 전화를 하셨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어색하게 말문을 여시더니 아버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낮은 산에 운동을 하고 내려오시는 길이었다. 아버지는 10월 29일에 이태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마음이 무척이나 힘들고 상해 계셨고 정부의 공공위험에 대한 안전 대응전략 부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셨다. 나는 전화를 받고 몇 분만에 아버지가 이 말을 하고 싶으셔서 전화를 하신 거구나 알아차렸다. 


휴일 아침에 잠을 깨려고 무심결에 전원을 켠 TV에서 울려퍼지는 참담한 사건은 순식간에 가슴 속에 무언가 큰 돌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저렇게 허무하게..저렇게 대책없이...저렇게 황당하게..저렇게 비참하게...저렇게 속수무책으로...저렇게 안타깝게.....세상 어떠한 형용사와 단어도 그 일을 정확하게 표현해 줄 수는 없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2022년 10월의 마지막 즈음에 이 땅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났다. 아프고 슬프고 안타까웠지만 국가의 제대로 된 재난안전 시스템의 도움 하나 받지 못하고 스러져 간 그많은 젊은 영혼들이 하염없이 원망스러웠다. 아무 소용도 없는 헛된 바램만이 마음 속에 맴돌았다. 차라리 거길 가질 말지...차라리 거길 가질 말지...............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죽음의 문턱을 왔다갔다 하며 두려움을 못내 삼켰을까...거리를 가득 채운 인파들 속 서로가..서로의 몸이 위협이 되어 숨조차 쉴 수 없는 서로의 감옥이 되어 앳된 꿈과 삶을 앗아가버렸다. 나와 같은 나약한 영혼은 그들을 위해 기도 밖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아무 소용도 없는 원망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가지 마세요..제발


그들을 위해 구호의 손길 한 번 뻗지 못했고 뒤늦게나마 현정권과 서울시 경찰청, 행정안전부의 늑장대응에 날선 비판도 하지 못했다. 각종 매체에서 쏟아내는 사건분석과 릴레이 보도에도 나는 끝까지 경청하지 못했다. 열일 제치고 달려가 그들이 다녀갔던 그 곳에 국화 꽃 한 송이 헌화하지 못했다. 나는 해결될 수 없는 트라우마 같은 고통에 그저 보자기를 씌웠다. 비겁하지만 나를 위해 그렇게 했다. 그리고 스러져간 그들이 문득문득 연상될 때마다 울음을 참고 감정의 동요를 누르고 먹먹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비겁하게 소극적인 나를 위해 이런 감정의 동요가 조금은 무뎌져 가기를 그리고 가끔씩만 찾아오기를 바랬다. 그리고 내 감정을 그렇게 꾸욱 누르고 아버지가 전화선 너머로 펼쳐놓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의 안타까운 마음들 나도 많이 공감하고 뭐라 한마디 말할 길이 막막해. 하지만 나는 아빠의 딸이잖아. 아빠가 이미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들과 고통도 내가 도와드릴 수 없는데.. 이태원 참사 되새기고 기억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아빠가 굳이 마음이 깎여가며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트라우마를 나눠가지면 안돼. 아빠. 아빠를 먼저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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