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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와 생각 Jan 26. 2023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12월을 보내며

5살 아이와 겨울 일상

올해의 마지막 12월도 겨울이 겨울다운 것을 당연히 자랑하듯 어김없이 매섭고 추웠습니다. 계속 강추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크리스마스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버린 엄마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생각은 어느 교회에서 설치하는 광장의 대형 트리장식 또는 라디오에서 거의 하루종일 들려오는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음악들에 멈춰 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에 들려오는 크리스마스와 산타 클로스가 들어간 캐럴과 팝송들의 가수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뮤즈가 되었습니다. 이번 겨울은 눈 내리는 얼어붙은 길도 아이와 함께 하면서 혹시 이 모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추위와 고단함을 잠깐이라도 잊으라고 만든 요정의 물약이 아닐까 때 묻은 의심을 해보았습니다.


"오늘도 엄청 추운데 *환이랑 *선이한테 놀이터에서 무리해서 놀자고 하지 말고 어린이집 있을 때 다 놀고 와!"


여느 엄마들처럼 "오늘도 어린이집 가서 즐겁게 지내다 와."가 아닌 아이에게 오늘 아침 한 인사 겸 당부는 이 말이었습니다.


"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알았다는 듯 낮고 기계적인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1시 반 한낮이지만 한겨울 혹한의  찬공기를 뚫고 나는 무거운 비닐쇼핑봉투를 꽉 쥐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간편하게 김밥전문점에서 사다가 어린이집에 보낼까를 수차례 고민을 거듭했지만 초보 엄마는 어쩐지 마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떻게 되든지 낮에 시간 있을 때 뭐라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성의 표시인 김밥재료들을 골라 담았습니다.


나는 그냥 보기에도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듯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자타공인 없었고 둘째 아이들 입맛에 찰떡같이 맞춰 음식을 만들어 내지도 못하였습니다. 나는 단지 내 어설픈 손맛을 바탕으로 전통 재래시장과 마트 그리고 요즘 장보기 간편한 쇼핑 어플들을 돌려 막기 하듯 돌려가며 매일의 우리 세 식구 양식을 겨우 만들어 내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진 시중 김밥 대신 재료를 구입해 만들어 보자는 호기 아닌 호기를 부린 것입니다. 돌아오는 12월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엄마표 음식 뷔페를 연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이집 12월 행사 안내장의 단 몇  줄이었지만 심히 떨리고 또 떨리는 announcement 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일단 최소 목표는 밥알이 김에 달라붙어 있고 김밥 옆구리가 터지지만 않은  외관상 먹어도 될 것 같은 합격점을 받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온 재료들을 냉장고 정중앙에 모셔다 놓고 결코 짧지만은 않은 3인 가족 세탁물 정리에 돌입하였습니다. 


지루하지 않으려고 재생 버튼을 누른 미드에서는 정말 지루할 틈 없이 영어 대사가 줄줄 흘러나와 감탄하지만 다 알아들을 수 없어서 안타까움은 남았습니다.  미국에 산다는 그 주부들은 특히나 영어가 뛰어났고 무엇보다 당당했습니다.  


다시 오후 4시에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를 맞았을 때 아이는 함박미소와 함께 손에는 산타 할아버지께 받았다고 하지만 사실 며칠 전 엄마가 택배로 배달받은 아이의 새 장난감 선물이 들려 있었습니다.


며칠 전 일이었습니다.

"한결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얼 받고 싶냐고 산타 할아버지가 물어보시넹."

저는 이렇게 넌지시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렇게 물어봄으로써 산타는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 되고 내 아이의 작은 한 해 소원도 잊지 않고 들어주시는 정감어린 분으로 탄생합니다. 그리고 아이 아빠의 평소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못 받게 될 수 있다.'는 협박 아닌 듯 하지만 아이들 세계에서 중대한 협박에 가까운 말들이 오고 갔던 것을 미루어 보면 엄마 아빠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긴밀히 연락을 하고 지내는 조수 역할이었습니다.


아이는 늘 하는 말이었지만 '엄마 아빠 사랑해요.'를 어린이집에서 산타를 만난 그 날 저녁시간에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는 양말도 내팽개치지 않고 빨래통에 잘 넣었고 돌아오자마자 손 씻는 거 맞죠? 하며 평소답지 않게 스스로 잘 닦았습니다. 아마도 그건 산타에게 받았다는 선물의 힘이었습니다. 귀여운 내 아이는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사실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 분위기까지는 좋은데 산타클로스라는 특정인물과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다는 설정은 왠지 교육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 산타의 존재에 대해 굳이 일부러 얘기하는 것이 더 어색하고 어른으로써 쌀쌀맞은 행동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는 망설임 하나 없이 줄줄 대답했습니다.

 "헬로카봇 고스트체이서 트루 폴리스요."

아주 평소 아이다운 선물이었습니다.


그렇게 "헬로카봇 고스크체이서 트루 폴리스"는 엄마의 쇼핑검색을 통해서 우리집으로 왔고 엄마 아빠의 포장작업을 거쳐서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로 안전하게 전하여졌습니다. 자신이 받게 될 선물을 일부러 선생님에게 갖다드리는 엄마, 아빠의 작은 선물이라고 둘러대었지만 우리 아이는 딱히 그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는 이 모든 산타잔치의 산통을 깨트리는 쓸데없는 관찰력이나 똑같은 포장지에 대한 인과관계 추적과 같은 지성은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참 말을 안 듣는 어린이인 편인데 이럴 때엔 또 세상 흐름에 순응을 아주 잘 하는 어린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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