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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와 생각 Sep 03. 2024

아이가 하루를 쉬고 어린이집에 다시 나간 날

2024년 9월 3일 화요일 더움

우울이들은 자주 길을 잃는다.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게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느라 바쁜 이 아침에 나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눈이 부어오른 것 같고 물에 젖은 솜뭉치가 온몸을 휘감고 있는 것 같다.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하지만 누구나 보아서 그렇게 느낄 만한 객관적인 불행한 일은 전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 식탁에는 굴비 5마리, 계란 프라이 3개, 도시락 김 두 개가 마련되었다. 뭔가 부족하고 어수선한 식탁의 모양새이지만 아침 허기를 채울만한 최소한은 되어 보였다. 그리고 늘 말을 달고 사는 아이 말고는 남편 그리고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서로의 얼굴의 낯빛과 태도가 자신에게 심하게 적대적이거나 호의적이지 않은 모습은 아닌지 확인할 뿐이었다.

"엄마, 오늘은 어린이집 안 가고 집에서 재미있는 TV 프로그램도 보고 맛있는 거 먹는 날이야."

"그러니까 엄마는 맛있는 거 만들어. "


명랑한 아이는 어제 어린이집으로 출근할 적당한 날이 아니라며 쉬어야 한다고 했다. 크게 아픈 데는 없었지만 평소에 비염 알레르기가 있어서 목이 잠기고 속 안에 가래 또한 쌓이고 쌓여 밤새 아이 잠자리를 불편하게 한 듯했다. 아이가 단호하게 오늘은 어린이집을 안 가는 날이라고 강조하여 나는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정했다. 누구나 월요일이 그런 날일 수도 있다. 7세가 지나고 나면 월요일이 그런 날이라고 느껴져도 학교를 가야 하는 책임이 더 커질게 분명하기에 아이의 쉬고자 하는 작은 욕구를 이해해 주고 싶었다. 주방에 있던 작은 TV로 자신이 좋아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찾아 헤매다 ebs공익광고를 본 아이는 한 번에 내 귀에 꽂히는 말을 다.


"엄마! 아빠는 휴대폰 중독이야. 맨날 집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어."   

 아이가  공익광고를 보면서 그 내용과 아빠의 평소 잘 보여주는 모습이 중첩이 되면서  휴대폰중독이라는 새로운 어휘를 한 순간에 활용해 낸 것이다. 나도 중독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기에 아이가 말한 부분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퇴근하는 길에 걸려온 전화를 통해서 나는 오늘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대뜸 남편은 우리 집에서 휴대폰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교묘하게 웃으며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남편의 대화방법은 지금까지 꽤 많이 보아왔다. 자신의 취약한 점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화제전환하여 숨기고 오히려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드는 방법이 탁월했다.


 그렇게 대수로운 면이 아니라며 네가 예민하기 때문에 그걸 못 받아들이는 거라고 설득하며 기억 저편에 모두 덮어버렸던 지난 남편의 언어습관에 관한 기억들이 한 순간에 봉인해제 되었다. 최초로 아니면 최초 중의 하나로 남편이 때때로 부정직하다고 느낀 건 아이가 돌 전 아기였을 때 정해진 예방주사도 맞고 잘 크고 양육되고 있는지 정기검진을  받을 때였다.  정기검진 며칠 전 남편은 아기의 조그맣고 얇은 초승달과 같은 손톱을 깎아 준 나의 결과물이 틀렸다고 말했다. 가운데가 뾰족한 V가 아니라 U자 모양으로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내가 깎은 모습이 하루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자기가 하다가 아이 손가락 살을 집어서 상처가 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크게 아이가 고통을 받는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직업정신으로 아이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던 의사는 엄마인 나에게 작고 연약한 아이에게 상처를 냈다고 화살이 돌아오고 말았다. 나는 남편이 했던 일이라고 크게 변명하지도 않았고 듣고 있었다. 의사를 보는 짧은 시간에 아이 건강 말고 그런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오해의 실타래는 굳이 풀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라고 나는 순간 판단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바로 옆에 앉아서 아기를 안고 있던 남편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를 도와주지는 않았다. 나는 일을 이미 넘겨 버렸긴 했지만 그리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내가 상황 남편이었다면 바로 솔직하게  내가 실수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인데...라고 아쉬움의 물음표가 남아버렸다.


그리고 수많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와 비스무리한 기억들.. 기억 저편에 배드민턴 셔틀콕 스매싱해서 던져 놓듯 팽개쳐진 일들. 사소하고 어떻게 보면 사소하지 않은 계속 갖고 있으래야 내 정신능력에 한계가 있고 상대와 얘기해 봐야 전혀 현 생활에 효율이 없는 것들.. 그리고 네가 잘못했니 내가 잘못했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거리 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라면 꺼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지만 전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상대의 웃음소리에 나의 그 동안의 배드민턴 셔틀콕들이 팝콘 터지듯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이의 조잘거리는 소리 외에 집안의 침묵은 계속되었다. 아.. 이러면 안돼..


작년도 아이가 6세 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새로 다니게 된 유치원에서 손가락으로 하는 욕을 배워서 집에 와서 엄마에게 화가 났을 때 양 손 손가락을 보여줬었다. 어쩌면 넓게 보아서 6세 남자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이었을 수 있었다. 또는 새 유치원에 나름 좋아하는 친구들과 무리없이 어울리면서 한 번쯤 배울 수도 있는 재미거리라고 한다면 지금에 와서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하지만 작년도의 나는 아이의 처음보는 행동에 부정적인 감정이 짙게 깔리며 머리 속에서 빨간 비상등을 켜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로변에서 구급차가 황급히 길을 재촉할 때 내는 그 다급한 소리가 마음 속에서 울려 퍼졌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만 침착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작년도 아이의 새로운 발달과정이 나를 더 생각하고 발전하게 해 주었다. 아이의 mbti도 찾아보고 타고난 기질과 성향에 대해 알아보면서 나는 조금씩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작년도와 지금을 단순하게 비교하여도 아이는 하나도 변한 점이 없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 성향을 못 받아들여서 가졌던 마음의 의문점과 육아 스트레스를  더 이상 느끼지 않는 마음의 단계가 되었다.


삶을 공유하기로 자발적으로 약속하고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와 자녀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같을 수는 없지만.. 또는 전혀 별개의 것일 수 있지만..이번만큼은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필요 이상으로 불편한 감정을 오래 갖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불편한 감정은 나를 자꾸만 어둡고 초라하게 만들지만 정작 상대를 바꿔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함께 사는 가족도 부부도 부모와 자녀도 매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신체의 변화, 감정의 변화를 조금씩 겪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그 다름을 이상하다 여기지 말고 나와 상대의 조화로운 중간이 도대체 어디인지 매번 수고롭지만 즐겁게 찾아보는 것이 앞으로 나의 삶의 지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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