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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와 생각 Apr 06. 2023

청명역에 찾아가려면



"청명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열차는 죽전역에 멈추어 섰고 안에 싣고 있던 모든 승객들을 뱉어냈다. 이 열차는 처음부터 최종 목적지가 죽전역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열차가 죽전까지만 운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순순히 내려 갈 길을 재촉하였지만 죽전역까지 간다는 것을 보기는 봤지만 사람들로 붐비었던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아이와 함께 열차에 몸을 실었던 나는 내심 저 목적지가 끝이 아니기를 부질없이 바랬던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서둘러 내렸고 하차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한 번 더 나오고 있을 때쯤 이곳에 여행을 온 듯한 한 무리의 외국 관광객들이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와 아이 또한 내렸다. 나는 단순히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계획을 아이와 함께 실행한 것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고 저녁식사도 안정적으로 챙겨 먹지 못한 피곤한 여행일정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자꾸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이 상황에서 최대한 피곤함을 만회하고 아이의 컨디션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지금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죽전역에 의도하지 않게 피곤한 마음으로 내리게 된 나는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운 하차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황급하게 다른 사람을 붙들고 청명역으로 가는 길을 묻는 중년 남자분을 목격하였다.


"청명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요?"


순간 충분히 흘려 넘겨도 될 만한 그 말이 중년 남자분의 상황과 이미지와 함께 또렷하게 머릿속에 각인되고 있었다.    

 우선 청명이란 말소리가 청아하였지만 분명 일상생활 속에서 잘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었기에 각인작용에 도움을 주었고 분명 열차의 전광판에서만 읽었을 뿐 전혀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기에 갑작스럽게 낯선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배낭을 메고 계셨던 중년의 남자분은 갑작스러운 하차 안내에 상당히 당황한 듯했지만 살아온 세월의 경력을 살려 차분하게 비슷한 또래의 도움을 줄 만한 또 다른 남자분을 본능적으로 알아채셨다. 그리고 체격도 비슷했던 두 분의 중년 남자분들은 더 차분한 목소리로 갈 길을 안내해 주는 목소리와 함께 죽전역의 어딘가로 향하여 사라져 갔다.


나의 두뇌는 엉뚱하게도 청명이란 말이  던져진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정확히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두뇌의 작용이지만 나는 그 길을 순순히 따라가기로 했다.


나는 심지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어느 곳을 목적지로 하는지 그 방향성도 잡고 있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없었던 나는 거창한 꿈 대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거라고 애써 생각하며 목적지 설정이라는 과제를 전혀 대체해 주지 못하는 삶을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 20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여 글로 제출하라는 과제가 있었다. 나는 과제를 제출하였지만 너무 형편없는 과제를 제출했다는 평가를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다. 앞으로 멋진 수학 선생님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아이는 앞에 나와 발표를 하였지만 거기에 비하면 나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TV를 보고 있을 것 같다고 적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아도 내가 낸 제출은 적절한 내용도 분량도 되지 못하였기에 그런 평가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친한 친구 한 명은 나쁘지 않다고 애써 위로를 해 주었다.


방향성이 없는 대신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애초부터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틀린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확한 방향성을 갖고 살아가는 효율적인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런 경력도 커리어도 쌓이지 않는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 와서도 나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어떠한 평가조차도 내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초부터 목적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인증에 대해 목메었다. 남들이 누가 보아도 번듯한 사회적 지위의 입간판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나에 대한 인증을 하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인증절차는 나에게 있어서 마지막 카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처음에 아이를 임신하면 그 아이는 뱃속에서의 과업을 거친다. 출산예정일까지 거치는 모든 산전검사와 임신성 당뇨, 기형검사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검사들, 아기 초음파 사진들이 있다. 나는 이것을 아기의 인증이라고 부르고 싶다.. 뱃속의 태아는 물론이고 어떤 사람이든 사회 속에서 인증의 절차를 수없이 거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2017년도의 마지막 직장을 결혼생활 얼마 후 퇴사를 결정하면서 그에 따른 불안의 씨앗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다. 원인불명의 자연유산이 한 차례 있긴 했지만 다시 찾아올 임신을 전적으로 염두해 두고 퇴사를 결정한 것도 또 다른 커리어를 쌓기 위해 계획적으로 퇴사를 결정한 것도 물론 아니었다. 그냥 그곳은 나와 맞지 않는 곳이란 사실을 의도하지 않게 맞닥뜨린 것이다. 그곳은 마음속으로 자그마하게 내 이상을 실현하며 근면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출근처이자 사회생활의 끈을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다는 확신을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끈을 한 번에 놓아버렸고 그 이후로 아무도 의아해하지 않고 그 어떤 주위 가족 친구도 그다지 제기하지 않는.. 나 혼자만의 사회생활에 대한 의구심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로.. 업장으로.. 노동의 현장으로.... 아침에 시간 맞춰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부지런히 모이를 모으며 사는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마지막 직장을 퇴사하고 여성가족부가 하는 사업이라는 새로일하기 센터로부터 받은 첫 번째 인증카드에는 경력단절녀란 단어가 적혀있었다. 줄여서 경단녀. 어감은 이상했지만 나의 경력이 앞으로 단절될 것이라고 확신이라도  했는지 그곳을 퇴사 후 직방으로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경력단절녀의 인증만을 확실하게 도장 찍듯이 해주었을 뿐 말 그대로 경력을 이어주지 못했다.         




나는 사회적 인증에서 조금씩 멀어지면서 또는 사회가 인정해 주는 인증은 당분간 받지 못하는 대신 아직 나이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인증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하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근처 산책로나 시장, 팔달산 공원 등에 나가보면 이제 사회생활에서 은퇴하여 치열한 인증절차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어르신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장기, 바둑을 즐기기도 하고 자원봉사 활동으로 의미 있는 삶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 속에서도 존재하는 분주함과 활기 그리고 부지런함을 잡아끌어다 내 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 한 켠에다 갖다 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택배 단 1일(퇴근한 남편 도움 받아 겨우), 공무원 시험준비, 요양보호사 자격증, 콘텐츠 회사 체험글 기고, 영어학원 다니기 등등




"한결아. 오늘 엄마랑 떡볶이 먹으러 가볼래?"

"네~~~~"


엉뚱하지만 최근에 혼자만의 인증에 발버둥 쳤던 시도는 아이 하원길에 떡볶이를 먹으려고 했던 욕구가 계기가 되었다. 맞다. 그것은 아이 하원길에 상황에 비추어보면 터무니 없이 엉뚱한 욕구가 분명했다. 떡볶이는 아직 매운 음식을 조금도 먹지 못하는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도 아니었고 하원길에 분식집에 들르는 일도 아이가 좋아하는 편의점 가서 사탕사기, 마트, 빵집 들러서 젤리 신제품을 찾아 먹어보는 일들에 비하면 꽤 거리가 멀었다. 나는 떡볶이 말고도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우동같은 메뉴들이 있기도 하니 그곳에 들러보았지만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고등학교 학생들에 의해 이미 가게는 점령된 상태였다.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 역시나..'

나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나는 떡볶이에 대한 아쉬움은 바로 접었지만 요즘 엄마가 하는 집밥을 즐겨 먹지 않는 아이도 한 번 살펴볼 겸 바로 옆 죽 전문점으로 가서 집밥 메뉴로도 잘 해먹었던 비빔밥을 골랐다.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아이가 잘 먹나 못 먹나 살펴라도 봐야겠다.'

올해 3월에 새롭게 유치원에 입학을 했지만 나는 아이가 급식을 대하는 태도나 나름 전적으로 혼자 섭취하는 식사를 어떻게 먹고 있는지 엄마인 내가 알고 싶은 만큼 알 길은 없었다. 대충 먹고 남기는지.. 집밥과는 다른 새로운 음식이 많이 나와서 온전히 즐기고 있는지.. 는 바라지 않는다. 아이는 스스로 비빔밥을 떠먹지는 않았지만 쉽게 쉽게 받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인증은 아이 공공장소에서 보이는 매너나 남들에게 비치는 엄마를 대하는 태도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또 다른 손님이 아무도 없었기는 하지만 평소 하원길에 특히나 스트레스와 짜증을 많이 표현했던 아이는 거리낌 없이 빽빽 소리를 지르고 학교에서 보내준 자석놀이만 만지작 거리며 식당에서 와서 식사를 하니 자리에 앉아서 먹자는 엄마의 말을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평소에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하나 있는 아이에게 가정교육을 제대로 해주고 있는 엄마라는 인증이라도 그때그때 꼬박꼬박 받고 싶었던 나는 작은 좌절에 부딪친 것이다. 식당 사장과 일하시는 분들에게 지금 이 자리가 한없이 창피한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아이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엄마 인증에 실패한 것은 큰 위기감을 불러왔다. 식사는 겨우겨우 꾸역꾸역 마쳤지만  나는 또다시 아이의 생활태도나 언어습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 뭔가 정확하게 정해진 공사범위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이 교육에 관한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함을 직감하였다. 남들 눈에 보기에도 제대로 된 엄마인증과 체면이 아이 육아와 교육자체에 비하면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아무렇게나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고 편안할수록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름의 아이와의 대대적인 교육공사를 마쳤다고 혼자 자부할 때쯤 하굣길에 그 비빔밥 식당을 또다시 찾을 것이 분명했다. 버릇없이 빽빽 소리를 지르고 식당에 앉아서 먹지 못하고 돌아다녔던 그 아이와 서툰 엄마를 아무도 기억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날을 마음속에 저장하였다. 혼자만의 엄마인증을 어떻게든 다시 받으려고 마음속 좌표에 방향을 정해 큰 점을 이미 찍어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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